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폭격의 역사 (45) 독일 하늘을 뒤덮는 하얀 별 Part.2 독수리의 시련 -검은 목요일-

작성자Venice의 선원|작성시간11.12.12|조회수860 목록 댓글 7

1943년 8월 17일 미국 제 8공군은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나치 독일의 슈바인푸르트 볼베어링 공장을 공습했습니다. 시설은

 

거의 완파되었고, 이제 후속공습이 이어지면 완전히 끝낼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출격한 영국공군은 슈바인

 

푸르트가 아닌 독일 동쪽에 위치한 페네뮌데를 공습합니다.

 

 

-페네뮌데의 위치입니다. 왜 뜬금없이 페네뮌데를 공습했을까요??-

 

 

-바로 이곳이 나치의 비밀무기인 V2개발장이었으니까요-

 

영국공군은 본토로 날아오는 이 새로운 로켓의 생산을 차단하고자했고, 영국공군의 페네뮌데 공습은 성공적이어서 비록 최고

 

개발 책임자인 베르너 폰 브라운은 살아남았지만 그를 도와 V2를 개발하던 많은 개발진이 폭격에 휩쓸려 사망하여, 나치독일의

 

V2생산에 큰 차질을 빚게 만듭니다.

 

 

-혼자 정장입고 있는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 그는 전쟁후에도 살아남아 미국으로 건너가 우주 개발에 앞장섭니다.-

 

미공군은 내심 영국공군이 슈바인푸르트를 박살내줄길 바랬으나, 영국공군과 미국공군은 고모라 작전이후 손발이 맞지 않았고,

 

이는 나치 독일에게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한편 레겐스부르크와 슈바인푸르트 공습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제 8공군은 손실된

 

기체가 미국에서 보급되길 기다리며, 호위기 항속거리내에 있는 프랑스 하늘을 누비며 독일군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미 본토에

 

있던 아놀드 미 육군항공대 사령관은 이런 상황이 맘에들지 않았지요. 그는 새로이 전방기총이 설치된 B-17G버전을 보내주면서

 

독일본토에 대한 공습을 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결국 제 8공군은 다시금 호위기 없이 주간 폭격에 나섰고, 프랑크푸르트, 브레멘등

 

을 폭격하며 다시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1943년 10월 연합군은 다시 슈바인푸르트와 레겐스부르크에대해 항공

 

정찰을 실시합니다. 레겐스부르크의 메셔슈미트 공장은 파괴된것이 확인되었으나, 슈바인푸르트의 볼베어링 공장은 놀라운

 

속도로 복구되고 있었습니다. 볼 베어링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첩보도 접수되어, 이번에야말로 이 볼베어링 공장을 박살내서

 

나치 독일을 무너뜨리겠다며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합니다. 1943년 10월 14일 아침 291대의 B-17이 영국에서 날아올랐습니다.

 

이번에는 모든 폭격기를 집중해서 슈바인푸르트를 공습하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네덜란드 상공근처에서부터 독일 전투기들이

 

달라붙기 시작합니다. 아직까진 P-47이 호위하고 있었기에 독일 전투기들은 멀찌감찌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헨 근방에서 P-47기들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독일 전투기 뿐만아니라 로케트탄을 장착한 He111기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독일 상공에서 격추되는 B-17들-

 

독일군의 요격은 1차 공습때보다도 더 격렬했습니다. 슈바인푸르트상공에 도착했을무렵에는 이미 28기가 격추되었고, 34기가

 

기체고장으로 귀환했습니다. 229대의 폭격기가 슈바인푸르트상공에서 목표를 찾을때 1차공습이후 증강된 독일의 대공포부대가

 

하늘을 향해 포탄을 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B-17기들은 절대 대형을 흐트리지 않고 목표를 찾아내어 12분동안 500톤의

 

폭탄을 볼베어링 공장에 명중시킵니다.

 

 

-폭탄을 투하하는 B-17-

 

 

 

 

-연기가 피어오르는 슈바인푸르트-

 

 

 

-불타고 박살나 버린 볼베어링공장-

 

결국 공장은 박살이 나버렸지만, 귀화하는 B-17앞에는 이미 독일 전투기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

 

졌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와중에 무려 32대가 하늘에서 격추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폭격기들이 손상을 입어 안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이 부상당하거나 죽어가고 있었을정도로 격렬했습니다. 영국해협을 거쳐 영국에 도착한 폭격기 승무원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고, 또한 부상당한 승무원들때문에 병원이 가득찼습니다. 이 공습은 워나 끔찍한 피해를 입어서 무려 40%의 손실률

 

을 기록했기에 폭격기 승무원들은 이 날을 검은 목요일이라 불렀습니다. 한편 슈바인푸르트에 직접내려와서 피해상황을 체크한

 

독일 군수상 알베르트 슈페어는 슈바인푸르트의 볼베어링 생산능력의 무려 70%가량이 파괴된것에 절망했습니다. 최대한 복구

 

인력을 투입했지만 만일 2주마다 한번씩 이렇게 연합군의 공습이 이어진다면 나치독일의 군수생산이 무너져서 4개월만에 나치

 

독일은 항복할수 밖에 없다고 히틀러에게 보고합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제 8공군도 피해가 너무커서 후속공습을 할수

 

있는 능력밖이었습니다. 이 두번의 슈바인푸르트 공습에 어마어마한 피해량은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귀까지 들어갑니다.

 

그는 폭격기의 손실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이 미공군이 주간폭격을 금지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제 8공군 사령관 이커 소장은 독일본토에대해 호위기 없는 출격을 금지합니다. 이대로 주간 폭격을 계속했다가는 제 8공군이

 

아예 사라질 위기였으니까요. 하지만 2주뒤 아주 좋은 소식이 이커 소장에게 전해집니다. 바로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장거리 호위전투기 P-51이 생산되어 영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연합군 최고의 전투기 P-51, 드디어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초기형 P-51B-

 

이 P-51은 Bf109나 Fw190보다 기동성이 더 좋았고, 폭격기가 다니는 고도 30000피트에서도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게다가 연료

 

소모가 적은 엔진에 대용량 연료탱크를 장착한 이 전투기는 보조 연료탱크까지 장착하면 독일 전 국토가 항속거리 안에 들어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항속거리를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폭격기 보급도 원활이 이루어져서 제 8공군은 1943년말 500대에 달하는

 

폭격기 전력을 갖출수 있었고, 든든한 호위전투기까지 얻어서 더 이상의 슈바인푸르트 공습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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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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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1.12.12 드디어 유럽하늘을 제패하는 전투기가 등장하는군요. 얘 나오는 거 많이 기다렸습니다. ㅋㅋ
  • 작성자VOCALOID 時代 | 작성시간 11.12.12 드디어 최강 전투기 중 하나였던 P-51이..!!
  • 작성자오우고메이지 | 작성시간 11.12.13 드디어 뛰어난 롤스로이스 엔진을 가진 머스탱이 출격하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한움쿰재 | 작성시간 11.12.13 영국 엔진 롤스로이스.지금은 자동차 엔진ㅋ
  •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1.12.13 우와!!..드디어 P-51 머스탱의 등장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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