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 2022년 봄편
<공부>
김사인, 공부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공부 / 김사인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 광화문글판 '봄편'은 김사인 시인의 시 '공부'에서 가져왔다.
○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시인은 1981년 등단해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연륜 있는 시인이다. 광화문글판 문안 선정은 '조용한 일'(2016년 가을편) 이후 두 번째다.
○ 교보생명 관계자는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는 계절의 틈새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공동체의 따뜻한 시선이 있음을 상기하자는 의미로 이번 문안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 교보생명은 봄편 문안으로 선정된 시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 사람간의 관계도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임을 배우는 것이 '인생공부'라고 비유했다. 각박한 현실이지만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이 있어 좀 더 성숙한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 글판 일러스트는 이미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봄을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과 함께 표현했다. 노랗게 물드는 벽을 통해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지켜보는 사람에게 온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