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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참 좋은 선생님[경기신문]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5.11.12|조회수128 목록 댓글 0
 

참 좋은 선생님

 

최창의(경기도교육위원)/11월 14일치 경기신문


요즘 교원 평가를 둘러싸고 때 만난 듯 교사들을 내려치는 모습을 보자니 심란하여 잠을 못 이루다 책이나 보려고 앉았다. 며칠 전에 보내 온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보를 펼쳐들었다. 아이들의 참된 삶을 가꾸기 위해  글쓰기 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 모임에서 달마다 펴내는 회보이다. 차례로 읽다 이데레사선생님이 쓴 글쓰기 지도 사례를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이데레사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선생님은 상훈이가 일기장에 쓴 시를 읽다가 자신도 얼어붙어버렸다고 한다.

 

                  나의 비밀 (4학년 이상훈)

나에게 비밀이 오늘부터 생겼다. / 퐁퐁을 타는데 갑자기 민정이가 / “민우야, 니 엄마 있나?” / “아니, 내가 네 살 때 가출했다.” / 허거걱, 퐁퐁 타던 우리는 몸이 얼어붙었다. / 그러자 선경이가 말했다. / “야, 유리 엄마도 자기 아빠 돈 안 벌어온다고 가출했대.” / 우리는 퐁퐁을 타다 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선생님이 가르치는 아이들 일기장에는 자기 동네의 팍팍하고 힘든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이따금 이런 일기를 보면서 더 이상 가슴속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그대로 놔 둘 수 없어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했다.

 

이선생님은 재량시간이 돌아오자 자신이 30년도 넘게 가슴 속에 꽁꽁 숨겨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부자집에서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공주처럼 살다가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으면서 겪은 아픔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어째 어째 모아 둔 돼지 저금통의 배를 아버지가 몰래 가르다 들킨 일을 말하다가 그만 눈물까지 흘리고 말았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 몇도 울거나 눈가가 발개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디가서 털어놓지 못해서 가슴속에 돌덩어리로 남아있는 거 덜어내어 글로 써 보자.’

 

처음에는 멈칫 하던 아이들이 숨죽여 글을 써내려간다. 무슨 일에도 돌콩같이 눈 하나 깜짝 않고 글이라고는 죽어라고 안 쓰는 창식이도 막 흐느끼며 글을 쓴다. 창식이는 부모가 싸워 따로 사는 어머니집에 가고 싶은데 친할머니가 반대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한다. 가난한 동네라 그런지 다른 아이들 사정도 비슷하다. 현아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큰 아빠집에 얹혀 사는 슬픔을, 수연이는 일곱 살 때 집 나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유리는 아버지 일자리가 끊겨 급식비와 학원비도 못내 울고 싶은 사정을 고스란히 풀어냈다.

 

이선생님은 아이들이 써 낸 글을 읽어내려가다가 가슴에 꼭 안으면서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날마다 글을 들쳐보면서 이 아픔들을 어떻게 어루만져 줄까 생각하다가 하나하나 편지를 써 주자 다짐했다. 그리고 학교 생활 틈틈이 아이 한 명씩과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거닐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픈 상처들을 끌어내 위로도 하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이들은 속도 모르고 자기 선생님이 데이트 상대를 자주 바꾼다고 ‘바람둥이’라고 놀렸다고 끝을 맺었다.

 

이데레사선생님의 글쓰기 교육 사례를 다 읽고 나니 선생님의 깊은 사랑이 뜨겁게 전해온다. 비록 그반 아이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나 행복하겠다. 이처럼 좋은 선생님이 어찌 이데레사선생님 뿐이겠는가? 오늘도 이름도 빛도 없이 교단에 서서 아이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쏟아붓는 또다른 선생님들이 곧 이 나라의 희망이자 힘이다. 그런 선생님들에게 교원평가 따위로 옭아매려 한다면 거추없고 어리석은 노릇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이요, 그들을 지켜주는 발판은 오직 올곧은 양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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