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디알 돌려 보자우” 북한 군부대에도 한류 - 북한 협동농장 1
(위 글에 이어서 계속해서 북한 협동농장에 대해 알아 보고자 합니다.)
우리 카페는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예리한 안테나를 가지고
북한관련 정보들을 수집,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다른 일반 국민들 보다는 훨씬 많은 대북관련 정보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솔직히....여전히 북한사회의 진짜 실상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지경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식해서도 아니고, 지능이 떨어져서도 결코 아니라
단지 찌라시들이 있는그대로의 실상과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나아가 당국이 북한사회에 대한 진짜 정보들에 대해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또는 소위 "반공교육"이라고 해서 북한 관련하여 터무니 없이
진실왜곡된 내용들을 국민들에게 주입식으로 교육해왔기 때문이지요.
그런 와중에도 찌라시들이 열심히 보도들을 해대거나 또는
소위 "탈북자"들이 많아지다보니 북한관련 내용들을 여기저기
무수히 많이 흘려놓다보니.....그 내용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상충되는 경우들이 매우 많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등등의 방법으로 우리는
그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를 역추적하고 있기도 하지요.
예컨데, 한반도 관련 국제정치적 정세를 분석하는 카페의 카페지기인
나 자신 조차도 솔직히 북한 협동농장의 진짜 실체가 무엇인지
거의 아는 바 없었습니다.
그저 고작해서.....북한의 농민들은 북한사회의 최하층민들로서
소위 "출신성분"들이 나쁜 사람들이 주로 농촌에 배치되어 중노동에
혹사당하는 사람들이자, 그들의 생산물은 대부분 북한당국에 의해
빼앗기고 착취당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남한 국민들에게 각인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지요.
그리고....북한 행정조직이 "군" 밑에 바로 "리"라는 것이 있고
"리" 마다 협동농장들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카페지기인 내가 그럴 정도로 한심한 대북정보 밖에 없는 실정이니
일반 남한 국민들이야 새삼 말할 것이 없겠지요.
내가 갑자기 북한 협동농장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아래 찌라시 기사 때문이었습니다.
北 “생산물 수매, 시장가격으로”… 김정은체제 첫 경제개혁
기사입력 2012-07-12 03:00:00 기사수정 2012-07-12 03:50:04
대북매체 ‘6·28방침’ 보도… 협동농장 개인분배율 높여
북한이 각종 생산단위의 생산물 정부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추고 협동농장의 말단 생산단위인 분조(分組)의 구성원을 기존 10∼25명의 3분의 1 수준인 4∼6명으로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를 내부에 공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과 기업소의 경우에도 국가가 원자재와 기계 등을 먼저 투자하고 생산물이 나오면 판매수입을 국가와 생산단위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전문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는 10일 북한이 지난달 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른바 ‘6·28방침’을 내놓고 10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올해 초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지시로 내각 산하 소조가 농업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개혁 방안을 연구해 왔다.
▶본보 6월 26일자 A1면 농지 私有-협동농장 개혁 나선다
‘6·28방침’은 북한이 2002년 7월 1일 시작했던 ‘7·1경제관리개선조치’만큼 획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발표된 첫 개혁조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정부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추면 생산자들이 생산품을 몰래 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정부에 판매해 국영상점 등이 물품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분조 구성원을 줄이면 생산을 위한 의사소통이 빨라지고 추가 생산품에 대한 개인 분배 비율이 높아져 전반적으로 생산 의욕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북한은 군(郡) 밑에 바로 리(里)를 두고 있으며 리마다 보통 협동농장 하나가 있다. 농장 안에는 부락 단위로 작업반이 있다. 한 개 작업반은 다시 5, 6개의 분조로 구성된다.
하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경제난 이후 대부분의 생산 기반을 잃은 북한 당국이 수많은 공장 및 농장에 생산시설과 원자재를 공급할 능력이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위 찌라시 기사는 소위 "김일성대학" 출신인 주성하 기자가
작성한 내용입니다.
생산자들이 생산품을 몰래 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농민들이나 공장 및 기업소 등에서 몰래 시장에 내다 팔다니요?
아니, 북한은 무시무시한 독재정치 국가로서 강압적 통치와
강제적 수탈을 하는 곳이 아니었단 말인가요?
북한이라는 무시무시한 "폭압적 독재정치" 체제에서는
생산물 등을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 국가에서 강제로 생산량을 할당해주고
나아가 생산물도 나중에 국가에서 강압적으로 징발해가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는 말인가요?
도대체 어떻게 생산물을 몰래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는 말인지?
안전원이나 보위부 요원들은 모두 있으나마나한 허수아비 조직이라도
된단 말인가요?
그런 정도로 허술한 사회라면....북한은 망해도 이미 진즉에
망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공개총살 당할 그런 짓을 태연히 감행할 정도로
북한사회 자체가 매우 열악한 식량상황에 있던가.....
그렇다면, 북한사회는 이미 진즉에 무너졌어야 할 것인데...
정부 수매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추고....
공장과 기업소 판매수입을 국가와 생산단위가 일정 비율로 나눠 갖기로
위 얘기들은 또 무슨 도깨비 같은 소리들인지....
어안이 벙벙해지네요.
아니, 얼핏보면 남한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 아닐까요?
남한의 농민들도 정부 쌀수매 가격이 낮다고 맨날 볼멘 소리를
하지 않나요? 즉, 남한 쌀농사 농민들이 현재 정부에 불만인 이유는
쌀수매 가격이 시장 가격 보다도 지나치게 낮아서 수지타산이
도무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지요.
그런데....북한당국이 협동농장, 공장, 기업소 생산물들을
시장가격에 수매해 가다니요?
아니, 무시무시한 폭압적 독재정치 국가라는 북한에서는
그저 당국이 강제로 수탈해가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저 최소한으로 목숨을 연명할 분량만 농민, 공장노동자, 기업소 직원들에게
남겨주고, 나머지는 모두 보위부 등 북한당국이 수탈해가는 체제가 아니었나요?
그런데....위 언술을 보면....자본주의 사회라는 남한사회와
별로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니....그저 놀랍기만 하네요.
정부가 시장가격으로 수매해 준다고를 하지 않나....
또는 판매수익을 정부와 생산단체와 일정비율로 나누어 뿜빠이(=분배)
한다고를 하지 않나.....
이거....반공교육 내용과는 뭔가 너무 다른 내용이로군요.
그래서.....북한 협동농장이라고 하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약간 더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협동농장
토지와 기타 생산수단을 통합하고 농민들의 공동노동에 기초하여 농업생산을 진행하는 집단농장을 말한다. 북한은 1953년 8월 로동당 제6차 전원회의에서 농업협동화 방침을 채택하고 농민들을 자연부락 단위의 「협동조합」에 강제 편입시키기 시작해 1958년 8월에 이르러 이를 마무리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소유」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후 자연부락 단위의 농업 협동조합은 「리」 단위로 확대통합되었으며 1962년에는 그 명칭이 「협동농장」으로 개칭됐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농업 생산체계는 토지 및 생산수단의 「협동적 소유」에 바탕을 둔 협동농장과 국유에 바탕을 둔 국영 농·목장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64년에 채택된 「농촌테제」에서 그리고 1980년 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협동농장의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할 것에 대한 방침을 제시하는 등 협동농장을 전인민적 소유 형태로 전환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협동농장 규모는 보통 농가호수 80호 내지 300호까지로, 경지면적 1백30정보 내지 5백정보로 되어있다.
그리고 협동농장은 형식상 농업관리위원회의 자율적 경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선전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정무원의 농업위원회, 도 농촌경리위원회, 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지도에 따라 운영된다.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은 리 인민위원장이 겸하고 있다.
http://www.kplibrary.com/nkterm/read.aspx?num=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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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
協同農場
농민들이 자원적인 원칙에서 토지와 그밖의 생산수단을 통합하고 농장원들의 공동 노동에 기초하는 북한의 집단농장.
6·25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차 전원회의에서 전후 복구건설의 일환으로 농촌지역에 농업협동화가 결정되었다. 1954~55년 일부지역에서 경험적인 협동화 단계를 거쳐 1956년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1958년에 이르러 북한의 모든 농촌이 3,800개의 협동농장으로 재편되었다.
초기에 협동농장의 관리는 농업성이 맡았으나, 1962년 2월 이후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의 협동농장에 대한 직접적 지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적 방식으로 전환했다.
협동농장의 주요기구로는 최고기관인 농장총회·대표자회·관리위원회·검사위원회 등이 있으며 필수적인 부대시설로는 탁아소·신용조합·학교·진료소 등이 있다.
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은 그 지방의 행정위원장을 겸직하도록 되어 있다. 관리위원회 밑에는 약 100여 명으로 구성되는 작업반이 있으며, 작업반 아래는 작업의 기초단위인 분조가 있다.
협동농장의 관리·분배 방식으로는 1966년부터 지금까지 '분조'를 기초로 한 분조관리제와 분조도급제가 실시되고 있다.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mtt_id=106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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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北 황북 사리원시 미곡리 '부유한 농촌' 모델 각광
작성자 : 조병현 날짜 : 2007-06-24 조회수 : 84
2007-06-24
북한의 황해북도 사리원시 미곡리가 도시 부럽지 않은 ’부유한 농촌’의 본보기로 각광받고 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3일 평양발 기사에서 1970년대에는 평안남도 강서군 청산리가, 1990 년대에는 량강도 대홍단군이 “사회주의 이상촌 건설의 본보기 단위”로 불리었다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미곡리가 전형으로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곡리가 ’21세기의 사회주의 이상촌’의 본보기로 떠오른 것은 2002년 7.1경제관리개선 조치에 따라 열심히 일한 만큼 그에 따른 수입이 확실이 보장되고 그것이 윤택하고 부유한 생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 농장에서는 농업 전문가들과의 긴밀한 연계하에 과학적인 영농방법을 도입, 작물 종자를 흙의 성질에 맞게 바꿨으며 새로운 모 기르기 방법을 개발하는 등으로 곡물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1인당 소득을 대폭 올릴 수 있게 됐다.
결국 “일한 만큼, 번 것만큼”의 원칙에 따라 수입이 늘어나면서 농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욕구는 농사일에 바쁜 속에서도 도시 부럽지 않은 살림집 60채를 자체적으로 건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종전 같으면 방 2개의 주택에 만족했던 이곳 농민들은 소득이 늘면서 넓은 거실과 방이 3개 이상 달린 도시풍의 현대적인 살림집에서 살고 싶어진 것.
단독주택의 형식에 맞게 현관도 현대적이고 ’무게’가 있게 설계했고 심지어 신혼부부 살림방에는 별도의 화장실까지 갖추는, 과거 농촌은 물론 도시에서도 고위간부 주택 외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꿈의 집을 갖게 됐다.
조선신보는 미곡리 농장의 살림집은 전국에서 ’새세기 사회주의 농촌 살림집 건설의 본보기’, ’미래의 농촌 문화주택’이라고 평가받고 있다며 “분배 몫과 쌀독이 넘쳐나게 되면서 농민들의 욕구가 실현되고 있다”고 전했다./연합
http://www.nkland.org/NOS-Board/bbs.php?uid=3982&key=&keyfield=&idx=
inform&retype=view&page=56&articlenum=3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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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신보, "北우수농민 연간수입은 약 20만원"
2006.04.20 14:06
최근 북한에서 수입이 높은 협동농장의 경우 농민 1인당 연간 수입은 20만원(북한돈, 1천400달러.1달러=143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 판은 20일 강원도 원산시 시루봉협동농장이 전국에서 현금수입이 높은 농장 중 하나로 유명하다며 지난해 이 농장 농민의 현금 수입은 1인당 20만원 수준에 올랐다고 밝혔다.
도시 노동자 1인당 평균 월급 3천원, 연 수입 3만6천원으로 환산할 때 이 곳 농민의 수입은 5.5배나 많은 셈이다.
시루봉협동농장은 15개 작업반에 1천300명이 일하는 규모가 큰 농장으로 원산시민들에 대한 채소공급을 전담하고 있다.
조선신보는 이 농장이 알곡과 함께 과일.채소 생산량을 늘려 해마다 높은 현금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며 이는 2002년 7월 '사회주의 경제관리 개선조치'(7.1경제관리 개선조치)의 결과라고 강조했다.
7.1조치로 농민들의 현금수입이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농장의 공동자금도 늘어나면서 이 농장에서는 농민들에게 더 좋은 생활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 공동자금으로 살림집 건설에 나섰다.
지난해 이미 28가구를 건설한 데 이어 지난 3월 초부터 40가구를 건설하기 시작, 본격적인 영농기 전으로 끝낸다는 방침이다.
이 살림집이 완공되면 최근 결혼한 신혼 부부들이 분가해 새집에서 살 수 있게 된다.
살림집도 과거와 달리 나름대로 현대적이고 실용성 있게 건설해 살림방 2개와 거실, 부엌과 세면장, 창고, 가축 우리와 야외창고 등을 갖췄다. (서울=연합뉴스)
http://nk.joins.com/news/view.asp?aid=2713178&cont=news_econo
기타, 찌라시들의 기사를 통해서 북한 협동농장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약간 더 알아보기로 하지요. (당연히 내용의 상당 부분은 진실왜곡적으로
묘사되어 있겠지요. 따라서 그 점을 감안하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北, 집단농업제도가 무너지나?…"협동농장 직판 성행"
"국가가 지원 못 하자 스스로 작업반 통해 현물 판매"
2012-06-15 07:55 | 노컷뉴스 안윤석 대기자
일본의 대북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14일 황해도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협동농장에서 남새(채소)를 중심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국가에 바치지 않고 시장가격으로 군 부대에 팔아 현금수입을 얻는 경우가 일반화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다.
자신의 가족이 황해도 농장의 '현금벌이 조'에 있다는 소식통은 "군대가 부대단위로 배추와 무, 시금치, 오이 등을 많이 사가고 개인으로도 팔기 때문에 수입이 많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군대의 부업지에서 남새(채소)류 생산이 잘 안 되고 많은 인원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협동농장에서 구매한다"면서 주로 현금이나 때로는 행표(군대가 차후 현금지급을 보증하는 증표로 추정)로 지급해 개인에게 판매하는 것보다 수입에 좋다"고 설명했다.
협동농장의 농업지도원들과 함께.
김필주씨는 '농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조직규율이 강한 협동농장에서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기계부속품과 기름, 비료와 농약 등 농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농장에 직접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저 위의 기사에서는 이제 북한당국이
그런 부품 등을 공급하고 생산물을 적당한 비율로 나누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의미는 북한정부가 이제 그런 공급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즉, 북한의 현재 상황은 매우 호전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ㅈㅅ닐보 기자)
우리 사회에 그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온갖 사악하고 악의적 질문들을 해대더니만.....마지막엔 위와 같은 언급을 하는군요.
그런데....무조건 북한이 망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ㅈㅅ닐보 찌라시가 과연
진정으로 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일 그렇다면.....이제 북한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하자고 주장해야 될테니 말입니다.
암튼, 왜곡된 내용이긴 하겠지만.....위 여러 기사들을 통해서
북한 협동농장이 무엇인지.....약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저 위 사진에 나오는 사리원의 "미곡협동농장"에 대해서
검색해 보려하니....정보 차단이 되어 있군요.
그것이 북한에서 매우 모범적 협동농장이라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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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2.07.12 김필주 씨와의 인터뷰 목적은, 북측의 식량난이 체제문제라는 증언을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김필주 씨는 "완곡"하지만 실제로는 단호하게 "토양문제"라고 하네요.
토양문제는 북쪽의 지리, 지질의 문제이고, 유기질 퇴비를 만들기 어려웠던 이유는 6.25 때의 극심한 전란과 폭격도 한 이유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남쪽의 평야지대는 풍요로운 땅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토양의 지력이 쇠약해져서 비료를 퍼붓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북쪽은 원래 척박한 땅이었고, 남쪽은 지력이 쇠퇴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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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아무리힘들어도 작성시간 12.07.12 남한의 산이 울창해지고 산하의 지력이 회복하게된 중요한 계기가 가정의 땔감이 바뀐 탓입니다.
시골 집들이 낙엽을 끍고 나무를 잘라다가 아궁이 불을 때다가
"프로판 가스"로 건너 뛰었습니다. 그래서 산에서 낙엽, 나무를 해다 태울 일이 많이 줄었죠.
그렇게 20년쯤 지나고 나니
최근에는 산불이 많아졌고, 산 아래에 수풀이 우거져 입산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치체제보다는 생활 "시스템"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필주씨가 은연중에, 이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정론직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7.12 북측의 식량생산 문제, 민둥산 문제가 해결되려면 결국
러시아산 가스가 북측에 공급되는 방법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