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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중국 공산당 주더의 인생 역정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4.06|조회수1,452 목록 댓글 3

 

막장 그 자체였던 펑더화이의 어린 시절의 암울함에 비하면 훨씬 나음

 

사천에서 태어나 수호지나 삼국지(후반부엔 주무대가 사천이니까)를 재밌게 보면서 잘 삼

유교 경전도 공부해보고 신식 교육도 받아보고 체육 교사도 해보고

 

 

중국 내에서는 최초의 현대식 군사훈련을 받은 축에 속함

 

 

학교를 마치고 중위로 임관하고,

서양식 훈련 방법, 전술, 총검등을 쓰는 부대에 배치되서 청조기 멸망할때 여기저기서 공을 세움

 

 

1916년에는 여단장까지 되었는데, 마침 위안 스카이가 황제가 되려는 술수를 쓰자, 거의 최초로 반기를 들어 중국의 남부 지방에서 어마어마한 명성을 날림

 

 

펑더화이와 비교하면 인생도 술술 잘 풀림

 

명성도 높겠다, 운남부의 공안국 장관도 되보고,

성의 재무위원도 되어보면서 그 시대의 전형적인 군벌 지도자 생활을 즐김.

 

 

 

즉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공금도 횡령(횡령이란 의식이 있었을지도 모를만큼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궁궐 같은 집을 짓고" "여러 명의 마누라와 첩들을 거느리면서 즐겁게 살고" "아편에 찌들어서" 지냄

 

 

 

돈도 많다.명성도 있다. 자식도 있다. 여자들도 있다.

그렇게 남 부러울것없이 지내던 주더는 어느날 책을 읽고, 독서에 재미들려서 계속 읽게 됨.

 

 

 

 

책 속에서 발견한 전혀 새로운 세상.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현실.

 

 

청나라가 무너진것은 백성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었으며

오히려 더 악랄한 관료제도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며

 

중국은 여전히 막장스럽고 수많은 노예와 절망 밖에 없다는 깨닫게 됨.

 

 

 

 

 

그래서 다 버리고 감.

 

돈도, 명예도, 재물도, 여자들도 버리고 상해로 떠나고

국민당의 혁명가들을 만나고 좌익 인사들도 만나지만, 그들은 주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

 

 

"이 사람은 전형적인 군벌이자 부패한 관리 아닌가. 여러명의 부인에, 아편 중독자인데, 무슨 혁명가가 되겠는가?"

 

 

 

그래서 주더는 평생을 피던 아편을 끊기로 함.

배를 타서는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몇주동안 절대로 육지에 상륙하지 않고

장장 한달 동안 그러는동안 마침내 야편을 끊는데 성공.

 

 

 

이때 주더의 나이는 40살.

 

뭔가 새로운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혀 독일어를 할 줄도 모르면서 독일로 공부하러 떠남.

아들보다 어린 중국 학생들 도움 받아가며 공부하고,

 

그때까지 알지도 못했던 유럽의 역사와 1차 세계대전의 전개과정등을 공부하면서

지방 부패 군벌로 살던 자기와 전혀 다른 사상의 충격을 직격으로 맞으면서 계속 공부

 

 

 

그러다가 "국가와 혁명"이라는 책을 추천하는 동료 ─ 다름 아닌 저우언라이 ─의 권유로 책을 읽고 공산주의에 관련된 책들과 레닌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점점 그쪽에 빠지게 됨.

 

 

"주더는 경험이 풍부하고, 절도가 있고, 실천적인 정신을 지녔는데, 겸손하고, 소박하고,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비판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비판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가 있었다."

 

"그는 검소하게 생활했다. 그가 국민당 진영에 가담한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는데, 공산주의에 대한 관심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프랑스 교사, 독일인 교사, 중국인 교사등에게 계속 공부를 받다가 또 공부를 위해 러시아까지 가서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함. 그리고 1925년 상해로 다시 귀환.

 

 

 

 

 

이제 중국에 돌아온 그는 가지고 있는 전재산을 공산당에 기부하고

남창 봉기때 이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지만

 

 

오히려 반란군에 가담하며 완전히 이전의 자신과의 인연을 끝내버림.

그리고 운남 출신 군벌인 범석생과 합세.

 

 

한동안 안전을 누리지만 군대 내에서 장제스와 내통하고 있던 반볼셰비키파의 쿠데타를 당하고

몇십명의 병사들만 데리고 있을때 암살자들의 습격을 받음.

 

털리게 되고 머리에 권총이 겨누어지자 둘러댐

 

"나는 요리사요! 쏘지 마시오! 당신들을 위해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을 쏘지 마시오!"

 

쿠데타 군이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에 숨겨 놓은 권총을 꺼내 쏘면서 탈주. 범석생에게 작별을 고함.

 

 

 

 

 

주더의 군대는 옷은 국민당 옷에, 돈도 없고, 먹을것도 없고, 거지꼴로 지내면서 간간히 겨울을 지내는데,

 

 

마침 근처에서 은신처를 확보하고 기지를 건설했던 마오쩌둥이 동생을 보내 주더에게 합류 하라하고,

둘은 이때 드디어 결합함.

 

 

 

 

1931년 1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총사령관에 임명

짦은 시간만에 홍군의 병력은 늘어나고,

 

주더는 적과 소규모 교전은 수백번, 대규모 교전도 수십번을 벌이며 성공함.

장제스의 대소탕전에서는 홍군세력의 군사지휘를 맡아 9~10배나 되는 규모에 압도적인 무기와 물자를 가진 국민당군과 대결,

 

 

기동력과 술수를 통해 국민당군을 상대로 싸우고 홍군의 유격전 능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림.

그래서 축지법 쓰는 초능력자라는 소문까지 돌고

 

 

 

국민당은 수차례나 "적의 괴수 주더를 죽였다." 고 뉴스에 내고

몇차례나 "직접 죽었던 마지막의 묘사" 언급까지 했지만

 

 

그 후로도 멀쩡하게 나다니는지라 불사신으로 통함.

 

 

 

군의 통수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병졸들과 똑같이 자고, 먹고, 입고,

걸을때는 아예 맨발로 걷기도 하고, 겨울에는 호박이나 풀뿌리만 먹기도 하는데 불평을 안함.

 

 

 

어떤 병졸들도 불만이 있으면 곧바로 "군의 통수권자"인 자신에게 와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부하들에게 인사할땐 항상 모자를 벗고 예의를 차림.

 

 

9600km 대장정을 할때는 지친 병사에게 말을 빌려주고 절반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행군함.

 

 

 

 

그리하여 점점 전설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급기야 "주더는 날아다니며, 도교의 술법에 통달해 국민당군의 진영에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천리안을 지녀 1백여리를 볼 수 있고, 총과 포탄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며 기적을 행할수 있다." 는 수준의 이야기까지 나돌게 됨.

 

 

 

 

국공합작 이후에는 개편된 국민 혁명군 제8로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지휘하고, 국공내전이 재기되자 다시 국민당군을 격파하고 대만으로 쫒아내는데 공을 세움.

 

 

그 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당직으로는 공산당 부주석을 맡았고, 군에서는 원수 계급을 맡으며 승승 장구 함.

 

 

 

 

그런데 문화대혁명 발생.

 

 

 

주더는 문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함.

 

“문혁 중에 생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공농업 생산을 대폭 증대해야 한다."

 

"현재 군중들이 일어났다. 나는 두렵다"

 

"재앙이 될까봐 두렵다. 특히 생산에서의 재앙이 두렵다”

 

 

 

이때 캉성(康生)은 장칭과 짜고 보이보, 양셴전등을 죄다 잡아 가두고

주더까지 공격함.

 

“주더는 허울뿐인 총사령관이다.” 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주더는 악독한 총사령관이다.”

 

“야심이 커 영수가 되려고 한다.”

 

“늙은 기회주의자.”

 

이런 온갖 흑색선전이 나도고

주더가 야욕을 부린다는 대자보가 붙음

 

 

심지어 린뱌오는 주더가 마르크스를 빙자해 마오쩌둥을 반대한다고 공격.

캉성은 "주더는 마오쩌둥 사상을 반대한다." 고 공격.

 

 

주더는 거세게 반발

 

"나는 마오 주석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마오 주석의 책도 읽고, 마르크스-레닌의 책도 읽는다."

 

“당신은 린쫑(린뱌오)의 이 발언을 학습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조직상으로는 당에 입당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입당하지 못했다. 여전히 당외 인사다.”

 

 

그러면서 주더를  “당내의 가장 위험한 인물” “당내의 시한폭탄” 등으로 모욕함

 

 

 

신해혁명에 참가했던 주더의 이 시기의 나이는 이제 80이지만

새파랗게 어린 홍위병들에게 집까지 뒤져지는 수모를 겪고

 

 

이제 죽을날도 머지 않아서 린뱌오가 실각하고 난 뒤에야 간신히 명예를 회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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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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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아웃오브안중 | 작성시간 12.04.06 중국에 홍위병 또 생기면 좋겟다
  • 작성자zombie | 작성시간 12.04.07 문혁에 대해서 혼자 공부 좀 해봐야겠네요. 뭐 이건 제대로 남아나는게 없어;;
  • 답댓글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4.07 문화대혁명은 참... 저도 어떻게 봐야 할지 골치가 아프더군요. 정말 야만적이고 멍청한 짓거리, 끔찍한 짓거리도 많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기득권화되던 중국공산당을 제대로 엎었고, 말 그대로의 '문화대혁명'이기도 하니... 이후 덩샤오핑에 대해서도 참 무엇한게, 지금의 중국을 만든 사람이지만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반대로 마오는 그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존경을 받고 있고...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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