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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까치발 세우고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3.11.15|조회수13 목록 댓글 0

까치발 세우고

 

                 전동균

 

한창 익어가는 모과나무 아래

떨어져 썩어가는 모과들을 보면

희한한 일이지내 혼은

비쳐오는 양광(陽光)처럼 투명해지나니

 

모과가 떨어진 자리의

모과가 떨어진 만큼 위로 치켜진 나뭇가지들을 향해

까치발을 세우고 쑤욱

손을 뻗치면

아슬아슬한 허공이 무너지기 직전에

잠깐 손끝에 와 닿는 것들,

이것들이 혹

사랑이나 죽음이나 신(같은 것들의 숨결이거나

그림자는 아닐까궁금해하면서

연인의 속살인 듯 황홀하게 더듬으면서

 

나는 또 생각하지

일찍 떨어진 모과들이 걸어가야 할 먼 길과

아직 끝나지 않은 세상과의 싸움

용서를 빌기에는 너무 이른 가을 하늘의 쾌청과

그 속에서 출렁출렁 흔들리는

올가미들을

 

*거룩한 허기(2008,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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