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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의 실상

[인터뷰] 김일성대 출신 루디거 프랭크 교수 "북한서 최근 상거래 부쩍 늘어"

작성자정론직필|작성시간12.10.13|조회수2,226 목록 댓글 1

[인터뷰] 김일성대 출신 루디거 프랭크 교수 

"북한서 최근 상거래 부쩍 늘어"

2012.10.12


북한에서 최근 상거래 활동이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북한문제 전문가 루디거 프랭크 교수가 지적했습니다. 옛 동독 출신으로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공부한 프랭크 교수는 지난 4월과 9월 북한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변화를 느꼈다고 밝혔는데요. 백성원 기자가 프랭크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올 봄과 가을 두 차례 북한을 방문하셨는데요. 태양절을 전후로 한 북한사회 분위기가 대체로 어땠습니까?


프랭크 교수)  “I can certainly say that upon my second visit…”


9월 방북했을 땐 주민들의 긴장이 확실히 좀 풀려보였습니다. 앞서 4월엔 태양절, 로켓 발사 준비 등으로 긴장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거든요.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을 때나 안내원, 주민들의 태도에서 그런 변화가 엿보였습니다.


기자) 일종의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프랭크 교수) “You see that people instantly embraced the new opportunity that…”


새로 주어진 기회와 변화의 바람을 환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상품 공급이 보다 활발해진 걸 느낄 수 있었는데요, 수요공급이 비례하는 만큼 소비자층이 늘어났다는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기자) 특히 방북 시기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등장하는 시점과 맞물려서요. 뭔가 영향을 느낄 수 있으셨는지요.


프랭크 교수) “Certainly, knowing that, of course, in the system as…”


북한 뿐아니라 어느 사회든 지도자 부인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북한에서 특히 여성들 외양을 주의깊게 살펴봤습니다. 리설주처럼 짧은 머리 모양을 한 여성들이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대유행이라고까진 말할 수 없지만요. 리설주가 여름에 등장했는데 짧은 기간 동안 제법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주민들이 지도자 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까지 허용되는지 읽는다는 뜻도 될 겁니다.


기자) 그렇다고 주민들이 리설주를 직접 거론한 건 아니었겠죠?


프랭크 교수) “I tried to talk to people about the first lady and I still sense…”


북한인들과 리설주 관련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역시 지도부와 관계된 얘길 꺼내는 걸 주저하더군요. 그래도 이것 저것 물어봤는데요. 물론 누구도 그녀의 새로운 스타일을 모방한다든지 그런 얘길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도 리설주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어요.


기자) 북한 방문기 쓰신 걸 보니까 가는 곳마다 상점이 크게 늘었다는 점을 지적하셨더군요. 눈에 확 띌 정도였습니까?


프랭크 교수) “I would say that the number has quadrupled or even increased…”


4월과 9월 사이 짧은 기간인데도, 그동안 상점이 정말 많이 생겨난 걸 봤습니다. 4~5배 정도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수확기를 맞아 내다 팔 것들이 많아진 계절적 요인도 있을 겁니다. 과거에도 그 시기에 북한을 많이 방문했지만 올해는 특히 주목할만 했습니다. 농작물 뿐아니라 각종 음료수와 담배, 빵, 빙수 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자) 평양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보신 건가요?


프랭크 교수) “I found particularly striking, of course in Pyongyang…”


예. 바로 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는 지방 도시 길목에도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여성 한 명이 물건 몇 개 깔아놓고 파는 그런 노점이 아니라 3~4명의 직원이 일하는 정식 상점 형태였는데요. 상품을 공급받아 제대로 진열해 놓고, 가게 앞엔 의자들도 내다 놓고, 손님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가게들 말입니다. 그런 곳들을 주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들러 물건을 샀구요.


기자) 상품 가격은 어느 정도 수준이던가요?


프랭크 교수) “North Korea, you have at least dual price system, so you have..”


북한은 이중 가격체계를 갖고 있죠. 지난 달 방문 당시 외국인 전용 상점에선 맥주 한 병이 60 유로센트 수준이었어요. 식당에서 식사 한끼가 3~4 유로 정도였구요.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이용하는 상점에선 사과가 무려 1kg당 북한돈 6천원, 계란 1개가 8백원에 팔리는 걸 봤습니다. 일반 주민들의 봉급으론 물건 사기가 참 힘든 거죠.


기자) 북한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전자결제카드 사용업소가 확대된 걸로 알려져 있거든요. 정말 그렇습니까?


프랭크 교수) “Especially Narae, this Koryo card, I’ve just seen for the…”


‘나래’와 ‘고려’ 카드가 있는데요. 나래가 특히 널리 쓰입니다. 고려카드는 아직 나래 만큼 확대되진 않았구요. 상점들 뿐아니라 택시 창문에도 나래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표시가 부착돼 있는 걸 많이 봤습니다.


기자) 택시를 제법 많이 보셨나보죠?


프랭크 교수)  “Taxies in Pyongyang in particular. I don’t remember having seen…”


평양에 국한된 현상입니다. 90년대 초만 해도 평양에서 택시를 타려면 전화로 불러야 했습니다. 그나마 택시 표시도 돼 있지 않았죠. 제가 평양 거리에서 택시를 처음 본 게 2010년입니다. 물론 흔하진 않았구요. 그런데 지난 4월 제법 많은 택시를 봤고, 9월엔 그 숫자가 더 늘어난 걸 확인했습니다. 심지어 평양 일부 구역에선 택시 4~5대가 승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도 봤습니다. 평화자동차가 북한에서 생산을 시작해 자동차 공급이 늘어났고, 운임을 낼 여유가 있는 평양 시민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개인소유 차량임을 뜻하는 노란색 번호판이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기자) 평양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전제를 하셨는데요. 역시 평양과 지방간 격차를 많이 느끼셨나보죠?


프랭크 교수) “This refers to almost anything. Road conditions, also…”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중국 개혁 과정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덩샤오핑이 내세운 개발정책이 우선 떠올랐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전국을 동시에 개발하는 대신 특정 지역에 우선 투자하고 다른 지역 개발은 뒤로 미루는 방식 말입니다. 북한에서도 주로 평양에서 고층아파트, 박물관, 대중 교통수단, 도로를 건설하느라 공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기자) 지방 주민들이 그런 격차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프랭크 교수) “Question is, of course, how does the country, the rest…”


바로 그게 문제인데요. 물론 평양이 질시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동독에서 두 번째 대도시 출신인데요. 당시 정부가 동베를린 개발에만 매진하는 데 불만이 많았었죠. 하지만 한편으론 북한에서 지방 주민들이 가령 서울이나 베이징 대신 평양을 동경하게끔 유도하는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을 수 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지방이 완전히 뒤처져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원이 덜 배분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방에서도 공사가 진행되고 상점이 늘어나는 등 개발이 분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방 주민들도 언젠간 자신들 차례가 올 거라는 희망을 갖게끔 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 최근 북한이 농업 개혁에 나선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는데요. 내부에서 그런 징후를 보신 적은 없나요?


프랭크 교수) “Well, on one occasion, I talked to North Korean who said…”


북한인으로부터 최근 농부들 상거래 형편이 좋아졌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흥미로운 표현이었습니다. 뭔가 팔고 있고 시장 상황이 괜찮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징후도 볼 수 없었습니다. 토지 소유권이나 협동농장의 잉여생산물 처분권을 허용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경제학자로서 전 그런 조치의 효율성에도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농업사회가 아닙니다. 따라서 산업 분야 개혁이 뒷받침 돼야지 농업개혁에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고 봅니다.


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15253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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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현영철 총참모장, 두달 만에 차수서 대장 강등

입력 : 2012.10.11 03:00 | 수정 : 2012.10.11 08:11


북한군 작전을 총지휘하는 현영철 총참모장이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된 계급장을 달고 등장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노동당 창건 67주년인 이날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대장 계급장을 단 현영철이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등과 함께 참배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현영철은 지난 7월 15일 전격 해임된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후임자로 지명되면서 대장에서 차수로 진급했었다. 북한군 차수 계급장은 큰 별 한 개가 있지만 대장 계급장에는 작은 별 4개가 달린다. 현영철은 약 두 달 만에 강등된 계급장을 붙이고 나타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6일 상관 2명을 사살하고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소속 부대가 총참모부 직할 부대"라며 "지휘계통을 따라 줄줄이 문책이 이뤄지면서 총참모장인 현영철에까지 영향이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영철이 조만간 다시 차수 계급으로 복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군 총참모부 김명국 전 작전국장은 재작년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지만 수개월 만에 원래 계급으로 복귀한 적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도 고위 장성의 군기 확립 차원에서 별을 뗐다가 다시 붙이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0258.html




특히 상품 공급이 보다 활발해진 걸 느낄 수 있었는데요

4월과 9월 사이 짧은 기간인데도, 그동안 상점이 정말 많이 생겨난 걸 봤습니다. 

4~5배 정도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농작물 뿐아니라 각종 음료수와 담배, 빵, 빙수 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아졌습니다

올해는 지방 도시 길목에도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여성 한 명이 물건 몇 개 깔아놓고 파는 그런 노점이 아니라 

3~4명의 직원이 일하는 정식 상점 형태였는데요. 

상품을 공급받아 제대로 진열해 놓고, 가게 앞엔 의자들도 내다 놓고, 

손님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가게들 말입니다.

전자결제카드 사용업소가 확대

상점들 뿐아니라 택시 창문에도 나래 카드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표시가 부착

개인소유 차량임을 뜻하는 노란색 번호판이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자원이 덜 배분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방에서도 공사가 진행되고 

상점이 늘어나는 등 개발이 분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농부들 상거래 형편이 좋아졌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위 얘기들을 한마디로 정리하면....현재 북한은

전역이 경제호황으로 흥청망청 하고 있다는 소리죠.


그런 나라를 두고 굶어죽는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진실왜곡으로 보입니다. 우리 카페에서는 이미

북중교역량 폭증으로 그런 상황을 추측해오고 있지요.


어쨌든, "시장"이 번성한다는 말은.....

그만한 구매력이 있는 수요자, 소비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군 총참모부 김명국 전 작전국장은 재작년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지만 

수개월 만에 원래 계급으로 복귀


북한사회란....참 도깨비 같은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좌천 내지 강등 되었다고 다시 원상복구 되는 경우들이 흔하니 말입니다.


예컨데, 남한 같은 경우에는 한번 옷벗으면 그것으로

영원히 땡이지요.


암튼, 북한사회란 참 이상한 사회란 생각이 듭니다.


오마이뉴스의 신은미 기자님의 연재가 이제 끝이 난 모양이군요.


구글검색 [북한]을 검색하다보면 저절로 검색이 되어

그동안 신은미 기자님의 글들을 읽어 왔습니다.


암튼, 일독을 권합니다.




북 안내원에게 '아오지' 보내달라고 했더니...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30-끝] 라진의 '에덴동산' 신해리와 두만강역

12.10.11 19:56l최종 업데이트 12.10.11 19:56l신은미(eunmishin)



                ▲  왼쪽부터, 신해리에 함께 사는 미국인 수의사 선생님, 조카 예솔 그리고 지성. 

                      금세 뒷산에 가서 캐온 더덕을 다듬고 있다.


집안에 들어가니 음식 향기가 코를 찌른다. 동생이 우리를 위해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나와 동생은 점심 준비를 마저 하면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선량하게 생긴 한 미국인 아저씨가 집에 들어온다. 동생이 자기들과 함께 이곳 신해리에서 살고 있는 수의사라고 소개해준다. 이 수의사도 이곳에서 산 지 10여 년이 넘었단다. 자기네들과 신해리 정착 초창기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봉사하며 살고 있단다. 평온하고 선한 얼굴 인상에서 이분이 걸어온 삶의 여정을 읽을 수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조카들을 부르러 왔단다. 귀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 올라 더덕과 산나물을 캐오겠다고. 그는 "더덕, 산나물 맛이 일품"이라며 "꼭 먹어봐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조카들도 "더덕과 나물을 캐와서 이모한테 꼭 맛을 보여줄 거예요"라며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아이들마냥 각오를 단단히 하고 신바람 나게 집을 나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과 수의사 선생님이 신이 나서 들어온다.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뒷산 초입에서 크고 신선한 더덕과 나물들을 다 캐왔다고. 오자마자 숨도 안 돌리고 더덕을 다듬기 시작한다. 더덕 향기가 사방에 진동한다. 아무런 양념 없이 고추장에 찍어만 먹어도 그 맛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군침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  문호영 안내원의 도움을 받아 소쟁기를 끄는 필자


식사 후에 우리는 사촌 동생네 집 주위를 구경하러 나간다. 크리스의 안내로 염소 농장과 비닐하우스를 둘러봤다. 그리고 산을 개간해서 밭을 일구고 있는 주민 아저씨 덕분에 '소쟁기'도 끌어봤다. 보기에는 쉬워 보여 큰소리치고 덤볐다가 아저씨가 일궈놓은 밭만 망쳐놓고 말았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조개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웅기읍 굴포리란다. 선사시대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부터 '선봉'으로 바뀌었나?"
"오래됐지요, '수령님'께서 살아 계실 때니까요. 한 30~40년 됐습니다. 지명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이곳이 경흥군인데 지금은 은덕군으로 바뀌었고 또 군내의 웅기, 아오지 등 옛 이름들이 모두 새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뭐라 그랬어? 아오지?"
"네. 바로 요 옆입니다. 아오지란 옛 이름을 아십니까?"
"잘 알지. 그곳에 탄광이 있다고 배웠지."
"남조선에서 학교 다니실 때 말씀이십니까?"
"응."
"남조선에서도 북조선 지리를 다 가르치는가 보지요?"
"그럼 물론이지. 근데, 문 안내원, 내년 8월에 우리가 여기 올 때, 아오지에 한번 가볼 수 없나?"

"가 보실 수는 있는데... 그곳에는 관광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저 산업지역입니다."
"아니, 학교 때 배운 곳이라 어떤 곳인지 그냥 궁금해서..."
"그럼 다음에 오실 때 가보실 수 있도록 일정을 조직해 보겠습니다. 가 보셔야 그저 공장하고 탄광인데... 근데 참 이상합니다, 선생님. 외국서 오신 손님들은 '체험학습'이라 해서 로동을 일부러 하질 않나 아니면 선생님처럼 광산이나 공장을 관광하시겠다고 하질 않나... 혹시 선생님, 아오지에서 '체험학습 로동'해 보시려는 것은 아니지요? '체험학습 로동'은 구리스 선생 농장에서만 가능합니다."

"아오지에서 무슨 체험학습이야. 난 크리스네 집에서도 제대로 안 했잖아. 걱정하지마. 그런데, 아오지에는 꼭 가지 않아도 돼."
"하여간 원하시면 구리스 선생 크라훈 회사에 말씀하십시오."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운전기사 '사슴' 아저씨, 문호영 안내원의 눈가에도... 강을 건너는 버스 안에서 고개를 돌려 북한 땅을 바라본다. 내려서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다. 2011년 10월, 평양에서 시작된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 오늘 조국의 북쪽 끝에서 그 막을 내리려 한다.

내 마음에 드리워져 있던 두터운 차단의 장막을 조국의 최북단, 이곳에 흐르고 있는 두만강 물결에 훨훨 던져 동해로 흘려보내련다. 잠시 멈춰 있었던 찬란한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함께 써 내려가길 간절히 기도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불러 본다.

"아, 나의 조국이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79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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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연재를 마치며] 북녘 동포는 보듬어 안을 우리 형제

12.10.11 19:58 l 최종 업데이트 12.10.11 19:58 l 신은미(eunmishin)


북한동포. 이들이야말로 분명 우리가 사랑하고 보듬어 안아야 할 우리 민족이요, 제 형제자매, 그리고 이웃이었습니다. 보잘것없고 편협하기 그지 없었던 내 마음의 빗장을 깨부수고 활짝 열어젖히니, 어두웠던 곳곳을 환히 비춰주는 따사로운 빗줄기가 마음속에 들어옴을 느끼게 됐습니다. 진작에 열어젖히지 못한,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내 마음에는 아쉬움만이 가득했습니다


여행 중 만난 따듯한 북한 동포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에 비친 그들의 가난은 지금도 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북한에 다녀온 후 사람들이 제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라고.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을 통해 뜨게 된 마음의 눈으로 내내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슬픔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을 때, 마음에서 진정한 사랑이 배어 나오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으로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니, 그 어떤 것도 굴절되지 않고 어그러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였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7943




이 수의사도 이곳에서 산 지 10여 년이 넘었단다


참, 별난 인간이로군요.

그 좋다는 미국 생활을 버리고, 가난뱅이이자 빨갱이 나라라는 북한이 좋다고

북한에서 무려 10여년이나 살다니요?



진작에 열어젖히지 못한, 미련하고 어리석었던 내 마음에는 아쉬움만이 가득했습니다.


친일매국노들이 만든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던 한민족 최근세사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신은미 기자님은 그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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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知天命 | 작성시간 12.10.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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