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비극의 축소판’ 박인숙 씨의 굴곡진 삶]
음악재능 물려받은 아들, 朴씨 탈북뒤 농민으로…
기사입력 2012-07-10 03:00:00 기사수정 2012-07-10 03:00:00
박인숙 씨의 문학적 감수성과 다재다능한 면모는 수기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월남자의 딸에겐 이런 재능은 고뇌의 깊이만 더할 뿐이었다.
“○○가 집에 왔었다. ‘걜 공부시켜 성공 못합니다. 체육을 시키시오.’ 나는 도(道) 스케이트 대회 인민학교(초등학교) 속도경기(스피드스케이팅) 500m 부문에서 공화국(북한) 기록을 세우며 1등을 했다. 친척들은 ‘신금단(북한 여자중거리육상 스타)이는 체육을 너무(많이) 해서 아이를 못 낳는다’며 (나에게도) 체육을 그만하라고 했다.”
사실 박 씨의 천부적 재능은 음악 분야에 있었다. 그는 최승희무용학교 음악과에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출신 성분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그의 아들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아들이 여섯 살 때 음악선생이 바이올린을 배워(가르쳐)주었다. 나는 말렸다. 나처럼 가슴 아프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닮아 청음 능력이 남다른 것이 선생으로 하여금 (아들 음악교육에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금성고등에 추천받았으나 외할아버지 문제로 불합격됐다.”
박 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군대에 보냈다. 제대군인증과 당원증이라도 있어야….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했다.” 그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꿈이었던 평양음악대학을 나온 뒤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수기 앞부분에는 박 씨 필체의 노래 가사와 악보들이 적혀 있다. 한 음악전문가는 “음표 표기가 전문가 솜씨”라고 평가했다. 박 씨는 자신의 탈북으로 촉망받는 음악가에서 추방돼 농민이 된 아들에게 견디지 못할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박 씨는 아들을 살리려고 재입북을 선택했다. 그런 박 씨의 마음속엔 아들을 통해 음악가의 꿈을 대리 실현하려는 모성애가 깔려 있지 않았을까.
탈북 직전인 2005년경의 박인숙 씨.
박인숙 씨의 수기 중 일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고문과 학대 모습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박인숙 씨(가운데)가 지난달 28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에 아들 며느리와 함께 김정은의 은혜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촬영
朴씨가 서울에서 쓴 일기 박인숙 씨가 서울에서 남긴 일기의 한 대목.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빈 부분은 민감한 내용으로 박 씨를 위해 지웠다.
박인숙 씨의 얼굴 사진을 보면 남북한 생활수준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1985년 북한에서 찍은 박 씨의 모습(위부터). 2005년경 탈북 직전 찍은 사진은 고생을 많이 한 듯 늙어 보인다. 하지만 2006년 서울에 온 뒤 박 씨의 얼굴에는 윤기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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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달 28일 박인숙 씨가 평양 중심부의 고급 아파트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게 됐다고 선전했다. 박 씨가 자기 집 고급 장롱을 열어보는 장면도 방영했다.
북한의 파격적인 선전으로 미루어볼 때 박 씨가 받은 ‘혜택’은 김정은의 승인을 받은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박 씨 가족은 계속 평양에서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박 씨를 처벌하면 전 주민을 대상으로 선전한 ‘김정은 은덕정치’가 결국 ‘보여주기 쇼’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박 씨는 앞으로 북한 전국을 순회하면서 김정은의 배려를 선전하고, 한국으로 향한 탈북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증언하는 강연자로 활동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씨와 유사한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다. 1996년 한국에 입국했다가 2000년 북한으로 되돌아갔던 탈북자 남수 씨는 “그를 용서해주라”는 ‘김정일 방침’에 따라 고향에서 목욕탕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전국을 돌면서 탈북을 막는 강연을 했지만 2003년 아들을 데리고 재탈북해 한국에 돌아왔다.
1996년 탈북한 최승찬 씨는 한국의 한 은행에서 대리로 일하다가 2005년 재입북한 후 용서를 받고 개성컴퓨터센터에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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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사가 나간 뒤 박 씨를 잘 알고 있는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박 씨의 이복형제들은 박 씨의 탈북자금 1000만 원을 지불했고, 한국에 온 뒤에도 일련의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고 알려왔습니다. 도 대표는 또 박 씨의 귀환사건은 보위부가 뒤에서 조종한 계획적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북미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져 북미관계 상황을 알 수 있는 기사들이
전혀 없어.....찌라시들이나 나나 그저 허접한 얘기들이나 다루고 있습니다.
북미관계의 현재 상황에 대해 뭔가 얘기할만한
알맹이나 정보가 있어야 무엇을 하든 말든 하지요.
그래서 찌라시들도 아마 매우 당황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래서 찌라시들도 온갖 허접한 얘기들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썰들을 풀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 찌라시들 기사들을 살펴보면서
약간 까보기로 하고 있습니다.
월남자의 딸
출신 성분의 벽
아들이 여섯 살 때 음악선생이 바이올린을 배워(가르쳐)주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금성고등에 추천받았으나 외할아버지 문제로 불합격됐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군에서 보내야 했다.”
그 덕분에 아들은 어머니의 꿈이었던 평양음악대학을 나온 뒤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반공교육에 의하면......북한에서 "출신성분"은
북한사회에서의 출세에 결정적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말하자면, "매국노"의 자식들이냐 아니냐, 또는
국가나 당에 대한 "충성심"이 있느냐 없느냐 등으로
출신성분을 가른다던가....어쨌다던가....아마 그러지요?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가 싫다고 월남해버린 사람들은
아마도 북한에서 아주 "매국노, 반역자" 취급을 당할 것 같네요.
그런데....위 언급들을 살펴보면
그런 반체제적 매국노의 자식들에게도 음악이나 체육 등을
가르쳐주는 모양이지요? 특히, 바이올린이라니요?
그건 나도 배워본 적이 없는 물건이로군요.
한국에서도 아무리 명문학교에 추천 받아보았자....
경쟁자들이 많으면 경우에 따라서 탈락할 수도 있겠지요.
설마하니.....북한에서도 정원수에 딱 맞는 수만큼만
추천을 받는 것은 아니겠지요. 즉, 아마도 어쩌면 정원수 보다
몇배수 추천을 받아 심사하니 탈락자들이 많지 않을까요?
그것을 반드시 월남자 외할버지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어쨌든......
무려 13년이란 긴 군대복무 뒤에....음대를 진학할 수도 있다니
너무나 놀랍네요.
왜냐면.....음악이란 예술 분야는.....나이가 아주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고....게다가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만 하는 분야가
아니던가요?
예컨데, 피아노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불과 몇일만 쉬어도
피아노 연주에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거의 매일같이 맹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무려 13년을 군대에서 썩은 다음 음대에 진학하다니요?
그게 과연 성공가능성이 있는 일일까요?
더구나 음대 교수가 되다니?
그리고....출신성분이 나쁜데도 군대만 갔다오면 모든 것이
면제되는 모양이지요? 헐....많이 놀랍네요.
추방돼 농민이 된 아들
아들의 추방소식이 전해진 2008년
2008년부터 추방되었으면....무려 4~5년 동안이나 추방되어 있었다는 의미인데....
위 사진의 아들과 며느리가....무려 4~5년 동안이나 농민으로 일한 사람들로
보이나요?
그리고.....그동안 찌라시들 주장에 의하면
탈북자 가족들은.....농민으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나 탄광 등으로 추방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농민으로 추방된다니....생각보다 많이 약한 처벌이군요.
중국에서 체포된 그는 북송된 뒤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온간 비인간적 학대와 고문
그의 재입북은 일각의 주장처럼 보위부의 협박에 따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기엔 2010년부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고 준비했던 흔적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만일 국보법 등으로 무서운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면
그런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겠습니까?
아무리 자식이 농민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런 자식이 불쌍하다고 해서 그렇게 무시무시한 지옥사회로
되돌아가고 싶겠느냔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2010년부터 자진 재입북 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라는군요.
아마도 그녀는 북한의 "지옥사회"가 남한 사회 보다 더 좋은 모양이지요?
ㅉㅉㅉ
‘한국 자살률 세계 1위…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결과’
‘내 집 마련 11.7년’
‘한강 투신자살 매일 2.4명’
‘장군님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았다’
위 3개의 항목들은....찌라시들에서 보도되는
실제 남한사회의 현실을 적어놓은 것들이군요.
그런데 맨 마지막 문장이 우리의 눈에 띕니다.
그녀는 매우 나이가 많은 여성입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도대체 무엇이 비쳐졌길래.....
"장군님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으로 비쳐진 것일까요?
그녀의 그런 인식이 많이 놀랍지 않나요?
박인숙 씨의 얼굴 사진을 보면 남북한 생활수준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1985년 북한에서 찍은 박 씨의 모습(위부터). 2005년경 탈북 직전 찍은 사진은 고생을 많이 한 듯 늙어 보인다. 하지만 2006년 서울에 온 뒤 박 씨의 얼굴에는 윤기가 흐른다
소위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라는 주성하 기자님....
사진을 그런식으로 왜곡하고 해석해서는 안되겠지요?
2005년도면 그녀가 아마도 탈북하여 중국 몽골 지역에서
헤매고 있던 시절 같은데....그 시절엔 칼러 카메라가 없어서
하필 흑백사진 처리한 것일까요?
더구나 탈북 브로커를 따라 중국 내몽골 지역까지 간 상황이라면
별로 혈색이나 행색이 좋은 상황은 아닐 것 같군요.
그것을 마치 북한에서의 사진인 양 해석해서야 되겠어요?
참고로......
나도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경찰조사를 받은 사람이지만....
만일 경찰서 구치소에 가두어두고 번호 붙여서
흑백으로 사진을 찍어 찌라시 언론에 공개한다면....
아마도 이 정론직필도 그야말로 끔찍한 "흉악 범죄자" 또는
"흉칙한 간첩"처럼 보일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찌라시 언론들과 사진의 마술이지요.
http://www.onbao.com/news.php?code=&mode=view&num=20893
주성하 기자님 같은 해석이면......그럼, 위 사람들은 북한 또는 평양에 살아서
위와 같이 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때깔이 나는 것일까요?
월남자라는 꼬리표
음대에 가고 싶어 평양음대 학장까지 찾아갔지만...
1964년부터 함북 청진 나남제약공장 노동자
아들은 13년간 군 복무를 마친 뒤 박 씨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평양음대에 입학
월남자라는 출신성분 꼬리표가 정말 문제가 되는 사회라면
평양음대 학장을 직접 만나본다고 해서...과연 해결될 수도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청진인지 함북인지 시골에 사는 젊은 여학생이
먼 평양까지 찾아가 그것도 고위직일 평양음대 학장까지 당돌하게 만나다니요?
정말 배짱 한번 좋은 여성이로군요.
그런 일은 아마 남한사회에서도 쉽게 용기를 내기 어려운 일로
보이는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런 출신성분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군대도 가고, 평양음대에도 진학했으며
결국 음대 교수도 하는군요.
참으로 놀랍네요.
"출신성분"이 그런식으로 세탁될 수도 있다니 말입니다.
(뱀발)
(청진시 청암 유치원)
음악적 재능은 어려서부터 길러주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저 동영상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과연 부모의 "출신성분"들이
좋은 어린이들일까요? 아니면,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재능에 따라
선택된 어린이들일까요?
아마도 저 어린이들은 콩나물 대가리를 읽을 능력까지는 없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그 작은 앙증맞은 손으로 모든 코드를 잡으며
커다란 성인 기타를 연주하는군요.
그 의미는....앙증맞은 작은 손으로도 잡을 수 있는 코드만으로
위 음악을 구성했다는 의미로서.....저 어린이들에게 위와같은
기타 연주를 가르친 음악선생님의 능력이 더 놀랍게 느껴집니다.
내가 알기로는.....같은 음이라도 코드 잡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코드들은 성인도 손가락 길이가
짧아 코드 잡기에 매우 힘든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어린이들은 매우 작은 손가락만으로도 모든 코드를
잡을 수 있도록 코드가 구성되어 있다니....얼마나 놀라운가요?
그건 곧....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지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知天命 작성시간 12.07.10 감사합니다.
새로운 소식을 접하니 그것도 좋군요~~ -
작성자분석관 작성시간 12.07.10 참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박인숙씨가 임대아파트에서
다친 무릎을 이끌고
간병인을 다녀야 할 수 밖에 없었군요.
간병을 받아야할 처지인데.
"장군님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았다"라는 대목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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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시간 작성시간 12.07.10 매번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의 웃는 모습은 아직 제겐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어린이라 그런건지, 제가 익숙하지 않아 그런건지는 모르겠네요.
탈북자들, 오히려 이들의 남한내 삶이 미래 조국통일의 과정에선 남과 북에 이로운 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악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직접 체험 하였으니 적어도 좋고 나쁜 걸 스스로 말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론적으로 깊은 내막은 모르더라도 말 입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