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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구약에서의 삼위일체(1).

작성자성령충만땅에천국|작성시간22.12.23|조회수47 목록 댓글 0

구약에서의 삼위일체(1).

 

 

개혁교회는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한국교회도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를 고백한다.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론은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으로 계신다.

     삼위일체는 하나님 내의 존재의 방식이다.

     창조세계에는 이에 합당한 유비가 없다.

     삼위일체는 인간이 영화가 되었을 때에도 알 수가 없는 하나님 내의 신비이다.”

라고 말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요체는

    “인간은 신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은 더더욱 알 수가 없다.

     이는 인간이 영화가 되었을 때에도 알지 못하는 신비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는 헬라철학의 이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방철학의 이원론 뼈대 위에서 하나님 내 존재의 방식을 개진하고 있다.

이는 구원역사가 배제된 하나님 내의 질서에 대한 기술이다.

영원세계에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는 철학적이다.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한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에 대한 서술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에 초점을 맞춰서 말하지 않는다.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를 말하지 않는다.

성경을 기록한 기자는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에 초점을 두어서 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도 인간의 속내를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내의 존재 방식을 알겠는가?

인간은 하나님 사역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다.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가?

언약에 의거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각 시대 언약에 의거한 하나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나타난다.

하나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 드러난다.

어떻게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시는가?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을 주신 중보자를 백성에게 보내셔서 역사하신다.

따라서 중보자의 말은 그를 보내신 여호와의 음성이다.

중보자의 사역은 그를 보내신 여호와의 뜻이다.

중보자를 믿는 것은 그를 보내신 여호와를 믿는 일이다.

중보자에게 대한 순종은 그들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다.

따라서 중보자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함께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 중보자는 사역적으로 함께 있다.

이처럼 성경은 사역적인 삼위일체를 말한다.

본체론적인 삼위일체는 헬라철학의 뼈대를 따라 개진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상상을 철학적인 언어로 나열한 것일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

각 시대 언약에 의거한 하나님 사역의 기록이다.

따라서 성경은 사역적인 삼위일체를 말한다.

하나님 사역을 통한 사역적인 삼위일체가 유비적으로 증거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원 사역을 어떻게 시행하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주신 중보자를 백성에게 보내셔서 역사하신다.

각 시대 백성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 사역의 방식은 언약적인 관계를 따라 이루어진다.

언약적 관계가 죄의 가리움이 있는 관계라면,

여호와께서는 죄로 인한 결계(휘장)를 두시고 역사하신다.

중보자는 그가 본 여호와의 영광을 백성에게 증거한다.(출9:13-18)

백성들은 중보자가 본 여호와의 영광을 누린다.(출4:4-5)

그러므로 아담시대는 아담이 아는 이상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노아가 아는 이상의 하나님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아브라함 시대는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믿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겼다.

따라서 중보자의 말은 여호와의 음성이며 중보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과 경륜이다.

각 시대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과 중보자와의 관계가 하나님과 중보자에게 속한 백성과의 관계를 결정한다.

중보자가 종이라면 그에게 속한 백성은 종된 백성이다.

중보자가 아들이라면 그에게 속한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다.

이처럼 중보자와 그에게 속한 백성은 하나이다.(고전10:2)

따라서 백성들은 중보자가 본 영광을 누린다.

백성들은 중보자가 아는 이상의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백성들은 중보자의 모든 것에 참여하여 누린다.(요17:21-23)

이처럼 하나님의 사역 방식은 항상 중보자를 통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다.

그러나 세상 창조는 하나님 사역의 종착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세상을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함을 목표로 경영하신다.

이러한 옛 경륜의 완성자가 모세이다.

이는 모세를 통해서 나라가 설립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후손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나라로 설립되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서 설립된 나라는 율법으로 경영되는 율법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창세 이후로 시행된 옛 경륜은 다윗왕국에서 열매를 맺는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이신다.(출4:1-9)

모세는 자신이 본 여호와의 영광을 백성에게 증거한다.(출4:28-31)

모세는 바로와 그의 형제 아론과 미리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 같다.(출4:15-16)

따라서 모세를 믿고 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그를 보내신 여호와께 순종하는 일이다.(출19:9, 요5:46-47)

모세를 믿지 아니하고 그의 말을 거역하면 여호와를 거역하는 범죄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세우신 중보자가 모세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대리통치자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그의 영으로 모세와 함께 하신다.

따라서 모세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함께 계신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 모세가 사역적인 면에서 일치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 방식에서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유비적으로 나타난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형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으로 모세와 함께 하셨다.

따라서 모세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면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일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고 모세에게 임한 영도 거기에 계시며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 모세가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셨다.

모세와 여호와의 영,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거하신 것이다.(출6:2-8)

그런데 모세에게 임한 영은 어떤 영인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따라 역사하는 성령이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죄의 가리움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종의 영으로 역사하신다.

종의 영은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으로 종과 어린아이처럼 행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가리켜서

율법의 통치 아래에서는 두려워하는 종의 영으로,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는 자유하는 아들의 영으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한다.(갈4:1-7)

종의 영은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성령이다.

이는 옛 언약 아래에 있는 옛 백성에게 주어진 성령이다.(롬8:15, 갈4:1-7)

이처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종의 영으로 옛 백성과 역사를 동행하셨다.

중보자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그의 영으로 함께 하셨다.

중보자가 어디를 가든지, 중보자가 어떤 말과 어떤 사역을 행하든지,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중보자와 함께 하셨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 사역 방식에 의거한 사역적인 삼위일체를 말한다.

 

하나님 경륜의 두 축은 율법과 복음이다.

율법과 복음은 신구약 언약에 의거한 하나님의 두 경륜이다.

이는 종 모세를 통한 옛 경륜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경륜이다.

모세는 율법을 선포하여 율법의 나라를 설립하였다.(출24:1-1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선포하여 종말의 천국을 설립하신다.(마5:-7: )

왜 모세가 율법을 선포하는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종과 어린아이로서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시는가?

제자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함이다.

제자들이 아들된 백성으로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율법의 통치시대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 종결된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시기 때문이다.(갈4:4-5)

율법 아래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모세의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로 세우신다는 말이다.

구약성경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멍에에서 해방시키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에서 모세율법(구약성경)은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이 된다.

이는 율법의 통치질서는 종결되고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질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증거를 할 때 항상 모세율법과 대비한다.

이는 율법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도록 권면하기 위함이다.

구약성경이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라고 권면하기 위함이다.(히9:1-10:18)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

곧 종말의 천국에 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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