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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인물들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존 웨슬리(John Wesley)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3.18|조회수36 목록 댓글 0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존 웨슬리(John Wesley)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1742년과 1743년에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웬스베리(Wednesbury), 달라스턴(Darlaston), 월솔(Walsall) 지역의 광산촌에서 설교를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지역에 두 차례의 여행을 통해서 감리교 협회는 400개로 늘어났으며, 존은 영국 교회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743년에 다른 감리교 순회 설교자가 와서 한 국교회 목사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그동안 감리교도들을 후원하였으나 반대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 결과 웬스베리, 달라스턴, 월솔의 성직자들이 힘을 합하여 그 지역의 감리교협회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만약 감리교도들을 허용한다면 앞으로 닭싸움(cockfighting), 소곯리기(bullbaiting), 프로권투시합(prizefighting)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존 웨슬리가 1743년 10월 20일 다시 웬스베리에 왔는데, 그는 정오에 별다른 소란 없이 설교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후에 달라스턴에서 온 군중들이 웨슬리와 그와 함께 있는 감리교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하면서 다가왔다. 웨슬리는 군중의 우두머리 되는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그들을 설득하였고 그들이 웨슬리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한 여성은 심지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신사 분은 정직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곧 무리는 해산되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에 무리들이 다시 와서 웨슬리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월솔에 있는 치안판사의 사무실에게 가야 한다고 강요했다. 그들은 웨슬리를 고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거기 도착한 시간에는 이미 사무실의 시간이 끝난 상태였고, 달라스턴의 군중들은 친절하게 변했다. 웨슬리가 겨우 100m 정도 걸어갔을 때 그들은 월솔에서 온 무리들과 만나게 되었다. 웨슬리는 갑자기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였던 달라스턴의 호위자들과 월솔의 군중들의 사이게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웨슬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여성이 몇 명의 남자를 때려눕혔으나 그녀는 곧 제압되었다. 만약 월솔에서 온 어니스트 먼친(Honest Munchin)이라고 알려진 프로권투 챔피언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무리들은 웨슬리와 감리교도들을 월솔의 가파른 길로 끌고 내려갔다. 거기서 무리들은 웨슬리를 계속 위협하였다. 웨슬리는 외쳤다. “내 말을 듣는가?” 그러나 성난 무리들은 외쳤다. “아니다. 그의 머리를 때려 죽이라!” 웨슬리는 대답했다. “내가 너희 중에 누구에게 잘못을 하였나?”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잠시 그들은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15분 정도 지나자 웨슬리의 목소리에 힘이 빠지고, 그의 입에서 말이 살아졌다. 어니스트 먼친이 이끄는 군중이 다시 외쳤다. “그를 끌고 오라. 옷을 벗겨라!”

그런데 웨슬리의 목소리가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당신들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옷을 벗어 주겠다.” 그리고 그는 크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님만 바라보았다.

그의 기도가 기대하지 않은 방법으로 응답을 받았다. 어니스트 먼친이 갑자기 웨슬리와 함께 눈을 감고 말했다. “선생님, 나는 나의 삶을 당신을 위해서 보내겠습니다. 나를 따라 오십시오. 어느 누구도 당신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몇몇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들은 웨슬리와 그의 지지자들을 둘러싸고 인간방패를 만들었다. 군중들은 자기들의 지도자의 돌변에 놀라고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물이 흐르는 하천을 건너는 다리에 도착하자 외침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를 빠뜨려라!” 그리고 실랑이가 발생했다. 어니스트 먼친이 한 저항자의 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웨슬리와 그의 지지자들을 안전하게 인도했다.

그 다음 날 웨슬리는 웬스베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의 사역의 결과는 계속되었다. 어니스트 먼치과 그에 의해서 팔이 부러진 젊은이는 두 사람 다 감리교 협회에 가입했고, 먼친은 죽은 날까지 46년간 웬스베리와 월솔의 감리교도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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