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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2차 대전 전쟁 영웅이다가 쓰레기 수준으로 추락한 헤르만 그라프

작성자신불해|작성시간12.06.09|조회수1,213 목록 댓글 3




Hermann Graf

헤르만 그라프는 독일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고, "아빠"라고 까지 불린 베르너 뮐더스나 더글라스 바더와의 우정으로 유명한 신사 아돌프 갈란트에 버금갈 정도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 후 안드로로 가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1912년에 대장장이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가난했고, 학업도 초등학교 정도만 나와 기본적인 글쓰기나 간단한 수업 정도만 익힌 뒤에 생활전선에서 악전 고투했습니다. 그 시기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중간의 안습하던 시기라 몹시 힘들었죠.


하지만 운이 찾아왔습니다. 대장장이 견습공으로 시작한 직장생활이 비록 말단이지만 시 공무원으로 옮겨졌고, 다른 길로 인생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헤르만 그라프도 비행기에 관심은 있었지만,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온 그에게 비행은 그림의 떡이었는데, 시청 공무원들은 글라이더 조종훈련을 받게 되어있던지라 이때 처음 비행을 접하고 1933년에는 글라이더 면허를 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흥미를 느껴 틈틈히 연습해서 정식 조종면허도 따게 되죠.



그리고 독일이 징병제를 부활시켰습니다.


헤르만 그라프는 예비역 항공부사관으로 등록되었고, 오래지 않아 전투기 조종훈련을 받은 뒤, 1939년 7월에는 제51전투항공대대 제2중대에 하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새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갑니다. 


나이 어린 조종사들과 어울리며 분위기에 적응되려는 찰날에 2차대전이 벌어졌고, 곧바로 폴란드 전선에 급파되는데, 처음에는 욕만 먹었습니다. 21번 출격해서 전과도 한번도 없었고, 다른 기량들도 수준 이하였습니다.


굴욕스러운 꼴을 당한 헤르만 그라프는 반년 동안 죽어라 연습에 매진하여 다음 해 7월에는 소위를 다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1490년 여름까지 단 한대도 격추를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소련 전선으로 돌려졌는데, 이것은 기회였습니다. 대전 초기 소련 비행기들은 매서슈미트의 앞에 종이비행기나 다름없었고, 기량도 형편없었습니다. 1941년 8월 4일, 헤르만 그라프는 마침내 첫 격추를 달성합니다. 동료들은 칭찬했지만, 보통은 소련 조종사들의 형편없음을 비웃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련 공군이 수준 이하라고 해도, 자신감을 얻은 그라프는 파죽지세로 기록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5개워 동안 45기나 되는 적기를 떨어뜨렸고, 기사철십자 훈장을 단 뒤 1942년 3월까지 50대를 격추했습니다.


당시 독일 조종사들은 평균 연령이 20대 극초반이었고, 그라프는 30이 다 된 비교적 늙은데다, 요아킴 마르세유 같은 천재적인 기질도 아닌 범재에 가까웠던 그는 대기만성 형이었습니다. 포텐이 터진 그라프는 4월부터 5월 사이의 단 17일동안 47대나 되는 적기를 돌파하고는, 5월 17에는 105대를 격추하는 초인적인 활약을 하게 됩니다.


헤르만 그라프가 이렇게 날뛰자, 나치 당에서도 그를 주목했습니다.



가난한 집안 출신, 본래부터 소질이 뛰어난것도 아닌 대기만성 형의 에이스. 하층 노동자 출신인 그는 나치 당의 입맛에 맞는 이상적인 영웅이었고, 당에서는 의도적으로 그를 부풀려서 뛰어주게 됩니다. 백엽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은 뒤 2일만에 백엽검 기사철십자장을 타게 되었고, 전국의 신문과 라디오, 선전영화에서 헤르만 그라프의 이름을 홍보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르만 그라프는 9월 26에는 200대 격추를 달성하며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됩니다. 9월 당에는 무려 62대를 격추했고, 이는 1개월간 한 사람이 격추한 최대 갯수로 현대까지 남아있는 기록입니다. 


이런 스타를 군 고위층과 나치 당은 가만 두지 않았고, 곧바로 독일 본토로 호출됩니다. 그리고 이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각종 강연, 영화출현 등 홍보용 스타로 굴려지는 신세가 되죠.


이 당시 그라프는 살맛이 낫습니다. 그라프의 취미가 축구였는데, 그를 위해 공군 축구팀을 만들어서 각지에서 친선경기를 벌이는가 하면, 지나치게 영웅 대접을 해서 생활이 방탕해지죠. 군에서는 그를 위해 가장 한가한 프랑스 남부의 보충 비행대 사령관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172대 격추 후 찍은 사진



하지만 프랑스를 향해 연합군이 곧 대대적인 침공을 벌이리라는 기미가 보이자, 새로 창설된 전투비행대 JGr50의 사령관으로 1943년 3월에 취임했습니다.


그라프는 자신이 중대장으로 있을 무렵의 심복 네명까지 데려와서 심기 일전을 했지만, 이미 나태해질대로 나태해진 그는 예전과 달랐습니다. 본래 천재도 아니었던 그는 오랜 시간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실력이 다 죽었고, 8개월 동안 3대의 B-17 폭격기를 격추하는데 그쳤습니다. 결국 JGr50은 11월에 해체되었고, 한달 후에는 그라프도 정식 전투기 대대인 JG11의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1944년 3월 29일,  그라프는 B-17 폭격기를 맞기 위해, 그리고 명예 회복을 하기 위해 날았습니다. 2대를 격추한 그는 미군의 호위 전투기 편대와 마주쳐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P-51 머스탱과 미국 조종사들의 실력은 대전 초기 소련 공군에 비할바가 아니었고, 그라프는 크게 당하고 간신히 불시착해 목숨만 건졌습니다. 한달 동안 요양을 해야 했을 정도로 무시못할 부상으로, 10월 1일이 되어서야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라프는 이번에는 소련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곳이었는데, 이제 소련 공군도 1942년의 그 부대가 아니었죠.


양으로 보냐 질로 보다 소련 공군의 공세는 점점 더 거세졌고, 소련 본토는 커녕 폴란드까지 거의 빼앗긴 독일 공군의 한가운데 그라프는 신나게 스코어를 올리는게 아니라 부대를 제 모습으로 싸우고 후퇴하게 하는데 골몰했습니다. 나름대로 대대장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지만 전쟁은 결국 독일이 항복하게 되죠.


그래서 남부지방으로 도망가서 그나마 나을 미군에 항복하지만, 안도도 잠시 미국과 소련의 합의로 동부전선에서 싸우던 독일군은 모두 소련군에게 넘겨졌습니다. 인간 취급은 고사하고 이제 짐승 만도 못하게 대접을 받게 되었죠.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는 그라프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최고의 에이스 에리히 하르트만 등도 처참한 꼴을 당하며 지옥같은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하르트만은 놀라운 인내력을 보이며 10년이 넘게 죽을 힘을 다해 버티지만, 이미 스타 생활을 했던 그라프는 인내력과 극기력은 바닥까지 떨어져 도저히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소련 당국에서 나치 당 시절 스타로 지내던 그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급기야 헤르만 그라프는 소련 당국에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싶고 공산주의에 매력을 느끼며, 소련 공군 조종사로 싸우고 싶다고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소련 당국에서는 그를 선전영화 등에 출현시켜 "자아비판"을 하면서 독일욕을 하게 하고는, 다른 수용소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자긍심도 뭣도 다 팔아먹은 탓에 다른 조종사들보다 훨씬 빠른 150년 1월 1일에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그를 향해 조종사 출신들은 지독한 멸시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하르트만 같은 사람들은 소련 당국의 회유와 고문에도 영혼을 팔지않고 굴하지 않은 탓에 죽거나 늦게 석방이 되는데, 처음부터 나서서 공산주의 찬양을 하며 소련군 조종사가 되겠다고 까지 했으니 다른 조종사들의 분통을 터지게 만든 것입니다.


일부 포로 출신들은 그라프를 옹호하긴 했지만, 에리히 하르트만이 퇴역 후 서독 공군에 재입대, 제트기 시대에도 나름대로 명성을 날리면서 대령으로 명예롭게 퇴역한것에 비해, 헤르만 그라프는 고향에서 용접공 노릇을 하며 지냈습니다. 과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 11월, 고향 엥겐에서 삶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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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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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惡賭鬼 | 작성시간 12.06.09 음... 뭐, 포로로 잡힌 이후 전향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지는 참 애매하지만... 솔직히 나치가 뭘 그리 잘 했다고 종전 이후에 버틴건진 솔직히 모르겠다는;
  • 답댓글 작성자나욱 | 작성시간 12.06.09 나치에 대한 충성보다는 군대의 장교로써의 자부심으로 버틴것 같아보이네요 ㅎㅎ;;;;
  • 답댓글 작성자주현 | 작성시간 12.06.09 나치가 잘했서 저런게 아니죠.

    예를 들어 대한제국이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해서 조선 지식인과 조선 신료들이 대한제국이 망하고 나서 일제에 붙어버리면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하겠죠.
    대한제국은 아예 망하기라도 했지, 독일의 경우 서동독이 건재한데, 자기 몸하나 편하려고 적국에 붙어버린 작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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