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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인물들

예상치 못한 풍성한 열매 - 로버트와 제임스 형제, 그리고 프랑소아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1.03|조회수39 목록 댓글 0

예상치 못한 풍성한 열매- 로버트와 제임스 형제, 그리고 프랑소아(Robert & James Haldane, François Coillard)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스코틀랜드 형제인 로버트 홀데인(Robert Haldane: 1764-1842)과 제임스 홀데인(James Haldane: 1768-1851)의 영향력을 이용하셨다. 그들은 1795년에 회심하였으며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설교를 하였다. 제임스는 에딘버러에서 수년간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하였다.

로버트는 스코틀랜드에서의 사역 후에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학생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왔고, 그들은 스위스와 프랑스에 종교적 각성을 일으켰다. 그 부흥은 1822년에 ‘파리복음주의선교회’(Paris Evangelical Missionary Society)를 출발하게 하였다. 로버트 홀데인이 1842년 죽을 때, 그는 그의 영향력이 프랑스의 농장에서 칠면조를 돌보는 작은 소년에게 집중될지를 몰랐다.

제네바의 로버트 홀데인의 학생 중에 아미 보스트(Ami Bost)가 있었는데, 그는 프랑스의 아스니에(Asnières)에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 교회에는 코일라(Coillard)라는 이름의 일곱 명의 자녀를 가진 가난한 과부가 있었다. 그녀는 가장 어린 아들인 프랑소와(François Coillard)를 하나님께 드렸다. 프랑소와는 여섯 살의 나이에 칠면조를 돌보고 있었다. 아미 보스트가 그 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의 설교는 감수성이 강한 어린 프랑소와에게 외국 선교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소와는 17살 때 훈련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의 설립자와 책임자는 자케(Jaquet)였으며 학교의 표어는 ‘주님께서 공급하신다’였다. 어느 주일날 자케는 평소의 건조한 설교를 대신하여 다음 질문으로 끝맺는 소책자를 읽었다. ‘당신은 알곡인가 쭉정이인가?’ 프랑소와는 그 질문의 의미를 알기위해 애를 썼다. 그는 후에 이렇게 썼다. “한줄기 빛이 나의 고뇌의 밤에 비취었다.” 그는 믿는다는 것은 지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전에 그가 느끼지 못한 평화가 몰려왔고 이 경험은 그의 생의 나머지 부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학, 신학교, 그리고 선교를 위한 학교까지 다닌 그는 아무 선교사도 가지 않은 곳으로 자신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였다. 파리복음주의선교회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오늘날의 레소토 왕국(kingdom of Lesotho)인 바수토랜드(Basutoland)로 그를 파송하였다.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프랑소와는 파리에서 모인 선교 모임에서 연설하였는데 크리스티나 메킨토쉬(Christina Mackintosh)라는 이름의 여성이 청중 가운데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어린 시절에 그녀의 가족은 제임스 홀데인이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그의 영향 아래서 크리스티나의 아버지는 목사가 되었다. 크리스티나는 14살 때 이미 선교에 대한 설교를 듣고 선교에 불이 붙어 있었다. 모임 후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프랑소와는 첫 눈에 사랑을 느꼈으나 너무 부끄러움을 타서 자기의 느낌을 전할 수 없었다.

프랑소와는 1857년에 안수를 받았고 같은 해 11월 6일에 아프리카에 도착하였다. 말쑥하게 면도를 하고 열심히 일을 시작했을 때, 아프리카인들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주었다. 그것은 수염이 없고 아내가 없는 남자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시 그는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으나 아내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곧 그는 크리스티나가 생각났다. 기도한 후에 그는 프랑스의 방식을 따라 청혼하는 편지를 보냈다. 6개월 후에 그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녀는 그에 대해서 충분히 모르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는 다시 청혼하기 위해서 2년의 긴 시간을 기다렸다. 이번에 그는 크리스티나에게 직접적으로 썼다. 크리스티나는 그의 편지를 받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경험하였다. 1860년 7월 5일 프랑소와는 그녀의 답장을 받았다. 그 후에 그녀는 아프리카로 왔고 1861년에 케이프타운에서 결혼을 하였다.

프랑소와와 크리스티나 (François Coillard: 1834-1904, Christiana Coillard: 1829-1891) 부부는 함께 30년간 선교사역을 하였다. 그들의 풍성한 봉사의 열매는 현재의 잠비아(Zambia)의 잠베지 강(Zambesi River)을 따라서 선교 본부들이 건설된 것이다.

홀데인 형제의 열매는 지구의 반을 돌았다. 오늘날 잠비아에 200만 이상의 복음적인 기독교인들이 있는 것은 그들 형제의 수고의 열매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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