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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자료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헌의회(大韓民國制憲國會, 制憲議會)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7.17|조회수219 목록 댓글 0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헌의회 (大韓民國制憲國會, 制憲議會)

1948년 5월 31일, 중앙청 의사당에서 개원한 제헌의회, 초대 국회의장인 이승만은 맨처음 순서로 북한출신 목사 이윤영 의원을 불러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도록 했다.

‘대한민국 제헌국회’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구성된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의회로 대한민국 헌법을 최초로 만든 국회를 말한다. ‘제헌의회’(制憲議會)라고도 한다.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전승국(미국·소련) 상호 간의 이해관계,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라는 명분으로 남북협상에 참여한 상해 임시정부계의 민족진영 일부 인사들의 반대,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계열의 방해 공작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1948년 2월 26일, 유엔에서는 유엔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 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하였으나 북한은 남북한 총선거 결정에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하여 유엔 결의를 거부하였다.

유엔의 결의를 거부한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 선거가 가능한 38선 남쪽(남한) 지역에서만 유엔의 감시하에 1948년 5월 10일 최초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헌법제정을 위한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실시되었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체 200명 중에 제주도 2개 구를 제외하고 198개 구에서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이 선출되었다.

제주도는 4·3사건 발발(勃發)로 선거가 무기한 연기되었다가 1년 뒤에 치러지게 되었다.

제헌 국회의 정당별 당선인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4명, 한국 민주당이 29명, 대동청년단 12명, 조선민족청년단 6명,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이 2명, 기타 단체 11명, 무소속 84명이었다.

정당과 단체 기준으로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제일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무소속이 가장 많았다.

무소속이 제일 많았던 이유는 아직 정당정치가 안착하지 못했다는 점과 함께 김구와 한국독립당처럼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선거에 조직적으로 불참한 정치세력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초대 국회였기에 아무런 운영 규정이 없었으므로 당선자들은 언제, 어디서 첫 회의를 열며 회의 진행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혼란에 빠졌다.

참고할 만한 선례 규정도 없고, 모두 새로 길을 내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당선자 신분이었던 제헌의원들은 미군정 당국자들과 협의를 한 후 5월 21일 신익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회 소집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제반 준비를 하도록 했다.

이후 준비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5월 27일 국회의원 당선자 143명이 모여 ‘국회의원 예비회의’를 했다.

여기서 국회법이 제정될 때까지 개원식 절차 등을 포함한 국회 운영에 관한 규정 결정을 준비위원회에 위임하게 되고 제헌국회 개원 일자를 5월 31일로 정했다

1948년 5월 31일 월요일 오전 10시 20분, 중앙청 홀에서 당선자 198인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원한 제헌국회는 최연장자인 이승만을 임시 의장으로 추대하여 의사(議事, 會議)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승만 박사 기도요청

임시의장으로 추대된 이승만 박사가 의장석에 등단하자 국회의원 일동이 박수를 보냈다.

이승만 임시의장은 독특한 떨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로 역사적인 사회를 시작하였다.

“동지 여러분, 우리나라 대한민국 독립 민주 국회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독립 국가를 이루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우리 중에 어른이시고 목사이신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리교의 장로였던 이승만 임시의장의 이 발언에 따라 목사이면서 국회의원이었던 이윤영 의원이 단상으로 올라가 간결하면서도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 일을 기적이라 할 것이 대한민국이 세워지게 되면서 처음 뽑힌 국회의원 중에는 종교와 사상이 실로 다양하였다.

종교로 말하자면 기독교, 불교, 유교 및 민족종교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있었고 사상적으로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 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함께 일어나 고개를 숙여 건국을 감사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실로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세울 때 맨 먼저 기도하고 시작한 일이 어찌 기적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윤영 의원은 기독교 성직자인 목사의 신분으로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분이다.
그의 기도는 국회의원 전원이 기립한 가운데 드려졌다.

그때의 이윤영 목사님의 기도 전문이 국회 속기록 첫 페이지에 그대로 실려 있다.


다음은 초대 국회 임시 의장으로 추대된 이승만 박사의 요청을 받은 이윤영 의원(목사)이 드린 기도문이다.

이윤영 의원 기도(일동기립)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 랜 시일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데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 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이겨서 양시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 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환희와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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