[아메리카]웨스트 버지니아 광산 노동 전쟁 (3) - 투쟁

작성자PANDA|작성시간20.04.22|조회수177 목록 댓글 3





유럽에서 발흥한 사회주의 운동으로 노동자들은,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 투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옛 봉건제 아래서, 브루주아 계급은 착취당하던 생산계급, 농노들과 연대해서 구제도의 기득권, 귀족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꿰어찼다. 이것이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기존의 체제 아래 착취당하던 생산계급들은; 착취자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자신들은 착취의 대상이라는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는, 정경유착과 부패, 빈익빈 부익부 그리고 열악한 노동환경과 터무니 없이 낮은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시민의 최소한의 기본권만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 아래서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강조하던 마르크스주의를 접하면서 노동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에 돌입했다.

유럽에서 일어난 기계파괴운동과 기타 파업행위들과 아니키즘에 기반한 폭력행위들이 줄지었다.



(러다이트 운동, 아나키즘에 기반한 노동자의 투쟁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사회주의 노동투쟁운동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까지 도달했다.

혁신주의 시대 미국 노동자들의 삶도, 유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고, 산업재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산업재해의 경우 19세기 말, 산업안전법이 양원을 통과했고 비준받았으나,

규제를 어겼을 경우의 처벌조항이나 규제를 강제할 수단이 명문화가 되어있지 않았다.


느슨한 산업안전법으로, 공장 경영진은 최소한의 정부 규제만 통과할 수 있도록 생산시설을 설계했다.

그리고 이런 안이한 안전 불감증은 20세기 초 뉴욕주에서 일어난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계속됬다.



(느슨한 산업안전법과 경영진의 안전불감증이 낳은, 미국 역사상 몇 안되는 대규모 산업재해 중 하나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대해,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과 파업으로 응대했다.

공장 내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모든 생산작업을 중단하고, 공장 감독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무기한으로 일을 내려놓거나 태업으로 버텼다.





노동기사단 (Knights of Labor)을 시작으로, 미국 노동 총연맹 (American Federation of Labors)이 발족했다.

그리고 미국최대의, 최강의 노동조합이었던 전미 철도노조 (American Railway Union) 가 시카고에서 탄생했다. 

유진 뎁스를 노조위원장으로, 전미 철도노조는 풀먼 팰리스 차량회사에 철도노조원들을 보내 투쟁을 독려했고

이 과정에서 풀먼 팰리스 차량회사에 대한 보이콧 운동과 전반적인 파업운동으로 발전했다.


전미철도노조를 시작으로, 각 산업별 부분에서도 노동조합들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890년 1월, 오하이오 주에서는 전미 광산노동조합 (United Mine Workers)이 발족했다.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안전한 작업환경, 최저임금 보장을 주장하며

노동기사단 지부와 국가진보광부연맹(National Progressive Miner Union)이 합쳐져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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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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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0.04.22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노동투쟁운동이 일어났군요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대해 노조결성과 파업이 이어졌군요
  • 답댓글 작성자PAND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4.22 차후에 언급될 웨스트 버지니아의 광산노동전쟁은 노조파업으로 시작해서 내전 직전까지 간 경우라
    오히려 유럽의 노동투쟁보다 미국의 노동투쟁이 더 살벌하죠
  • 답댓글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0.04.23 PANDA ㅇㅇ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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