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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상 창고

시골 할머니와 농사꾼 교수의 이야기

작성자교육자치|작성시간06.11.18|조회수71 목록 댓글 0
 <다시 읽는 글>

시골 할머니와 농사꾼 교수의 이야기 

                  

                                                                                                  최창의(1997년 9월, 한국글쓰기회보에 쓴 글) 


우리 아이를 변산 공동체에서 8박 9일 동안 하는 ‘여름 자연학교’에 데려다 놓고 나도 한 이틀 함께 있기로 했다. 머무르는 동안 지난 장마철에 변산공동체 식구들이 다른 일에 바빠 땅콩밭에 무성하게 자란 풀 뽑기를 거들기로 했다. 한나절씩 이틀째 풀을 매러 나갔다. 처음에는 변산 식구들이 그 동안 미뤄 둔 일 가운데 한 가지라도 모양나게 해치워 보겠다고 별렀지만 막상 풀매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여름 햇볕이 밭 가운데 내리는 아침이다. 언뜻언뜻 부는 바람이 이마를 서늘하게 한다. 변산 공동체 식구 세 사람과 나, 그리고 이성인 선생이 밭 고랑 사이에서 땅콩밭 풀매기에 한창이다. 이성인 선생은 엉뚱하게 땅콩까지 뽑아 버렸다고 자그만 소리로 말한다. 옆에서는 농사꾼이 된 윤구병 교수님이 괭이로 밭고랑 긁는 소리가 드르럭드르럭 귓전을 울린다. 우리 여섯 사람이 있는 밭 건너편으로는 할머니 한 분이 일어설 줄 모르고 콩밭을 매고 있다.

밭에 꼬부라져 땀을 비질거리며 땅콩밭을 매려니 뙤약볕 사이로 가끔씩 부는 바람만 기다려지고 서늘한 그늘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런 참이라 윤 선생님이 밭고랑으로 나가면서 던진 한 마디가 기다렸다는 듯 귀에 쏙 들어왔다.

“물 좀 마시고 하세요.”

그래도 남은 고랑을 다 매고 쉬려는 듯 느지럭거렸는데 두어 번 쉬고 하라는 말이 들려서 밭 가장자리로 나왔다. 밭 가장자리 풀밭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죽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서 쉼터로는 그만이었다.

 

우리는 그 나무 아래 둘러앉아 물도 마시고 담배도 한 대씩 맛있게 빨았다. 둘러앉은 사람이 모두 일곱이다. 건너편에서 밭을 매던 할머니도 함께 앉았는데 이마에 졸졸 흐르는 땀을 닦느라고 손놀림이 바쁘다. 얼굴을 보니 오글오글 주름이 지고 한쪽 눈은 반쯤 감긴 모습이 익히 보아온 순박한 시골 노인네다. 맞은편에 윤구병 선생님은 누르팅팅하고 푸르팅팅한 색깔이 섞인 소매없는 런닝구를 입었는데 등판이 흥건히 땀에 젖어 몸에 달싹 붙어 있다.

그렇게 잠깐 쉬려는데 한 줄기 바람이 우리들 사이로 휘이익 불어온다. 일하다가 몇 번 맛 본 바람인지라 참 달고 시원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 때 윤구병 선생님이 툭 한 마디 내뱉는다.

“거 미치도록 시원하다. 이런 바람은 살찌는 바람이지요.”

맞은편에 앉아 땀을 닦던 할머니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니 맞받았다.

“어찌 시원한지 오장을 녹이는구먼이라우. 이렇게 일허다가 맞는 바람은 참 살찌지라우. 그려서 그런 노래도 안 있소.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고마운 바람…….”

할머니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를 어찌 알까 생각하다가 그 노래를 몇 사람이 작은 소리로 불러 보았다. 부르면서 할머니에게는 그저 입으로만 노래를 알던 우리와 달리 그 노래가 삶의 노래였겠다 싶었다.

 

노래가 끝날 즈음부터 시골 할머니와 철학 교수 출신 농사꾼 윤구병 선생님은 노래처럼 술술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먼저 할머니다.

“선상님은 뭔 일을 그리 심하게 허요. 밥도 애기 밥맨치로 쪼끔 먹고 심도 안 드시오? 참 안쓰럽소. 그저 시원헌 디서 손발에 흙 하나 안 묻히고 편안히 살 분이 뭣 허러 이 촌까지 와서 이 고상을 허시오. 선상님은 심도 안 드시오?”

할머니는 윤 선생님이 건강을 지키느라 밥을 다른 사람 반 정도 먹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전날 점심 밥상에서도 애기 밥만큼 조금 먹는다고 줄곧 걱정하고 타박하고 그랬다. 할머니의 말에 나도 가슴이 짜르르하며 윤 선생님 답이 자못 기다려졌다.

“할머니, 하나도 힘 안 들어요. 아주 행복해요.”

윤 선생님은 이 말을 하면서 위아래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웃는다.

“선상님은 좋을랑가 몰라도 마누라는 선상님이 참 그립겄소. 선상님은 서울 있는 마누라랑 자식들도 안 보고잡소?

“예, 안 보고잡어요.”

윤 선생님이 일부러 쓰는 사투리에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었다. 윤 선생님이 부러 감추고 싶은 마음을 휘젓기라도 하듯 할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선상님은 참 인정머리도 없소. 허지만 사모님은 선상님이 얼매나 그립겄소. 또 이렇게 심들게 일하는 선상님을 보면 얼매나 속이 상허겄소.”

“다 남편 잘못 만난 지 팔자지요.”

“그러지라우. 팔짜지라우.”


할머니는 윤선생님의 말에 얼른 동조를 나타낸다. 뜻밖이라 여겨지면서도 팔자로 생각하고 살아온 할머니의 먼 뒤안길이 설핏 보이는 듯 하다. 할머니는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줄줄 새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변산 공동체에 와서 함께 살게 된 자신과 아들도 팔자속으로 믿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 아들만 해도 그렇지라우. 지 맴 속에 뭔 팔자 수가 들었던지 언지부터 농사를 짓고 살고 싶다고 헙디다. 그저 시원헌 디 앉아서 사진관이나 허지, 지가 언지 농사를 지어 봤다고 부득 부득 내려오자고 안 혔소. 그려서 짐 싸 들고 여그를 오는디, 가도 가도 꼴짜기로 들어서길래, 어띃게 여기를 알고 왔느냐고 물응게 책 보고 왔다고 헙디다.”

책은 윤 선생님이 쓴 <실험학교 이야기>로 짐작되었다. 이 말에 윤 선생님은 할머니 아들이 참 순박하고 열심히 생활해서 이곳 사람들 칭찬이 자자하다고 덧붙여 주었다. 할머니는 마음이 누그러지는 듯싶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디 이게 좋을 징존지 나쁠 징존지 모르겄소. 농사를 지면 맴은 든든허지만서로…. 한 해 실패허더라도 땅이 있고 내년에 잘 허먼 되고 허는 것은 있응게. 허지만 촌사람은 잘 살어도 매꼬리(맵시)가 나질 않지라우.”

 

“할머니, 그래도 시골이 좋지 않아요?”

“모고(모기)만 없으먼 살겄소. 공기도 좋고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살먼 밥맛도 좋고 허지라우. 헌디 어찌 그놈의 모기떼가 어틓게 뎀비고 물어뜯어쌌는지.”

“할머니 고향은 어디신데요?”

“꼬치장 많이 나는 순창이요. 순창도 참 좋지라우.”

“순창보다는 그래도 여기가 좋지 않아요?”

윤 선생님이 묻는 말에 할머니는 한참 생각을 한다. 반쯤 감긴 눈이 멎은 듯 그저 앞만 바라보다가 순창도 이것저것 좋은 것이 많다고 한다. 윤 선생님이 그저 잠자코 듣다가 넌지시 말한다.

“그렇지만 순창은 바다가 없잖아요.”

“그렇소. 여그는 바다가 있응게 여그가 더 좋은 모양이요.”

그 말에 우리는 모두 한바탕 와그르르 웃어제꼈다.


이렇게 한낮 나무 아래서 달고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맛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더위는 싹 가시고 마음은 평화롭다. 그 때 할머니가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이렇게 앉아 쉬다 보면 세월 가는지 모르지라우.”

하며 일어선다. 따라 우리도 일어섰다. 정말 할머니와 윤구병 선생님의 살아 있는 철학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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