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에 - 이해인
나뭇잎에 지는 세월
고향은 가까이 있고
나의 모습 더없이
초라함을 깨달았네
푸른 계절 보내고
돌아와 묵도하는
생각의 나무여
영혼의 책갈피에
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햇빛에 실리어오는
행복의 물방울 튕기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다
조용히 겨울을 넘겨보는
십일월의 나무 위에
연처럼 걸려 있는
남은 이야기 하나
지금 아닌
머언 훗날
넓은 하늘가에
너울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별밭에 꽃밭에
나뭇잎 지는 세월
나의 원은 너무 커서
차라리 갈대처럼
여위어간다
[민들레의 영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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