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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듣는 이야기] 언더우드가 기념관 -고즈넉해서 더 푸른 꿈, 그곳을 찾다.

작성자스티그마| 작성시간14.06.13| 조회수71| 댓글 13

댓글 리스트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이성희 (lee1316) : 원두우 선교사님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그대로 베어있는 듯한 전경들입니다.. 우리 삶의 흔적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나현정 (njell282) : 길을 묻는 이에게.. 참 와 닿는 제목입니다. 이 땅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언더우스 선교사님의 가옥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시네요 ^^;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인생을 실천하신. 조선땅이 너무 좋아서 원두우로 일평생을 사셨던 그 사랑의 마음이 오늘을 사는 저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사람이 죽고 난 후 그 집이 이렇게 박물관처럼 기념되어 진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인생♡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독 청년들이 다시금 복음에 빚진 자로, 전파하는 일을 감당하리라..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기도합니다. 마음에 복음이 희미해질때, 찾아가 새롭게 부어주시는 그 사랑을 충만히 느끼고 올 수 있는 그런. 기념관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이세진 (extreme2) :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 땅이 회복되고 선교의 나라가 되였다고 봅니다. 이렇게 언더우드선교사님의 기념관이 있어 선교사님의 뜻을 기억하고 다시 우리의 신앙을 바로 잡을수 있어 좋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신앙의 본이 될 수 있는 은혜의 터가 되길 기도합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함영선 (hyshannah) : 서울안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네요. 이 글을 써주신 분께 감사하고 아이와 함께 놀이 공원을 전전하며 다닐게 아니라 이런 곳에 가서 한국을 사랑한 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꼭 한번 가족과 함께 가겠습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강미정 (kangmj71) : 갓피아홈을 통해 보는 데도 왜이리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사랑을 느껴질까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리고 한국을 사랑한 열정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사랑이 있기에 누구나 다가갈수 있는 평안한 집을 그리고 지금 그 집에 가면 선교사님을 만날것 같네요
    그리고 나도 그런 선교사님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아직도 너무나도 부족한 저이지만, 누구나 나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고싶어하고 그리고 저의 집에만 들어와도 알수없는 평안을 만끽하는 그런 가정이 되고 싶은 소망과 꿈을 꾸어보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그리고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세딸들과 이곳을 데려가고 싶어요 또한 가지 주일학교 어머니와도 카톡에 나누어 이곳에 대해 나누며 일세데들의 진한 하나님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백은경 (honistar) : 언더우드 언더우드... 참 많이 들어온 이름이지만, 한번도 그분의 노고와 마음을 제 맘속에 되새겨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나무에 쌓인 아담한 집의 모습이 꼭 하나님이 선교사님을 또 우리를 지키고 계신 모습 같기도 하고...
    글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세심하고 정갈한 집안 모습에서 그분의 또 주님의 숨결을 느낄수가 있네요...
    조만간 방문하고 싶어요...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오신성 (issacok) : 작가님의 글처럼 작고 아담하고 편안해 보이는 언더우드 집에 대해 1900년대 초반 일제 침탈 당시의 문화, 역사적 상황에서의 언더우드 집은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들어왔던 언더우드 선교사에 대해 간략한 자료를 찾아보았지요. 혹시 외국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문화적침탈을 당한건 아닐까? 또는 본국에서 지원하는 선교비로 일제강점화! 어렵게 생활하는 당시 조선의 서민편이 아닌 화려하고 좋은 부를 누렸던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게 아니더군요 자신의 재산을 이국땅에 기부하고 직접 들어와서 학교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셨더군요.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또한 다른 가족들까지도 재산을 우리나라에 기부하면서까지 우리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주셨던 분이라는걸 알게되었습니다. 자신의 부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까지 하면서 헌신하셨던 고귀한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애들도 데리고 양화진에 한번 가보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박희영 (chinapiao) : 지난 날의 삶과 다른 생활방식으로 사는 조선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름까지 조선식으로 원두우로 스스로 지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춤이 언더우드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며 엎드렸을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 기도들이 쌓여 오늘날의 기독교가 한국에서 살아 숨쉬는 것이 아닐까요...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김성희 (start0425) : 중등부아이들을 데리고 양화진의 언더우드 묘지를 찾아가 이땅에 오신 선교사님에 대하여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신앙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것 같다. 질풍노도의 시기의 청소년 아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길 기도한다.
  • 작성자 스티그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13 남궁화경 (givenjoy) : 먼저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그분들의 사랑과 수고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드네요. 앞으로도 한국 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세워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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