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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환 칼럼 ■

[스크랩] 일본여행기 3

작성자김석환|작성시간06.05.24|조회수57 목록 댓글 1
 

딱 잠에 떨어져 딱 눈을 뜨니 밖이 어스름하다.

시간은 꽤 되었는데 창문이 어스름해 밖을 보니 보슬비다. 녀석들이 어제 잠깐 쉬고 결국 여기까지 날 따라 온 모양이다.

할 수 없이 아침 산책을 포기하고 어물거리다 아침밥을 먹었다.


재작년의 아침밥보다 훨씬 내용이 알찼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방값도 좀 비싸졌고 아침밥도 돈을 받는 것으로 바뀌어서 내용도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단다.

반찬 중에는 생선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소고기 갈비 몇 점도 나왔다.


역시 어제 올 때처럼 지하철을 세 번 타고 화랑에 도착해서 그림 이름표를 다시 보니 서너 개가 맞지를 않았지만 ‘닛꼬’라는 동경 외곽의 휴양도시로 우리를 싣고 갈 미니버스가 일본 화가들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지라 손을 못 보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버스는 작았어도 뒤에는 탁자가 있고 그 좌우로 좌석이 있어서 포커 판이나 화투판을 벌이면 딱 알맞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내내 그 자리를 술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고 여행을 했다.


고속도로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한적하고 꼭 우리나라 국도만 같은 그런 길을 시간 반 정도를 반은 졸면서 경치를 보면서 달리니 ‘가와지’ 댐이라는 곳에 차가서면서 화장실에 가란다.

댐이 좁으면서 깊었다, 댐 상단 가운데로 수문이 있어 여차하면 물을 내려 보내는 모양인데 그 바로 밑에 지붕이 달린 기계실 같은 것이 있는데 물이 그 지붕으로 떨어지면 성할까 쓸데없는 걱정이 다 되었다.

반대편을 보니 그 곳은 호수 쪽 임에도 불구하고 물까지 한 참 밑이었는데 엄청 큰 잉어하고 금붕어가 노닐고 있었다. 고기들이 그처럼 평화롭게 노니는 것을 보니 낚시 금지 구역인가보다.


이어서 닛꼬의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

이 지방 전통식당이라는데 식당은 운치가 있고 음식은 정갈하기만 했다.

반찬도 여러 종류로 우리나라 은어인 듯한 고기구이와 이 지방 특유의 반찬이라는 유부 말이 등이 있는데 역시 대체적으로 달착지근해서 내 입맛과는 좀 달랐다.

그런대로 배 불리 먹고 하나씩 그 식당 진열대에서 하나씩 골라잡은 일본 측 선물을 챙기고 숲 속을 걸어 올라갔다.


그 길은 우리로서는 아주 흔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일본은 아주 흔한 풍경인 그런 곳이다.

좌우로 두서너 아름은 되고도 남는 나무들도 빽빽하고 그 밑 둥은 이끼로 둘러쳐진 그런 풍경에 그 틈사이로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우리 중에 한 여사는 사진 찍기에 열심인데 한 발은 아스팔트길에 한 발은 그 숲에 걸친 멋 진 폼이다.

그처럼 숲과 길이 한참의 거리가 아니고 오직 한 발짝도 안 되는 거리에 천연림이 천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런 자연이 기후에서인지 삼림정책 때문인지 국민성 때문인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바로 곁에 우거진 숲이 흔하게 있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조금만 도심지를 벗어나면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보니 분명 나한테는 부러운 일이다.

 그런 이끼로 고색창연한 산책로 비슷한 찻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어느 신사의 입구가 나온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입구를 옆구리로 기어들어 온 셈이다.


왼쪽으로 꺾어드니 거짓말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운 절간 같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쇼그’ 신사란다.

아마 이 닛꼬에서는 규모로나 건축양식으로나 제일 유명한 신사인가보다.

과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어 있을 만 했다.

정문을 들어서 왼쪽에 건물이 있고 그 뒤로 커다란 5층 목탑이 서 있고 계속 계단을 오르면서도 여기저기 건물들이 널려 있었다. (일본의 탑은 층이 올라갈수록 체감률이 적용되는 우리의 탑과는 달리 층이 올라가도 그 지붕 크기의 변화가 없는 탑이 많은 것이 또한 한 특징이다.)


여러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껏 일본의 전통건물에서 느끼지 못한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장식성이었다.

사실 난 일본에 처음 오기 전부터 가끔 내 그림이 일본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적인 것을 작품의 커다란 기둥으로 삼는 나로서는 대단히 듣기 거북한 말이었으나 정작 일본에 여러 번 다녀갔어도 그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오늘에서야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원래의 내 작품은 나무를 깎거나 파거나 하면서 거기에 장식적인 무당 색을 칠 하는 것이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였는데 여기의 건물들의 대부분은 그처럼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그 위에 화려한 색칠을 한 것이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이제껏 일본의 건물에서 봐왔던 단순성하고는 거리가 멀었고 교토 나라 지역의 한국적 특징이 돋보이는 건물들과도 아주 다른 양식이었다.  이런 장식적인 양식이 에도 시대에 만들어진 일본 건축의 한 정형이 아닌가 싶다.

하긴 우리나라 절간의 건축물도 나무를 깎아서 채색을 한 부분이 많은 것을 보면 그 원류는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것은 그 장식성이 지나칠 만큼 복잡해서 다소는 조잡함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었으나 역시 그 장식성은 돋보였다.


그런 넘치는 장식성과 함께 채색도 많이 달랐다. 특히 금색과 흰색을 많이 쓴 채색의 형식은 우리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정교함의 정도로는 내 작품과는 너무도 판이한 느낌이지만 역시 나무를 깎고 다듬은 뒤 색을 입혔다는 점에서 상통되는 것이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드디어 그 본당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우리로 치면 대웅전 같은 곳인 모양인데 그 곳의 장식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리 저리 사진 찍기도 좋을 것이고 특히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실루엣이 참으로 좋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촬영금지구역이란 표시판 때문에 기억력 나쁜 머리통에서 컨트롤하는 눈으로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많은 건물 중에서도 유독 그 건물만이 유네스코에 등록된 것이란다.


그 건물을 나와 어는 건물에 들어가니 거기에 지키고 있는 사람이 양손에 들고 있던 나무토막을 "탁! “하고 치니 그 에코가 기막히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용의 울음이란다.

사방이 용 그림으로 꽉 찬 그런 건물이었는데 정말이지 그 에코는 상상을 초월한 아름다운 소리였다.


우리는 촌스럽게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와 한참을 달려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는 온천장으로 갔다. 소금온천이란 뜻의 ‘시오바라’로서 1200년부터 존재해온 온천지 대란다. 우리가 들린 온천장 여관은 ‘다치바나’가가 대대로 운영해오는 그런 곳이란다.


온천장하면 커다란 버스가 여러 대 서있고 건물도 크기만 하고 시끌벅적한 곳만을 알아온 나로서는 처음에는 잘 못 온 줄 알았다.

그냥 평범한 가정집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집 앞에 승용차 한 대만 있을 뿐이고 집도 조용하고 집 앞에 주차장이라고 해야 몇 대 정도 댈 정도고 그 주변에 이런 저런 꽃들만이 화사할 뿐 영업집 같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다치바나가라는 간판은 작지만 있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 간 이층의 방에 짐을 풀고 여관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대뜸 목욕탕으로 갔다.

목욕탕도 말이 목욕탕이지 그저 대 여섯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꽉 찰만한 그런 크기였다.

가족탕으로 쓰면 딱 맞을 그럴 크기다.

욕탕에 들어가서 몸을 당구니 온도가 그런대로 알맞아서 몸이 ‘딱금거리지’ 않아서 좋았다.

워낙 크기가 아담하다 보니 아마 집 욕탕정도로 착각을 했는지 나는 그만 샤워를 하고 탕으로 들어가는 것을 깜박했다. 그걸 놓칠 친구가 아니라 한마디 들을 수밖에 없었다.


탕 밖으로는 옥외 탕이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 나갔다.

그 곳도 작기는 마찬가지여서 두셋이 들어가면 알맞을 만한 크기이다.

주변으로는 자그마한 나무와 야생화가 좀 있을 뿐 특별히 담 같은 것은 없어서 이들의 ‘ 목욕문화 오픈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20년 전 쯤 처음 일본에 와서 일본 목욕탕에 갔을 때 기억이 났다.

한참 옷을 벗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앞을 보니 내가 여자 앞에서 옷을 벗은 것이 아닌가?

그 목욕탕은 남탕 여탕의 간격을 좀 높은 간이 벽 같은 것으로 막고 그 한 중앙 높은 의자에 한 사람이 두 곳을 다 관리하게 되어 있었고 아마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마친 그 때는 여자가 관리를 하는 시간이라서 내가 그처럼 이상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 말고 아무도 그런 것에 별 신경을 안 썼다.

그 즈음 일본 친구 집에 갔을 때도 목욕을 하라기에 욕탕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았는데 친구와이프가 불쑥 들어와 수건을 가지고 가면서 “나 아무것도 안 봤어요.”하던 일이 기억에 났다.

그들은 목욕을 밥 먹듯 하다 보니 그저 세수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그 때 여자 옥외 탕에서 우리일행의 말소리가 났다.

거기는 나무판으로 남녀 탕을 가리개를 쳤기에 말소리가 다 들리는 것이다. 일어나 그 칸막이 끝으로 고개를 밀면 바로 여탕이다.

가만히 보니 밑으로 나무 틈이 5미리정도 벌어진 틈이 있어 훔쳐다 보니 감질만 날 뿐이다.

누드 할 때처럼 인물이 전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부분만 보이니 그게 토막 나  살코기처럼 어는 부위인지 감지하기가 힘들고 그나마 망원경이 피사체를 움직여 찾듯이 하는 것이 아니고 피사체가 틈으로 와야 하니 우리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에는 턱도 없었다.


적당히 머리는 시원하고 물도 뜨겁다기보다는 따뜻한 정도라서 목욕탕에 들어가기만 하면 파김치가 되는 나로서는 담그고 있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서 한참을 담그고 있다 우리는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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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킹오브더 코트 | 작성시간 06.05.24 교수님!! 이번엔 일본을 여행합니다...다음편 부탁해요...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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