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폭격의 역사 (52) 독일 하늘을 뒤덮는 하얀 별 Part.5 독수리의 마지막 비상 -마지막 기회-

작성자Venice의 선원|작성시간11.12.22|조회수786 목록 댓글 6

아돌프 갈란드는 하인리히 히믈러가 내린 제트 전투기 부대를 창설하기 위해 24살의 젊은 에이스 발터 노보트니를 대장으로

 

삼아서 제트 전투기 부대를 창설합니다. 30밀리 기관포 4정을 장비한 Me262는 미리 높은 고도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급강하

 

하면서 폭격기만 노리고 점사를 한뒤에 P-51이 따라올수 없는 속도로 전장을 빠져나가 다시 상승하고 다시 급강하는 방식으로

 

폭격기를 공격했습니다.

 

 

-B-24편대를 노리는 Me262-

 

스파츠 장군은 이 가공할만한 신무기의 등장에 깜짝놀랐습니다. 비록 30대라는 적은수의 노보트니 특공대였지만 작전개시

 

한달만에 폭격기 22대가 격추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동안 제공권을 위협할 수 없을 것 같던 독일공군이 갑작스레 반격에 나서면서

 

스파츠 장군은 자유 추적대신 폭격기를 근접호위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곧 미군도 이 가공할만한 전투기의 약점을

 

알게됩니다. 바로 이착륙시에 Me262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여야했는데 바로 그 순간을 노리는 거였죠. 노보트니 특공대의

 

대장이었던 발터 노보트니 소령도 P-51의 이 전술에 희생되었습니다.

 

 

-P-51은 사기적인 항속거리를 이용하여 멀리서부터 Me262를 따라가다가 착륙할만한 공군기지 근처서 대기 타고 있으면

알아서 Me262는 착륙을 위해 속도를 줄여야했고, 미공군은 그 타이밍을 절대 놓치지 않았습니다-

 

1944년 11월 8일 발터 노보트니 소령은 전투기 총감이었던 아돌프 갈란드의 눈앞에서 착륙을 시도하던중에 P-51의 공격을 맞고

 

전사합니다. 아돌프 갈란드는 남은 인원으로 제트전투기 부대를 재편성하여 독일 깊숙한 지점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이젠

 

완전히 재량권을 얻은 미공군은 끊임없이 루르지방의 석유시설을 공습했습니다. 4일간 펼쳐진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300대의

 

전투기를 잃었습니다. 이미 하늘에서 미공군을 당해낼수 없었고, 연료부족으로 인한 훈련부족은 더 이상 메꿀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독일이 믿었던 플로에스티는 이 시점에서는 소련군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돌프 갈란드는 대 반격을 위해서 거의 3000대 가까운 전투기를 모았습니다. 11월 12일 갈란도는 괴링에게 미국의

 

폭격기 편대에 대한 대규모 반격이 준비되었다고 보고 했습니다. 갈란드의 계획에 따르면 2000여대 가까운 전투기를 한꺼번에

 

띄워 500~600대 가까운 적 폭격기를 격추하면 미공군의 폭격에서 잠시 자유로워 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갈란드가

 

생각 못한게 있었으니 이미 미 제8공군은 폭격기만 수천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미공군의 물량이란-

 

그러던 중에 아돌프 갈란드에게는 청천병력같은 명령이 떨어집니다. 1944년 11월 말 히틀러에게 명령이 떨어졌는데, 갈란드가

 

힘겹게 모은 전투기중 1200대를 공세에 쓰겠다는 명령이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잠시 설명해드리면 1944년 9월 프랑스에서 완전히

 

쫒겨난 독일군은 독일군의 프랑스쪽 국경방어선인 지크프리드 라인을 피해오려는 미군과 영국군을 방어하기 위해 이번엔 반대로

 

저지대 국가에서 방어전을 치뤄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미군의 전공을 시기하던 영국군 사령관 몽고메리 장군이 네덜란드의

 

독일군을 일거에 소탕하고 교량을 확보해 단숨에 라인강을 넘어 크리스마스가 오기전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생각하고는

 

영국의 대규모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작전을 펼쳤으니 유명한 마켓가든 전투였습니다.

 

 

-마켓가든 작전당시 영국군 공수부대-

 

하지만 이 작전은 대 실패합니다. 다리를 점령하지 못했고, 미군과의 협조가 시원치 않았으며, 노르망디에서부터 멀어진

 

보급선과 수송체계차단작전으로 인해 파괴된 도로망과 교량때문에 보급이 원활치못해서 공수부대는 당시 독일군 기갑사단에

 

의해 무참히 패배하고 맙니다. 한편 이 작전으로 인해서 히틀러는 한줄기 희망을 보게됩니다. 1940년 한때 날렸던 그 당시를

 

회상하며 네덜란드에 진입한 미군과 영국군을 프랑스군 처럼 다시한번 박살내겠다는 망상을 품게 됩니다. 이에 따라 히틀러는

 

갈란드에게 이 작전에 필요한 전투기를 1200대 내놓으라고 했고, 갈란드는 눈물을 머금으며 전투기를 내어줍니다. 갈란드가

 

계획했던 대반격작전도 결국 취소가 되버리고요. 그럼 이 히틀러의 마지막 작전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그 유명한 벌지 전투

 

였습니다.

 

 

-벌지 전투의 실질적 총사령관 발터 모델장군, 별명은 총통의 소방수-

-이 사람은 만슈타인이나 구데리안과 달리 방어전의 특화된 장군이어서 동부전선서 급한 곳을 사기적인 방어 작전으로

막아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하는군요-

 

벌지전투 당시 동부전선은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마무리 되어감에 따라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고, 서부전선을 안정화

 

시키고 동부전선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습니다.

 

 

-나폴레옹전쟁 당시 러시아 장군이었던 표토르 바그라티온-

 

잠시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해 설명드리면 소련군이 189개사단 200만명을 동원해서 독일의 중앙집단군을 포위 섬멸한 작전입니다.

 

동부 유럽에서 펼쳐진 작전으로 독일의 중앙집단군 80만명이 녹아내리고, 동부유럽의 대부분의 추축국 군대가 소련군대에게

 

점령당했죠. 앞에 설명드린 루마니아 플로에스티도 이 작전 중에 점령당했습니다. 다만 1944년 8월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근처까지 진격한 소련군이 독일군의 대반격에 패퇴하여 1945년 1월이 올때까지 바르샤바근처에서 머물게 됩니다. 그동안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죠.

 

 

-독일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폐허가 된 바르샤바-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뒷이야기는 많습니다만 바그라티온 작전 말 작전 한계점에 가까워진 소련군이 일부러

강건너 불구경했다는 설이 제일 많이 퍼져있습니다-

 

다시 서부전선으로 돌아와서 1944년 12월 16일 유럽의 악천후를 틈타 벌지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군은 벨기에 아르덴

 

숲을 지나서 연합군을 공격했습니다. 일주일간 계속된 악천후에 독일군은 미군과 영국군을 가로지르며 12월 21일 바스토뉴시를

 

포위합니다만 101공수사단이 바스토뉴를 몇일간 수비하며 시간을 끌었고, 12월 23일 날씨가 개이기 시작하면서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의 대반격이 이어지고 12월 24일 연료가 바닥난 독일군은 결국은 패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45년 1월 1일

 

히틀러가 갈란드에게 뺏어온 전투기들로 보덴플라테 작전이 펼쳐졌지만 9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연료 부족으로 실패하고 맙니다.

 

 

-추락한 Fw190, 이 작전으로 귀중한 파일럿 200여명을 잃은 독일공군은 이제 더 이상 여력이 없어집니다-

 

벌지전투로 미군은 9만여명의 사상사가 발생했고, 독일군은 8만5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만 미군은 이를 보충할

 

여력이 있었고-실제로 당시 프랑스-네덜란드 지방에 주둔한 미군은 약 83만명-독일군은 이 병력을 보충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마지막 모든 예비전력을 이 전투에 쏟아 부었고, 이제 더 이상 소련군과 미-영연합군의 진격을 저지할 지상군도

 

남아 있지 않았고, 하늘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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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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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기러기 | 작성시간 11.12.23 ㅇㅇ..ㄷㄷ
  • 작성자비두우카★ | 작성시간 11.12.23 아... 이제 2차대전도 막바지에 다다르는군요 ㅠㅠ 그와중에 소련의 189개사단... ;;
  •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1.12.23 발터 모델.
    개인적으로는 구데리안, 만슈타인과 더불어서 그 독일군에서도 가장 뛰어난 독일장군이 아닐까 싶음.
  • 답댓글 작성자Venice의 선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12.23 구데리안과 만슈타인이 공세적이라면 발터 모델은 수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Che_GueVaRa | 작성시간 11.12.23 베니스 선원님// 바바롯사 작전 당시 구데리안 휘하 전차사단장이었을텐데 (아마 3기갑사단인가로 기억함.)
    그 때에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여주기도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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