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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인물들

기도하는 장군 토마스 잭슨(Thomas J. Jackson)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2.02|조회수43 목록 댓글 0

기도하는 장군 토마스 잭슨(Thomas J. Jackson)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토마스 잭슨(Thomas J. Jackson / Stonewall Jackson: 1824-1863)은 버지니아의 클락스버그(Clarksburg, Virginia)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한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Military Academy)에는 겨우 합격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부하는 동안 우수한 성적을 받았고 미국의 군 역사상 위대한 전술적 천재가 되었다.

기독교신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소년시절부터 있었지만 특히 그가 졸업반 때 멕시코전쟁에 참가했을 때 많이 강화되었다(1846년). 1848년 4월 그는 감독교회(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어느 교파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서 감독교회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1851년부터 그는 버지니아 군사학교(Virginia Military Institute)에서 10년간 가르쳤다. 그의 학생들은 그를 지나치게 경건하고 유연성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였고 그를 장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장로교회에 소속되어 집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매우 신중하였으며 영적인 헌신이 매우 강하였다.

1853년에 그는 엘리너 저드킨(Elinor Judkin)과 결혼하였으나 그의 기쁨은 매우 짧았다. 그것은 결혼 후 1년 만에 아내가 첫 아이를 낳던 중에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큰 상실은 그의 신앙에 대한 진정한 시험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께 다시 헌신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섭리는 상실 속에서도 이유가 있다는 확신이 그를 위로하였다.(1)

잭슨은 남부의 여러 주들이 미국 정부(Union, 북군)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아직 그는 충성스러운 버지니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버지니아가 정부로부터 독립함으로써 그는 북버지니아 군대의 위임을 맡게 되었다. 그의 여단은 처음 전투(Bull Run)에서 공격해 오는 것을 돌벽과 같이 강하게 방어하여 유명한 별명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돌벽’(Stonewall)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Stonewall Jackson’이라 불린다.

전투에서 보여준 잭슨의 강한 용기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었다. 어떤 장교 한 명이 그에게 어떻게 전투 중에도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교님, 나의 종교적 신념은 내가 전투 중에서도 침대에서와 같이 안전을 느끼도록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내가 죽을 시간도 정해 놓으셨습니다. 나는 그래서 죽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언제 나에게 다가올지 항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장교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용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잭슨은 언제나 그의 승리에 대한 보상을 하나님께 돌렸다.

“나의 성공은 다 하나님의 축복 때문입니다. 성공을 이룰 때마다 나의 기도의 제목은 모든 영광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열정적으로 기도하였다. 그리고 전투하기 전날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 밤에도 여러 번 깨었다. 1861년에서 1863년 사이에 그는 여러 전투에서 전술적인 천재로서의 능력을 나타내었다(예를 들면 the Peninsula campaign, the Shenandoah Vally, Seven Days’ Battle, Cross Keys, Port Republic, the Second battle of Bull Run, Antietam, Fredricksburg, and others).

챈슬러스빌(Chancellorsville, Jackson) 전투에서 그는 아군의 포격에 팔의 부상을 입었다. 그의 왼편 팔은 절단되었고 회복하는 중에 천식에 걸렸다. 리(Lee) 장군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라를 위해서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불구가 되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승리를 축하합니다.”

잭슨은 이 편지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리 장군은 매우 친절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합니다.”

잭슨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1863년 5월 10일, 그는 의식 중에서 마지막 말을 하였다. “강을 건너자 그리고 나무의 그늘에서 안식하자.” 위대한 장군의 영혼은 하나님의 평화 속으로 들어갔다. 3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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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1857년 메리 앤나 모리슨(Mary Anna Morrison)과 재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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