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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에 취해 있다 깨어 [최창의]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1.03.15|조회수22 목록 댓글 0

[높빛시론] 트로트에 취해 있다 깨어

 

최창의 (행복한미래교육포럼 대표/ 세명대교수]

 

[고양신문] 지난 겨우내 안방을 달구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들이 끝났다. 한동안 텔레비전을 틀면 ‘트롯 지겨워’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잦았던 트로트 열풍이었다. 사실은 나도 꽤 오랫동안 트로트 방송에 빠져 있었다. 처음엔 가볍게 심심풀이로 보기 시작한 게 차츰 못 말리는 중독이 되어갔다. 평소에 단 한 번도 시청해 보지 않은 TV조선도 트로트 챙겨보려고 드나들었다. 그 방송 포함 세 곳 채널을 돌아다니며 트로트를 보고 듣고 따라 부르며 겨울날을 지나왔다.

그럼 트로트가 왜 이렇게 우리 사회에 파고들어 널리 유행하는 걸까. 물론 코로나19라는 변인이 작용했지만 내 생각에는 신선한 젊음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싶다. 흔히 트로트라면 낡고 흘러간 옛것, 나이 든 사람들이 즐기는 가요, 촌스럽고 뻔한 노래라는 통념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고정된 통념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것이 주목을 받고 성공을 거두었다. 트로트의 정체성인 가사와 곡은 그대로이지만 부르는 사람들을 젊고 새롭게 한 것이 주효했다.

젊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니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진부하게 느껴졌던 트로트가 참신하고 멋스런 문화로 바뀌었다. 그래서 너나 나나, 어른이나 아이나 가리지 않고 트로트를 좋아하고 불러댄다. 추억을 소환하는 흘러간 곡을 듣는가 하면 최근에 나온 경쾌한 곡도 배우면서 모처럼 세대 간 공통의 문화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직된 사고를 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우치게 된다. 이런 트로트 열풍을 보고 한 목사님은 교회가 세상 변화에 둔감하다면서 트로트 성가를 만들어 볼 때라고 하였다.

트로트 경연에서는 국악을 전공한 출연자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게 자주 눈에 띈다. ‘트로트전국체전’에서 한때 최정상에 올랐던 신승태가 그렇고, ‘미스트롯2’에서 우승한 양지은과 준우승한 홍지윤 같은 이들이 모두 판소리나 경기민요 전공자들이다. 더욱이 트롯신동이라 불리는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일찍이 판소리를 배워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만큼 우리소리가 발성을 폭넓게 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데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다만 국악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전공자들이 트로트로 방향을 트는 게 아닌가 싶어 못내 아쉽다. 더구나 국악에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어린아이들이 일찍부터 대중가요 시장에 취해 국악을 포기할까 싶어 안타깝다.

경연대회이지만 노래 실력으로만 우승하기 어렵다는 걸 시청자들이 일러주는 맛도 쫄깃했다. 연예인이나 가수 출신인 심사위원단들은 노래 실력을 중심으로 판정을 한다. 그런데 대중들은 여기에 더해 출연자들의 살아온 내력과 인간성을 평가하였다. 그래서 십여 년 넘게 트로트 한길을 걸으며 고생해 온 가수들에게는 후한 격려를 보내주었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미스트롯2에서 7인의 최종 결선까지 오른 진달래가 학폭으로 하차하는 장면이다. 진달래는 그 실력과 인기도로 봐서 아마 우승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학창시절 저지른 학폭 사건으로 단칼에 가수의 꿈과 삶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그에 대면 진달래가 빠져나간 자리에 추가 합격으로 끼어 들어온 양지은은 사랑과 인기를 거머쥐는 행운을 얻었다. 양지연은 다른 사람들보다 뒤늦게 들어와 이틀 만에 두 곡을 연습해 불러내면서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자신이 20대 중반에 아버지에게 신장을 떼어내 주고 그 후유증으로 국악 인생을 포기한 사연은 훈훈함을 더해주었다. 무명의 그이가 우승이라는 왕관을 쓰게 된 건 노래 못지않게 시청자들의 응원 문자 투표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만큼 대중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실력만이 아니라 인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시대 흐름을 보여준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트로트를 즐기면서도 여전히 묵직하게 남는 뒤끝은 무엇일까? 그것은 경선이 숙명처럼 안고 있는 상업적인 순위 경쟁의 문제점이다. 특히 오직 1등만을 가려내 우대하고 나머지는 들러리가 된 듯한 시상 방식이 불만스럽다. 이는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우리 교육의 속내를 재연출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사실 결선에 오른 7명은 모두 개성이 있고 그마다 잘 하는 독특한 재능이 있다. 따라서 7명까지만 가리고, 분야마다 재능에 걸맞는 시상을 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더구나 1등에게만 1억원 넘는 상금 몰아주기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트로트에 취해 있다 깨어보니 어느덧 새봄이 다가와 있구나. 이제 그만 털고 일어설 일이다.

출처 : 고양신문(http://www.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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