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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2023년 여름편, 안희영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8.23|조회수171 목록 댓글 0

광화문글판 2023년 여름편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영,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영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

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

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

적당한 햇살

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

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

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 뒤론 계속 내리막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

언덕은 자신에게

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토끼일까

쫓기듯 쫓으며

 

나는 무수한 언덕 가운데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을 지를 생각했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 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이번 문안은 여름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았다.

 

○ 교보생명은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매 순간순간은 겹겹이 쌓여 다른 풍경이 돼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여름을 만끽하는 게 아니라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 디자인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는 제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연두색 풀밭이 펼쳐진 풍경을 시원하게 표현했다.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동화 같은 추억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삶을 되새김질하는 계기를 준다.

시원하게 펼쳐진 연둣빛 풀밭을 토끼와 소녀가 거니는 풍경 위로 한 귀퉁이가 펄럭이는 종이가 얹혔있다.

종이를 걷어내면 동화 같은 추억의 한 장면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모르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 뭉쳐지고 합해져 저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을 담아 문안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 따사롭던 봄날의 햇살은 어디로 가고 타는 듯한 태양이 남았을까요?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온 일상이 마치 반으로 접은 듯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가져온 이번 문안은 우리에게 여름 언덕을 오를 때처럼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삶을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 무더운 여름날 언덕을 오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숨이 차고 힘든 순간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언덕 위에 올라서게 되겠죠. 그곳에서 지난 길을 돌아보고 있노라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느껴질 것이다.

 

○ 삶에 열중하다가 마치 반으로 접힌 듯 쏜살같이 흘러버린 시간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매 순간순간이 겹겹이 쌓여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될 거라는 의미를 담았다.

 

○ 광화문글판, 안희연 시인을 만나다

Q. 2023 광화문글판 여름편의 주인공이 되셨어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안희연 시인: 학창 시절부터 광화문 교보문고를 수시로 드나들었어요. 그때마다 광화문글판을 올려다보며 ‘언젠가 내 문장이 여기 소개되는 날이 올까?’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제게는 지금이 꿈같은 시간이에요. 요즘 지인들은 물론이고 독자분들까지 광화문글판을 지나다 인증 사진을 찍어 축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주시고 있어요. 하루하루 감격스럽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Q. 광화문글판에 대한 추억이 많으신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광화문글판은 무엇인가요?

 

안희연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 수록된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아직 내 속에 있을까/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문안이 떠오릅니다.

워낙 아끼는 책이라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오늘의 운세' 보듯 펼쳐보던 책이었는데요. 광화문글판에서 만났을 때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내적 환호성이 터졌어요!

Q. 작가님에게 ‘여름’이란?

 

안희연 시인: 여름은 태양과 태풍이 주인 행세를 하는 계절인 것 같아요. 정수리가 탈 듯이 뜨겁거나 빗물에 운동화가 젖어 발이 퉁퉁 붓는 계절. 그래도 그 태양과 태풍의 날들을 지나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나면, 의외의 풍경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죠.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더 이상 갈 곳 없는 절벽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회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절벽'이 아닌 '언덕'이라 부를 수 있는 용기는 이미 여러분 모두 내면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올여름 광화문글판을 통해 작가님의 문장을 마주할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안희연 시인: 모두의 여름이 저의 문장과 더불어 무탈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일들도 가다 보면, 다다르고 나면, 시간이 되돌려주는 근사한 장면이 되어 있으리라고 믿어요.

○ 이번 광화문글판 여름편은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통해 켜켜이 쌓인 삶을 되새김질해 볼 시간을 선사합니다. 여름의 긴 여정 속에서 광화문글판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광화문글판이 잠시나마 땀을 식히는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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