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폭격의 역사 (43) 독일 하늘을 뒤덮는 하얀 별 Part.2 독수리의 시련 -독일공군 반격에 나서다-

작성자Venice의 선원|작성시간11.12.11|조회수900 목록 댓글 5

1942년 2월 영국공군과 함께 작전을 펼치던 미국 제 8공군은 영국과 비교적 가까운 프랑스지방을 폭격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미공군이 심혈을 기울이며 폭격한 대상은 U보트 기지 였는데, 아쉽게도 U보트기지는 1ton짜리 폭격에도 견딜수

 

있게 두꺼운 콘크리트 벽으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이 공습들은 별로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또한 미 공군은 주로 주간

 

폭격을 실시했는데 이리 되면 시계가 좋아 목표를 분간하기는 편하지만 독일 공군또한 요격기를 발진시킬수 있었기에 미 공군의

 

피해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두꺼운 콘크리트와 대공포로 무장된 U보트 기지에 대한 공습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 8공군을 맡고 있던 스파츠장군이 북아프리카에 상륙작전이 토치 작전을 위해 100여대의 폭격기와 함께 새로이 창설된

 

제 9공군의 지휘관이 되어 전출됩니다. 그리고 스파츠 장군의 참모장이었던 이커 장군이 진급하여 제 8공군을 맡게 됩니다.

 

 

-떠나는 스파츠장군(왼쪽), 새로이 제 8공군 사령관이된 이커장군(오른쪽)-

 

한편 이 시기에 미국공군과 영국공군은 많은 의견차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두 나라가 사용하는 폭격기는 너무나 틀렸습니다.

 

영국의 주력 폭격기 랭카스터 폭격기는 8정의 자체 무장과 적은 장갑판으로 폭장량을 늘린 폭격기였고, 미국공군이 사용하는

 

B-17은 폭장량은 랭카스터 폭격기보다 적은대신 13정의 기관총과 장갑판으로 무장하여 말그대로 하늘의 요새에 걸맞는 무장

 

이었습니다. 두 폭격기의 특징이 이렇게 달랐던 만큼 이 폭격기를 이용한 전략이 서로 확연히 달랐습니다. 새롭게 제 8공군 사령관

 

이 되었던 이커 장군은 예전에 빌리 미첼이 발전시킨 전략폭격 이론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즉 적의 산업시설을 파괴하여 전쟁

 

수행 능력을 격감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끄다고 믿었습니다.

 

 

-적의 경제기반을 박살내 더 이상의 전쟁을 못하게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죠-

 

물론 영국공군도 이 사실은 잘알고 있었습니다. 이커 소장이 제 8공군이 사령관이 되자 제일 먼저 한일은 영국 폭격기 사령관

 

아서 해리스 대장을 만나는 것이었고, 여기서 이 두 사람은 서로간의 큰 의견차이를 바로 드러냅니다. 먼저 폭격 방식에대한

 

차이였습니다. 아서 해리스 대장은 독일 공군을 얕볼수 없다며, 대 낮에 독일 공습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며

 

미국공군도 영국공군을 따라 야간 공습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커 소장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일단 미공군은

 

그동안 주간 폭격 훈련만 했기에 이제 와서 야간 폭격훈련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 핑계였지만, 만일

 

영국공군을 따라 야간공습에 동참하면 미국공군의 독자적인 작전이 늦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이기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폭격 전략에 따른 의견대립이었습니다. 전편에도 소개했듯이 아서 해리스 대장은 지역 전체를 날려버리는 지역

 

폭격 전략을 주장했습니다. 이 폭격은 한방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있지만, 정밀성은 떨어졌기에, 야간 공습에 특화된 전략

 

이었습니다.

 

 

-전편에 보셨듯이 해리스의 전략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공군과 이커 장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빈약해 빠진 랭카스터보다 훨씬 튼튼한 B-17은 충분히 적의 대공포화와

 

적의 전투기 요격을 버텨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대낮에도 적의 방공망을 뚫고 적의 산업시설에 도달하여 미공군이 자랑하는

 

노던 폭격조준기를 이용하여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보다 정밀하고 강력한 타격을 적에게 주겠다는 것이 미공군의 전략

 

이었습니다.

 

 

-미공군의 자랑 노던 폭격 조준기, 비행기와 연결되어 있어, 이 조준기로 비행기를 목표 위까지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아서 해리스 대장은 미공군의 전략을 반대했습니다. 먼저 유럽 지방의 날씨 특히 독일지방은 안개나 구름이 많이 끼는

 

날씨가 많고 거기에 독일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때문에 정밀폭격은 힘들것이라면서 반대했습니다. 결국 미공군과 영국공군은

 

독자적인 폭격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국공군의 주간 폭격은 독일공군의 전력을 소련쪽에서 빼게 만들어 소련이 주구 장창

 

주장하는 제 2전선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하여간 영국공군은 새롭게 전투에 참여하는 미국공군에게 비행장을

 

내어주고 새롭게 비행장을 건설할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전투기 부대는 미공군이 프랑스에 폭격하러 갈때면 근접호위를 하는

 

형식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렇게 어느정도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동안 영국은 독일 본토 깊숙히 야간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1943년 초가 되자 미국은 유럽지방의 날씨가 악화되어 폭격을 할수 없었고, 결국 미공군의 사기는 점점

 

떨어집니다. 그리고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놀고 먹는 미공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영국공군이 야간공습으로

 

독일 본토까지 갈때, 미국공군 날씨가 안좋다고 기지서 놀고 있었으니 말이죠. 처칠이 보기에 미국공군은 독일 본토까지 가는 것

 

에 대해 겁을 먹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1943년 1월 14일 북아프리카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연합군의 회담에서 처칠은 루즈벨트에게 미국공군도 영국공군을 따라 야간

 

공습에 참여해야한다고 루즈벨트에게 말합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루즈벨트와 처칠-

 

물론 루즈벨트는 자기 부하들을 신뢰했으므로 처칠의 발언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지만, 그래도 처칠이 이렇게까지 이야기

 

했으니, 당시 육군항공대 사령관 아놀드 장군은 이커 장군에게 처칠을 만나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커 장군은 자신의 주간

 

폭격전략을 담은 문건을 가지고 처칠을 만났습니다. 처칠은 그의 문건을 읽어보다가, 적들을 계속 폭격해서 적에게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라는 문장을 여러번 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커 장군에게 이 주장을 자신에게 입증시켜달라고 주문한뒤

 

루즈벨트에게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겠다고 이커 장군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1943년 1월 21일 루즈벨트와 처칠은 미국과 영국의

 

전략 지침인 카사블랑카 훈령을 전군에 하달하는데 여기서 공군이 맡은 역활은 '최우선적으로 독일의 군사, 산업, 경제를 파괴

 

하여 독일국민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전쟁 능력을 치명적으로 약화 시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제 8공군에게는 '주간에 최대한

 

으로 독일을 공격하여, 야간 공습으로 파괴할수 없는 목표를 파괴하며, 적의 전투기부대에 큰 손실을 입혀 소련이나 지중해

 

전장으로 전투기 전력이 가지 못하게 하는것'이라고 정확한 지침을 밝힙니다. 그리고 1943년 1월 27일 드디어 미국공군은

 

독일 본토에 주간 폭격을 실시 합니다. 첫번째 목표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이자 유보트 기지중 하나였던 빌헬름스하펜으로

 

결정됩니다.

 

-독일의 주요 도시중 하나였던 빌헬름스하펜, 이 그림은 빌헬름스하펜서 건조되었던 그라프쉬페의 진수식 사진입니다-

 

이 공습은 미국공군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특히 별다른 호위기 없이 독일에 주간 공습을 해도 큰 손실이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더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폭격기의 전투반경은 더욱더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독일공군은 아직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않고 있었고, 독일공군은 좀더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3년 4월 미국공군은 독일 본토에 더 깊숙히 들어가

 

 폭격을 실시하기로 하고 목표는 브레멘에 위치한 Fw190 생산기지로 정합니다.

 

-브레멘의 위치입니다-

 

그리고 미 공군은 처음으로 대대적인 반격에 맞닥드리게 됩니다. 그동안 독일공군은 서로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 요격이 중구

 

난방으로 이루어졌습니다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각 비행대가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대대적인 요격에 나선것 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에도 레이더 망은 갖춰져 있었기에, 영국공군은 미리 야간 공습전에 선도기들이 대규모의 알루미늄 가루를 뿌리며

 

적을 기만한뒤에 공습을 떠나곤 했습니다만 미국공군은 그런 것이 없었고, 아직 독일공군을 얕보고 있었기에 독일공군의

 

대대적인 반격에 깜짝 놀랐습니다.

 

 

-B-17을 요격하는 독일공군 Fw190 강력한 무장을 한 Fw190에 걸리면 B-17도 무사할수 없었습니다-

 

이날 브레멘 폭격에서 미국공군은 115대의 폭격기를 보냈는데 그중 16기가 격추되었습니다. 보통 손실률이 5%정도되야 성공적인

 

폭격이라하는데 무려 10%가 넘는 손실률이 나왔으니 미국공군 지휘관들은 당황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독일공군은 B-17의

 

전방을 노리고 달려들었는데, B-17의 전방은 따로 방어 기총이 없어서 취약했던 부분이었습니다. 결국 미국공군은 부랴부랴

 

전방기총이 달린 B-17G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맨 아래가 전방기총이 추가된 B-17G버전입니다-

 

한편 영국공군과 함께 미국공군은 고모라 작전을 펼치며 더욱더 자신감을 얻기 시작합니다. 독일공군의 요격이 좀더 심해지긴

 

했지만 아직 견딜만했고, 미국공군은 좀더 대담한 작전을 펼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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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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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11.12.11 저 질문좀 맨첫번째 사진이 영화속 한장면인것 같은데, 영화 제목좀 아시면 알려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Venice의 선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11 국내명 특전 유보트, 다스 부트(Das boot)라는 제목의 옛날 영화입니다. 꽤 유명한 명작이죠 ㅎㅎ
  • 답댓글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11.12.12 아 감사합니다.
  • 작성자비두우카★ | 작성시간 11.12.12 그래도 이커장군은 조금 인간적이군요...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1.12.13 즐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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