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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 (빌 3:7-12)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성경책 선물]

작성자성령충만땅에천국|작성시간23.03.23|조회수63 목록 댓글 0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 (빌 3:7-12)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성경책 선물]

 

성경본문[개역개정]

6.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최근에 미국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으로 1위에 뽑혔던 오프라 윈프리가 프랑스 파리에서 친구에게 선물을 해주려고 고급 백화점의 가방 매장에 들어갔는데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그 직원들이 받아주지 않아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에는 매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쫓겨났다고 합니다. 물론 영업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만 그래도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래서 미국의 언론들이 혹 인종차별 아니냐며 들썩들썩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미국에 돌아와서 헤르메스라는 가방회사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두 번 다시는 그 매장에 가지 않겠다고 호통까지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오프라 윈프리도 못 알아봤냐고 했더니, 그 직원들 하는 말이 그 여자가 화장을 안 해서 못 알아봤다고 했답니다.

제가 예전에 서울에 있었을 때에 새벽 기도 때 어느 집사님이 인사를 하고 지나치셨는데 그 얼굴을 전혀 못 알아봤습니다. 나중에 누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얼굴과 그 얼굴은 전혀 달랐거든요. 도저히 연결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화장이 아니라 변장이지요. 집 밖에서 일할 때는 화장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여러분, 집에 돌아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화장을 지워야 합니다. 그래야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죠.

어찌 그것만 그렇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돈이요, 명예요, 학벌이요, 지위요, 힘이요 하는 것은 모두 잠깐 얼굴에 덮어 쓰는 화장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화장을 다 지우고 맨 얼굴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마다 화장을 지운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맨 얼굴을 원하십니다. 그래야 우리의 진실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실 수 있기 때문이요.

오늘 읽은 본문에 사도 바울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화려한 화장이 있었어요.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고 아는 것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도 스스로도 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공부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라는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학자 밑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학문을 들어서 예수가 누구이신지 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성경에 펼쳐 놓으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유대를 떠나서 외국에 나가 살았던 사람이에요. 해외동포예요. 디아스포라예요. 그래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이미 유대인 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그 당시에 누구와 비교해도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의 화장이었습니다.

바울의 내면에는 내적인 불안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것을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또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그 현장에 증인으로 나선 것을 보면 그에게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남에 대한 분노가 잇다는 것은 자기 자아를 향한 분노가 그만큼 똑같이 있다는 것이지요. 남에게 벌컥벌컥 성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 용납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내적인 불안과 공허함과 분노를 숨기기 위해서 과장된 열심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고 나아가서는 저 다른 도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잡을 나갔던 것입니다. 부지런히 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만 그 걸음은 흔들리는 걸음이었어요.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라고 하는 그 물음의 해답을 얻지 못한 걸음이었어요.

제 어린 기억에 의하면 생전에 저희 아버님이 가끔은 자다 말고 속이 쓰려 아파서 고통스러워하셨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위가 아픈가 보다, 먹은 게 잘못 되었나 보다 생각하고는 위장약을 드셨습니다. 그때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손주를 보고 나서야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큰 병원에 가서 체크해 본 결과 담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했습니다. 그 수술 이후에는 두 번 다시 배가 아픈 일이 없었습니다. 정확하게 진단을 해야 치료를 하든지 때로는 수술이 필요하면 한 때 아픔이 있지만 수술을 해서라도 깨끗하게 고쳐야 다시는 그 고통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문제를 그저 오늘 덮어 쓴 이 돈과 지위와 명예와 하루하루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이 문제에 매몰되어서 다 잊어버리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평생 알지 못하는 병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바울을 만나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을 통해 바울은 자기를 발견합니다. 이제까지 자기가 완벽하게 지켰다고 생각했던 율법은 알고 보니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하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울이에요. 더러운 것이 묻은 것을 가르쳐주긴 하지만 지워주지는 못해요.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고 하는 것을 뼈저리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의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메섹 사건을 겪은 직후에 바울은 다메섹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하기를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다. 예수님 그분은 영적인 문제와 삶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놀라운 고백이에요.

제가 대학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떠나는 마지막 날 저의 아버님께서 터미널에서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작은 포켓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당신께서 예전에 6.25 전쟁 때 항상 가슴에 성경책을 넣고 다녔던 것과 같이 너도 군 생활하는 동안 말씀으로 잘 견디고 이기고 돌아오라며 성경책을 주셨습니다. 이 포켓 성경책은 글자가 작아서 읽기가 좀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특기교육을 받을 때에는 대구에 있었는데요, 성경책이 아쉬워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성경을 읽고 싶은데 큰 성경책을 저한테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부대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좀 독특했어요. 시편 23편, 마태복음 5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10개의 장을 정해서 그 속에 있는 구절을 많이 외우되, 참가자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한 절씩 릴레이 식으로 성경구절을 외우는 방식이었습니다. 어느 부분을 외우다가 틀리면 그대로 탈락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정확하게 외워야 했습니다. 20명이 참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1등상이 뭐였냐 하면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성경책이 제 것 아닙니까? 잘 외우든지 못 외우든지 제가 성경책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는데 제게 성경을 주십시오.’ 성경 암송대회에서 한번씩 외우고 지나갈 때마다 댓 명씩 쭉쭉 떨어져나갔습니다. 많이는 외웠는지 몰라도 틀리니까. 드디어 2명이 남았습니다. 제가 외운 마지막 구절을 제가 말했습니다. 더 이상 외운 것이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었습니다. 그랬는데 옆에 사람은 많이 외웠더라구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 차례에 그만 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선물이 아니에요. 그것은 기도의 응답이에요. 그래서 제대하는 날까지 그 성경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 시편 한 편을 노트에다가 옮겨 적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성경과 더불어 그 당시에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집을 함께 읽었어요. 성경과 설교집을 함께 읽으니까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설교집을 읽으면서 궁금한 말씀을 또 찾아볼 수 있었어요. 얼마나 유익한지 몰라요. 사실 성경이 쉽지 않거든요. 물론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성경이 꿀같이 단 말씀이 되겠지요. 그러나 설교말씀을 꼭 들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무엇이 핵심인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한마음의 은혜가 또 나왔습니다.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만 저 자신도 나중에 활자화된 것을 다시 읽어 봅니다. 그런데 말은 참 쏜살같이 빨라서 휙 하고 지나가요. 잠깐 딴 생각을 하면 다 잊어버려요. 또 정신차리고 들어도 그 맥을 다 알기가 어려워요. 설교자는 그것을 한 주일 내내 생각하는 거거든요. 여러분 그저 한 25분 잠깐 귀를 빌려주시는 것이니까 다 이해를 할 수는 없지요. 집중해서 들어도 알기 쉽지 않은 것이 설교라면 활자로 된 책은 아주 유익한 것이죠.

그렇게 성경을 읽고 설교도 읽는 중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예화 한 편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사단 마귀가 오늘도 다시 나를 공격해 옵니다. 소총을 들고 저 아래서 올라옵니다. 나를 저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염려 없습니다. 나는 전망이 좋은 고지에 있는 벙커 안에 들어가서 소총이 아니라 M16 기관총을 장착하고 저들을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 그의 부대는 우리가 무전기로 연락해서 벌써 항공모함에서 공격을 해서 본대는 다 무너졌습니다. 이제 몇몇 기어 올라와 봐야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방아쇠만 당기면 끝입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은 바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단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똑똑해서 얻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돈이 많아서 얻은 게 아닙니다. 잘 생겨서 얻은 게 아닙니다.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얻은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 죄에 빠져 방황하며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주신 사건입니다. 아~앙 하고 아기가 태어났어요. 아~앙 하고 살았다고 웁니다. 엄마 아빠의 이름도 모르지만 이미 그에게 엄마 아빠를 통하여 온전한 생명이 주어진 것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 손 밖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선물이에요. 그러니 이제 그 선물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워서 선물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내 인생의 죄와 저주와 심판과 사망과 사단의 권세가 다 무너졌다는 것을 한마디로 묶어서 구원받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라고 그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제가 그 말씀을 알고 나서 획기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어요. 그 말씀을 알고 나서 웃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모태신앙인이요 교회를 늘 다녔지만, 매년 3월에 학교에 내는 사진이 한 두 장씩 남아 있어서 앨범에다 정리를 해두었는데, 그 사진을 보면 웃는 얼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말씀을 알고 난 후 제가 막사 앞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멋있게 웃고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복음을 알고 나서 제 인생에 웃음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의 힘입니다.

48분마다 한 명씩 자살하는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입니다. 너무나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 받기를 원합니다. 드라마가 이것을 놓칠 리가 없지요. 제가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불멸의 이순신>과 또 하나는 <내 이름은 김삼순>입니다. 이 두 개의 드라마를 비교하면 클래식과 유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게감이 다르지요. 자, 이순신을 보면 주위가 온통 적이에요. 왜놈도 적이지만, 원균도 적이고 심지어는 임금도 적이에요. 그리고 우리나라를 돕겠다고 하는 명나라 군대도 사실 알고 보면 적과 내통하는 놈들이에요. 사방이 적들이에요. 그 속에서 기필코 전쟁을 치러야 해요. 이순신의 일기를 보면 단 한번의 전투라도 패하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비장해요. ‘필생즉사’ (必生則死) 살려고 하면 죽고, ‘필사즉생’ (必死則生) 죽겠다고 하면 살게 됩니다. 임금이 보낸 사신이 이순신을 잡아가려 하다가 모든 사정을 알고 자기 목숨을 걸고 이순신 편에 섭니다. 그래서 임금에게 간청합니다. 임금이 말합니다. 만약에 이순신이 한번 진다면 너와 네 가족이 모두 멸족 당할 줄을 알아라. 그러니 그 동생이 말합니다. ‘아이구, 형님 이렇게 어마어마한 벌을 자초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말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네. 이순신은 기필코 이기겠지. 문제는 이순신이 이긴 채로 전쟁이 끝난 다음이 문제이네.’ 역적으로 몰려 죽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 전투에서 그를 불러 가신 것이겠지요. 그래서 깨끗하게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죽음에 직면해서도 굴하지 않고 자기를 지키며 나아가는 그런 모습은 정말 영웅입니다. IMF 위기 이후 오늘 이 나라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는 인물이지요.

그러나 너무 버겁거든요. 이것은 단 한번의 오차와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인물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내 이름은 김삼순>을 더 좋아하는 것이지요. 거기다가 이 여자는 학벌도 없고 돈도 없고 미모도 없는 30세의 노처녀예요. 이 드라마의 특징은 악역이 없어요. 그저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좌충우돌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이 여자의 무기는 뭐냐? 배짱이에요. 그 여자가 말합니다. ‘너희들이 빵을 알어? 빵에 내 인생이 녹아 있다.’ 그리고 빵으로 승부를 하는 것입니다. 매 장면마다 얼마나 웃음이 나는지. 웃음을 잃은 사회에 웃음을 주는 것이지요. 그 이순신의 비장미와 김삼순을 잘 섞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이 빌립보서는 기쁨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4장 4절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그리고 4장 6절에서 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지각이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키시리라.’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감옥에 들어앉아서도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격려할 수 있는 기쁨을 갖는 이런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빌라의 테레사라고 하는 수녀가 있습니다. 이분은 종교개혁시대에 수도원 개혁을 한 인물이죠. 개혁자예요. 그런데 어느 날 수도원 부엌에서 닭을 잡아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어요. 어떤 젊은 수녀가 부엌에 들어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니, 저럴 수가’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었죠. 그랬더니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뭘 놀래나? 나는 닭고기 먹을 땐 닭고기 먹고, 기도할 땐 기도한다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신앙이에요. 여러분, 아내입니까? 그러면 남편을 사랑하십시오. 그것도 내 능력으로는 사랑하지 못하거든요. 주님이 주신 그 은혜, 그 십자가 사랑으로 내 마음이 뜨거워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남편입니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입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그것이 가능합니다. 평범한 일상, 그러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계시는 일상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생활이에요.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왜? 그래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온전히 섬기고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날마다 고백하고 나는 죽고 주님의 지혜, 주님의 은혜, 주님의 말씀만을 따라가겠다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생명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남편으로, 아내로, 부모로, 자녀로 살게 하시고, 직장인으로, 기업인으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내게 맡겨주신 이 일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은혜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이 일상을 아름다운 날들로 가꾸어 가는 그러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https://soilsky.tistory.com/210  page 20에 등재되어 있음

ID: [성령충만땅에천국]으로 운영했던 블로그 카테고리 [장영수 목사 설교집]에서 인용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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