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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영화

[스크랩] 로코코 서민 화가 "샤르댕"

작성자박꽃향|작성시간11.03.01|조회수33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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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Ro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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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 Wasserbehä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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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Teetrink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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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가.

 

샤르댕 /샤르댕이 그린 유화 〈The ...

친밀하고 사실적인 표현과 조용한 분위기, 밝은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정물화와 실내풍경화로 유명하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물들을 주제로 정물화(예를 들면 〈찬장 Le Buffet〉, 1728)를 그렸으며, 풍속화의 주제로 평범한 일상사를 선택했다(예를 들면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 Dame cachetant une lettre〉, 1733). 그는 또한 몇 점의 뛰어난 초상화도 그렸는데, 특히 말년의 파스텔화는 매우 훌륭하다. 172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샤르댕은 파리에서 태어나 실제로 그가 태어난 지구인 생제르멩데프레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미술가인 피에르 자크 카즈와 노엘 니콜라 쿠아펠 밑에서 잠시 일했지만, 그가 받은 미술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724년 그는 독립 화가로서 '생 뤽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그러나 1728년 궁정화가인 니콜라 드 라르질리에르(1656~1746)의 도움으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그 아카데미에 〈가오리 La Raie〉와 〈찬장〉을 출품했는데, 이 두 작품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샤르댕은 아직 기반을 잡지는 못했지만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1731년 마르게리트 생타르와 혼인했다. 2년 뒤 최초의 인물화인 〈편지를 봉하고 있는 부인〉을 발표했으며, 그때부터 샤르댕은 정물화나 〈식사 전의 기도 Le Bénédicité〉와 같은 가정생활을 다룬 실내화와 〈젊은 화가 Le Jeune dessinateur〉·〈팽이를 들고 있는 아이 L'Enfant au toton〉(루브르 박물관)와 같이 일이나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남녀를 다룬 반인물화를 번갈아 그렸다. 그는 같은 주제를 자주 되풀이해서 그렸으며, 같은 유형의 작품들을 여러 점 남겼다. 1735년 그의 아내가 죽은 뒤 작성된 재산목록은 그들이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무렵에는 이미 샤르댕이 화가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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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중화20추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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