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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환 칼럼 ■

영동의 민주지산을 다녀와서

작성자김석환|작성시간09.01.17|조회수77 목록 댓글 3

이름도 특이한 영동의 ‘민주지산’에 갔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연중 제일 추운 날을 잡았다.

그래도 천안에서 기차를 타고 일행을 만나 영동에 닿아, 손님이 우리 빼고 두어 명이 전부인 한적하기만 한 시골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민주지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대형버스들이 빽빽하다. 일요일이라고는 하지만 특이한 풍경이다. 어려운 경기 탓에 시름을 잊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산에 오르는 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상도 말씨다. 이곳이 삼도의 접경이건만 그렇게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들리는 것도 좀 특이하다. 산은 평이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눈이 거의 없더니 올라 갈수록 눈이 조금씩 밟힌다. 거의 정상에 가까울수록 눈이 그런대로 풍경을 만들어 낸다. 특히나 ‘시누기(조릿대?시누대?)’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은 다정하기만 하다.

 

그러다 정상 부근에서 드디어 우리가 하룻밤 묵을 무인산장을 발견했다.

산장 건물은 번듯한데 그 안은 온통 쓰레기로 가득하다. 한 쪽에 있는 ‘뻬치카’도 쓰레기로 가득하다. 친구가 그 것을 청소하는 사이 나는 주변에서 나무를 했다. 큰 아름은 이미 베어서 태워 버렸는지 어린애 팔뚝만한 굵기의 나뭇가지에 의지해 잔가지가 달린 나무들이 여러 개 눈 속에 박혀 있어 나는 그것을 넘어져가며 끌고와 마침 안에 있던 작은 톱을 사용해서 땔감을 만들었다. 톱의 오죽잖은 모습과는 달리 톱날이 잘 들었다.

 

어렵게 불을 붙여 실내 공기가 적당히 데펴질 즈음 저녁을 지어 미역국에 말아 먹으면서 전에 강원도 친구가 건네 준 더덕으로 담근 가지고 온 술을 한잔 걸친 나는 기분도 ‘알딸딸’한데다가 무리하게 나무를 해 와서 그런지 허리도 아픈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친구가 밤늦게까지 불을 땐 덕으로 그런대로 나만은 침낭 속에 몸을 파묻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새벽에는 발도 시리고 등으로 새 들어오는 칼바람에 이리저리 뒤척였지만 그래도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오줌보가 터질 지경인지라 더 버티려고 해도 버틸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사실 어제 자기 전에 거북한 속을 짜 내느라 그 살인적인 골바람에 중요 부분의 살이 얼어 떨어지는 줄 알았던 기억을 뒤 살리노라니 나가거 일을 본다는 것이 끔직한 노릇이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리현상을 어찌하랴!

 

어제 밤에 나무를 다 땠기에 나는 다시 나무를 해야 했다. 다행히 꽤 굵은 고목나무 등걸 한 개를 발견하여 끌고 와 자르고 때니 하산 할 때까지 두어 시간은 넉근하게 버틸 양이다. 그리고 간밤에 친구가 쓰레기를 태우다 발견한 누군가 버리고 간 생고구마 봉지가 옆에 있으니 아침 불장난도 어젯밤 못지않게 재미날 수밖에 없었다. 이래저래 우리의 ‘빼치카 산행’은 완벽에 가까운 것이다.

 

아침을 라면으로 때우고 아직도 불이 타고 있는 ‘뻬치카’를 아까운 마음과 함께 뒤로하고 삼백 미터 앞의 정상에 오르는데 어찌나 날씨가 춥고 바람이 세던지 중무장한 우리들의 몸을 사정없이 휘둘러댔다. 시린 손이야 꼼지락거려서 달랜다고 하지만 두꺼운 양말을 두 겹이나 신은 발은 시려도 방법이 없다. 아마 너무 꼭 죄게 양말을 신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밤사이에 더 뿌려 나무에 매달린 눈 덕분에 사방의 눈꽃천지는 장관 그 자체다.

 

아쉬운 점은 날이 흐려 해가 없는 관계로 그 알알이 맺힌 눈꽃들의 찬란함을 비쳐 볼 수 없는 것이고 거기다 내 카메라의 건전지가 거의 다 닿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까지 가까스로 올랐지만 악천후로 인해 원래 계획했던 삼도가 만난다는 ‘삼도봉’까지의 능선 종주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지산에서 삼도봉까지의 능선은 그야말로 꿈만 같은 눈꽃 세상일 것이지만, 잔잔히 흩뿌리는 눈발로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멀리 바라보며 애뜻한 마음만 던지고 우리는 하산길을 밟았다.

 

정상부의 장관과 달리 내려올수록 눈 쌓인 양이 적어지더니 중턱 이하는 어제처럼 거의 눈이 없었다. 민주지산의 정상의 장관은 오로지 우리들만을 위해서 하늘이 일시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우리는 정말로 선택된 자의 즐거움을 가슴에 안고 하산을 했다. 묵밥과 파전 그리고 동동주로 피곤을 푼 후 영동으로 나와 영동인삼목욕탕에 들려 나머지 피곤의 꼬리까지 완벽하게 자르고는 기차에 올라 나는 천안에서 친구들과 이별을 하고 안성에 도착하니 여전히 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은 그 정상부의 설경이다.

또 언제 그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오랜만에 타 본 무궁화의 식당칸.

무궁화호도 예전의 무궁화호가 아니라서 이제는 계란이나 도시락 등을 각 칸마다 돌아 다니며 파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식당에 가면 된다. 노래방과 피시방도 그 안에 있다.

뭐든지 바뀐다.

 

 식당시설 전체를 이 직원 혼자관리하는 모양이다.

 

자리에 앉아서 미안함도 덜겸 맥주 한잔씩을.

 

 민주지산을 오르며 만난 입깔나무 숲.

 

 눈만 없으면 가을같다.

 

 

 

 

 

 

 

 

 

 민주지산 정상 전 300미터 지점에 있는 무인대피소.

우리는 이 안에 들어가 영동군청을 얼마나 입이 마르게 칭찬했는지 모른다.

 

 

 

 

'뻬차카'

 

 큰가지는 없고 주로 잔가지 뿐이다 보니 열심히 집어 넣지 않으면 불이 금방 사그러 든다.

 

 

 더워서 땀이 난다는 자랑이 대단했던 친구의 겨울용 침낭.

하지만 내 것은 땀까지는 안나고 그저 잠을 겨우 잘만한 정도.

 

 

사실 실네에서 특히나 난로앞에서까지 이런 복장을 할 만큼 추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사진촬영용으로다...

 

 아침이 되어 밤사이 사방에 눈이 더 내려 천지가 하얗다.

 

 

 

 

 

 

 

 

 

 등산로에 동물 발자국이 계속 우리를 안내했는데 처음에는 노루 발자국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쪽제비 발자국이었다.

 

 

 

 민주지산 정상이지만 사방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하산길.

성황당 같다.

추워도 잠시 머물러 뭔가를 빌어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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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손시균 | 작성시간 09.01.17 민주지산 기행문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김 교수님 이야기는 들은바가 있는데...직접 만난적은 한번도 없네요...평택에 계신다고 하신것 같은데... 천안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니 충남단테매 정모에 한번 오셔서 운동하시면 좋겠네요. ^^
  • 작성자김석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1.18 네 그러잖아도 한번 방문하려던 참입니다만 무릎이 약간 시원찮아서 망설여 오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워낙 고물짝이 되다보니 공은 안 늘고 몸만 망가져 가는,,..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손시균 | 작성시간 09.01.18 몸이 좋아지시고 시간 나실 때 월례회만 피해서 오시면 됩니다...중국에서 벽치기 하신다고 글을 쓰실 때 생각이 나는군요. 유리창을 깨고 그때 드신 쌀국수를 저도 먹고싶어 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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