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폭격의 역사 (30) 베오그라드 공습

작성자Venice의 선원|작성시간11.11.04|조회수625 목록 댓글 3

히틀러는 오래전부터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거대한 러시아 남부를 집어삼켜-현 우크라이나-거기다 아리안 족의 레벤스라움

 

을 건설하여 슬라브 족을 노예로 삼아 부리겠다는 꿈이죠.

-국가 사회주의 낙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영국에서 지지부진하자 빨리 러시아 땅 냠냠하고 싶던 히틀러의 조급증에 불을 놓았습니다.

 

히틀러는 그냥 쿨하게 영국을 포기했고, 최대한의 병력을 모아모아서 동부전선으로 속속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급한 히틀러라도 전황을 살펴볼줄 아는 눈은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지도-

 

먼저 히틀러는 주변국을 돌아봤습니다. 프랑스와 베네룩스 삼국은 먹었고, 남쪽의 스페인의 망할 프랑코는 미적미적거릴뿐

 

확답이 없고, 이탈리아는 해군을 타란토에서 말아먹은 뒤 괜히 북아프리카서 처발리고 있고-1941년 초반 상황입니다-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는 이미 독일이 냠냠했고, 같은 독재자가 통치하는 헝가리와 불가리아는 독일의 우방국이며 석유셔틀 루마니아 역시

 

든든한 동맹국이었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의 속을 썩이는 국가가 발칸반도 밑에 하나 붙어있었으니 바로

 

그리스의 존재였습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가 합병)

 

 

-1차대전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

 

전에도 설명했지만 이탈리아가 그리스 먹겠다고 나설때부터-물론 이탈리아군은 그리스에게 역관광-그리스는 히틀러에게

 

발칸반도의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냥 조그마한 나라 무시하고 러시아 처들어가자니 그리스를 통한 영국의 견제가 신경쓰였던

 

것이죠. 여기서 잠시 발칸반도의 복잡무쌍한 역사를 잠시 설명해드리면 1400년대에 이미 오스만에게 먹힌 발칸 반도는

 

그 이후로 이슬람과 카톨릭, 그리고 정교가 맞붙는 무시무시한 전장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세르비아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이

 

1차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을만큼 아주아주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스는 이미 1800년대 오스만에게서 독립할수 있게 도와준 큰형님 영국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있었고, 줄을 잘서서 1차대전

 

승전국도 되어 터키땅을 야금야금 뺏어먹은 기억도 있었기에 발칸반도서 유일하게 영국편을 들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다른 국가들은 전부 1차대전이후 독일편(루마니아만 1차대전땐 연합국 2차대전땐 독일)-히틀러는 러시아 손보기전에 먼저

 

그리스를 손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독일의 연합국중 하나인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지금은 조각조각 나버린 유고슬라비아 하지만 2차대전당시에는 저 화려한 색깔의 국가 모두 유고슬라비아 왕국이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라 왕국은 1차대전이 끝나고 승전국들이 오스만 투르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민족자결주의를 앞세워 분할할

 

당시 러시아의 입김을 강하게 받아서 한나라가 된 요상한 국가입니다. 일단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을 믿는 지방이었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오스만투르크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을 세르비아와 마케도니아는 그 험한 오스만 통치 아래서도 정교를

 

믿었기에 자부심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그중 슬라브 계열에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세워졌고,

 

불안불안한 유고슬라비아의 앞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중 발칸반도의 국가들에게 으름장을 놓던 히틀러에 굴복하여

 

유고슬라비아는 추축국에 가입하게됩니다. 하지만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반발했습니다. 독일 제국은 옛 오스트리아 제국을

 

보는 듯했고, 이는 옛날 악몽을 떠올리게 했기에-나치독일이 오스트리아 꿀꺽했으니 별로 달갑진 않았나봅니다- 1941년 3월

 

25일 유고슬라비아에 쿠데타가 일어나 추축국에 친한 인사들이 모두 숙청되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추축국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3월 27일 장군들을 불러모아 놓고 '즉시 유고슬라비아군대와 정부를 파괴하라'라는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립니다. 1941년 4월 6일 작전명 '처형'이라 불린 작전이 실행되었고,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상공으로 독일

 

공군의 폭격기들이 날아왔습니다. 400여기에 달하는 폭격기들은 무차별적인 폭격을 베오그라드에 퍼부었습니다.

 

 

-당시 베오그라드 공습을 주도한 독일공군 제 4항공함대장 알렉산더 뢰어-

-원래 오스트리아 공군 사령관이었던 그는 나치 추종자였고,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뒤에는 독일공군

 제 4항공함대장으로 여러 전장을 누볐습니다. 그는 이 공습의 죄를 지고 전쟁후에 총살당했습니다-

 

 

-폭격으로 폐허가된 베오그라드-

 

 

-폐허가된 베오그라드 도심의 전경-

 

이 공습은 무려 10일간 계속되었고, 베오그라드의 거의 모든 시설-왕궁, 국회, 발전소, 기차역, 병영, 사령부-등이 완파되었고,

 

17000명의 시민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한편 유고슬라비아는 주변 추축국들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되었고, 내부에서도 세르비아

 

에 반발한 크로아티아계열이 나치에 협력하여 순식간에 유고슬라비아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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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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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ilmonde | 작성시간 11.11.04 민족 대학살이 일어난 동네로군요. 정말 피로 얼룩진 안타까운 역사의 ㅠ.ㅠ
  • 작성자비두우카★ | 작성시간 11.11.05 말많은 동네의 한..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1.11.05 처참하군요..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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