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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인물들

아들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 더턴 레인(Dutton Lane)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1.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아들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 더턴 레인(Dutton Lane)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더턴 레인(Dutton Lane: 1732-?)은 볼티모어(Baltimore)에서 1732년에 태어났다. 그 해는 조지 워싱턴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후에 그의 집은 노스캐롤라이나 접경에 있는 버지니아로 이사를 하였다. 그의 아버지 로버트 레인(Robert Lane)은 성공회 교도(Anglican)였으며 침례교에 대한 완강한 반대자였다.

부흥운동의 지도자인 조지 휫필드의 집회에서 1745년에 회심한 슈발 스턴스(Shubal Stearns: 1706-1771)는 1755년에 그의 처남인 다니엘 마샬(Daniel Marshall: 1706-1784)의 도움으로 ‘분리파 침례교’(Separate Baptist Church)를 세웠다. 분리파 침례교는 부흥운동을 찬성하는 침례교이며 부흥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규파 침례교’(Regular Baptist)라고 불리었다.

더턴 레인의 가족 중에서 더턴의 형인 티덴스 레인(Tidence Lane)은 침례교 신앙을 처음으로 받아들였으며 동생의 개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티덴스는 결혼을 하여 노스캐롤라이나에 가서 유명한 스턴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가서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회심하고 세례를 받았다. 신약성경의 안드레처럼 티덴스는 동생에게 가서 자기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에 대해서 말했다. 더턴은 형의 증언에 감동을 받고 집회에 참석하였다. 더턴은 회심하여 1758년에 스턴스에 의해 세례를 받았다.

더턴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임을 느끼고 하나님의 구속하는 사랑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부흥은 시작되었고 더턴의 친구 몇 명과 이웃 몇 명이 개종하였다. 한 번은 슈발 스턴스와 다니엘 마샬이 더턴이 전도한 회심자 42명에게 세례를 주기도 하였다.

더턴은 1764년에 목사로 임직하였다. 그는 1760년에 버지니아(댄 리버: Dan River, Virginia)에 세워진 첫 분리파 교회를 돌본 것으로 보인다. 더턴은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강한 체질, 힘찬 목소리, 불타는 마음, 그리고 주님께 봉사하는 열심이 있었다. 1772년까지 교회는 번창하여 5명의 설교 보조자를 두고 5개의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한 번은 루넨버그(Lunenburg, Virginia)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치안판사인 조셉 윌리엄스(Joseph Williams)는 예배를 중단시키고 사람들을 해산하라고 명령하였다. 더턴은 다른 곳에 방해 없이 전파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다시 이곳에 올 줄 몰랐다고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군중에게 몇 마디 말을 한 후에 그는 윌리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의 느낌으로는 당신은 침례교인이 될 것이고, 지금 박해하고 있는 일에 대한 후원자가 될 것입니다.” 약 12년 후 그는 개종하여 열성적인 침례교 집사가 되었고 그 예측은 성취되었다.

그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더턴에게는 적대자가 많았다. 윌리엄 코커(William Cocker)라는 사람은 만약 침례교도가 되어야 천국에 간다면 자기는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겠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그가 더턴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의 반응은 땅에 엎드려 외치는 것이었다. “주님,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죽은 목숨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곧 구원을 받았고 침례교도가 되었다.

다른 경우는 제임스 로버츠(James Roberts)라는 이름의 적대자였다. 그는 레인의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을 체포하기 위해서 영장을 받아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들이 밤에 움직일 때 초자연적인 빛이 비치고 그들의 말들을 놀라게 하였다. 밝은 빛에 이어 큰 어둠이 나타나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로버츠는 이것이 하나님의 경고라고 이해하였고 즉시 더턴을 대적하는 일을 멈추었다.

불행하게도 더턴의 가장 큰 대적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가족과 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은 어머니가 그의 아들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강하게 되었고 다시 아들의 설교를 들으러 간다면 채찍으로 치겠다고 말하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 빠져나가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올 때 채찍을 휘둘렀다.

곧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총을 들고 아들을 쫓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다. 새 사냥을 할 때도 총을 쏘기 전에 새들에게 날아갈 기회를 준다는 것을 회상시켰다. 그리고 아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였다. 즉 아들을 죽이기 전에 최소한 한번만이라도 가서 그의 설교를 들어보고 아들이 죽어도 되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더턴의 아버지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마지못해 아들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아버지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곧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서 댓가를 치루신 분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더턴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의 아버지에게 세례를 베푸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더턴 레인의 후반기 삶은 자세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는 죽을 때까지 설교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와 가까운 사람은 그의 삶이 흠 잡을 데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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