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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Τιταυιζ 작성시간07.11.03 뭐랄까, 예수회 등장이전엔 가톨릭 수도원 세력중 가장 머리좋고, 자부심이 너무 강한 사람들이랄까요.. 때문에 프란치스코파가 인정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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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Floyd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11.04 사실 주교는 운도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30년까지는 리보니아 십자군 운동이 활발해서 많은 십자군 자원을 리가 교회와 검의 형제단이 끌어가고 있었으므로 주교가 서방의 지원을 받아 프러시아에서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233년에는 프루스 인들에게 납치 당해버렸으니 튜턴 기사단이 프러시아 교회를 한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