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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열전 ② 선교 열정으로 평생을 헌신한 호주선교사 - 한국 한센병의 친구 맥켄지(James N. McKenzie)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5.10|조회수45 목록 댓글 0

선교사열전 ②

선교 열정으로 평생을 헌신한 호주선교사

 

한국 한센병의 친구 맥켄지(James N. McKenzie)

선교사들이 이 땅에 오면서 여러 선교정책들이 발전했다. 그중 하나가 선교의 효율성을 위해 각 지역을 각 교단 선교부별로 분담한 것. 미국의 북장로교는 평안도와 황해도, 경상북도를 맡고 미국 남장로교는 제주도와 전라도, 충청도 선교를 맡았다. 캐나다 장로교는 함경도 지방을 맡기로 하고 부산, 경남지역은 호주선교회가 맡았다. 지난 호에 소개되듯 1889년 10월 데이비스 선교사가 입국하여 비록 제대로 복음전도 날개도 펴보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함으로 부산 경남지방은 호주선교부의 선교 못자리가 되었다.

 

1910년 2월 45세 나이로 부산을 찾아와 29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보면서 복음을 전한 제임스 노블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1965~1956) 선교사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나환자는 천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당시 한국에 들어와 한센인의 진정한 친구로 살았다.

 

맥캔지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16살에 일자리를 찾아 글래스고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무디 등 부흥사의 강연을 듣고 영적 체험을 하였다. 그 후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1891년 졸업하고, 이어서 트리니티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마거릿 켈리(간호사)를 만나 1894년 7월 결혼하고 호주로 이주 1894년 12월 멜버른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맥켄지는 한국선교사로 지원했고, 호주 빅토리아장로회 해외선교위원회는 파송이 여의치 않은 여건임에도 1년 치 봉급을 받지 않더라고 선교활동을 하겠다는 그의 열정에 감동하여 그를 청년선교단 'The Young People's Mission Band, YPMB이 후원하는 첫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한 것.

 

처음에 그는 먼저 사역하고 있는 엥겔 선교사와 연합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919년 그가 평양으로 사역지를 옮기자 금사교회, 내리교회와 울산지역에 화전교회, 평동교회 등을 순회 전도를 하였다. 이후 부산진교회 담임, 일신학교 설립 등 경남노회에서 여러 일로 섬겼다.

 

그는 또 울릉도를 방문한 첫 선교사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1914년 울릉도에 흉년이 들었을 때 호주 선교부가 이를 돕기로 했는데, 이때 맥켄지가 울릉도를 방문해 그곳에 있는 교회들을 맡아 성실히 사역을 감당했다.

선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1910년 부산에 들어온 맥켄지 선교사는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15년간 호주 인근 바누아투 산토섬에서 사역했습니다. 바누아투는 영국 및 캐나다 선교사가 초기 방문하였으나, 식인종인 원주민에게 순교 당한 국가이다. 여러 선교사가 희생되고 50년이 지난 후에 맥켄지 부부가 산토 섬에 들어가 600여 명을 문맹에서 해방하고 330여 명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 켈리가 열병으로 그곳에서 순직하였고, 그도 열대성 질병으로 호주로 돌아와야 했다. 바누아투를 떠나는 맥켄지 선교사에게 감사함의 표시로 원주민들이 전달한 200파운드의 기금은 다음 선교지 조선선교의 씨앗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헌신한 선교사의 꿈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한국교회를 이루고 다시금 열방의 땅 바누아투로 선교사를 파송 선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한센병 환자 가운데 살면서 사역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선교 사업은 없다.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한 일보다 그들이 나에게 한 일이 더 크다…… 또 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평생을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로 살다가 그가 남긴 말이다. 실제로 호주에 있는 그의 자그마한 묘비에는 “한국 한센병의 친구”(FRIEND OF KOREAN LEPERS)라는 짧은 문장이 기록되어 있다.

 

상애원과 맥켄지 그리고…

 

천형으로 알려질 만큼 나병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당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인데 당시 한국에는 많은 나환자들이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나 보호 없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다. 1912년 맥켄지가 나병원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병원의 이름을 상애원으로 부르고 은퇴할 때까지 27년 간 한센인들을 돌보았다. 당시 우리나라 2만 명의 한센병 환자가 있었는데 그 중 부산, 경남에 7000명이 있었다고 한다. 한센병 환자가 많아 이들을 돌보는 사역이 필요했는데 그가 이 사역을 담당한 것이다.

 

처음은 20여 명으로 시작되었다. 점차 그 수가 증가되었다. 바로 36명… 이어 1914년에는 8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이후는 650여 명의 나환자를 수용하는 나환자 정착촌이 되었다. 그리고 한센인 복음화를 위해 상애원 내에 상애교회(현 창대교회)를 창립했다.

 

그는 정식 의사가 아니었으나, 한센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익혀서 결국 정부로부터 의사로 인정을 받았다. 맥켄지는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치료법을 연구하여 환자들에게 적용했다고…. 그 결과 평균 사망률이 15%로 줄어들었고, 1923년에는 사망률이 2.5%로 현저히 낮아졌다. 당시에 선진국에서의 사망률이 5~6%였음을 감안한다면 놀랄만한 성과였다. 맥켄지는 한센병 치료에 변함없는 사랑의 보살핌과 규칙적인 좋은 음식, 그리고 환자가 가진 다른 질병들에 대한 치료가 중요하다 보았다. 연약한 체질개선을 위해 가사노동이나 요리, 농작물 재배 등을 감당하도록 했다.

 

맥켄지의 헌신을 이어받은 한국인 목사가 손양원 목사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린 여수애양원의 손양원을 만들어 낸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부산 나병원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맥켄지 선교사의 헌신을 배웠다. 그 후 한센병 환자를 위한 사역에 헌신하였고, 두 아들이 공산당에게 순교하면서도 가해자를 양아들로 삼아 목사로 만든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다.

 

대를 이어 선교 맥켄지 가문

 

“아들이 없어 후임을 물려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내가 딸이 있는데 꼭 공부시켜서 한국 사람에게 보내겠다.”

 

그는 1939년 은퇴하고 호주로 돌아갔다. 상애원 한센병 환자들과 나눈 맥켄지의 대화는 또 다른 비전이 되었다.

 

맥켄지는 1905년 호주 선교사로 내한하여 부산과 진주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여성 메리를 만나 재혼하였다. 그녀도 남편 맥켄지의 한센병 환자 돌보는 사역을 도왔다. 부부는 슬하에 딸이 셋이었는데 산부인과 전문의인 첫째 딸 헬렌(Helen P. McKenzie)과 간호사인 둘째 딸 캐더린(Catherine M. McKenzie)은 호주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와서 1952년 5월 9일 부산시 동구 좌천동 471번지에 부산일신병원을 설립했다.

 

당시 전쟁을 겪고 있던 부산에는 피난민이 많았고, 특히 아버지나 남편, 형제들이 군대에 징집되어 죽자 여성들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두 자매는 기독교인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섬기는 것이 옳다고 여기며 일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의료기관이 전무 한 부산에 이들이 세운 부산일신병원은 상애원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고….

 

한국과 호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맥켄지,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는 90여 년간의 생애를 마감하고 1956년 7월 1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부산시 동구 좌천동의 일신기독병원에는 '맥켄지 기념관'과 '맥켄지 기념비'가 복원되어 그의 사랑과 나눔을 기념하고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뉴스가 온 지면을 장식했다. 오늘의 우리가 있음은 당시 선교사들의 봉사와 헌신이 있었음을 은혜의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선교사 열전 이야기를 연재하며 전 고신대학교 이상규 박사의 ‘부산지방에서의 초기 기독교’(한국교회와 역사연구소)과 한국고등신학연구원 김재현 박사의 ‘한반도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KIATS)을 참고문헌으로 편집하였다.

이밖에 맨켄지선교회, 호주선교사묘원 경남선교120주년 기념관 등의 사료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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