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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향기 속에 드린 기도-수필

작성자성령충만땅에천국|작성시간23.03.28|조회수37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향기 속에 드린 기도

 

나는 내 둘째 동생 형재의 아내인 고정자 장로를 잘 모른다. 그녀는 너무 조용한 성품이어서 별로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그저 미소할 뿐이며 슬플 때도 그 슬픔을 마음에 숨기고 참아서 알아내기가 힘든 성품이었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혈액암을 앓고 있었는데 좀 상태가 좋은 때 대전의 내 아내를 만나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우리는 참 기뻤다. 그때 아내는 거동이 불편해서 외부 출입을 못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함께 올 수 있던 서울의 동서들이나 시누이들은 각각 자기들의 일이 있어 함께 올 수 있는 날을 차일피일 미루다 오지 못하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식욕이 없어 음식을 잘 들지 못한다 해서 동치미, 나라스케(울외 장아찌), 굴비 등 혹 도움이 될까 해서 보냈는데 난청이 심해선지 전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파가 심하게 몰아붙인 재림절 넷째 주간에 코로나에 감염까지 되었는데 하루는 복통이 심해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병원에서는 장 파열로 수술해야 한다고 수술 동의서를 받아갔다. 그런데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뜬 것이다. 가족은 병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수술 전 잠깐 화상 통화만 했을 뿐, 간호사의 전언만 듣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남겨 두고 이렇게 세상을 떴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고인도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프고 괴롭다고 외부에 충분히 외쳤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인은 평소처럼 희로애락을 가슴에 묻고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안타깝다.

남편 형재는 육군 사관학교 16기생이다. 그가 1956년 육사를 들어갈 무렵에도 분명 연좌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형 영재가 계관 시인으로 이북에 살아 있다는 것이 일찍 알려졌었다면 그가 어떻게 육사에 들어가게 되었겠는가? 그때 육사는 특차로 일반 대학과 다르게 전국에서 신입생을 미리 선발하였다. 그는 수석으로 합격했고 학교가 시작될 때까지 스스로 몸이 허약하다고 생각해서 매일 4km를 팬티만 입고 뛰었고, 자기는 반드시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장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군이 된 때 휘호를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글씨를 써 주어야 한다고 붓글씨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던 육사 지망생이었다.

그가 3학년이었을 때 18기 후배가 들어왔는데 그들이 호된 훈련을 받다가 2명의 사관생도(, )가 일사병으로 쓰러져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때 고익 생도의 구대장이었던 김석 선배가 영결식 때 조사를 읽게 되었는데 그 조사를 오형재 학생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다. 영결식 때 이원 학생의 부모는 대성통곡을 했는데 고익 학생의 부모는 하나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식이 끝난 뒤 부부가 눈시울을 적신 것을 보고 오형재 학생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조사를 준비하면서 고익 학생의 일기장을 뒤지며 기독교인으로서의 그의 삶에 감동했던 동생은 영결식 후 고익 학생의 집을 방문했는데 그의 부친은 효제국민학교 교사였으며 그는 두 여동생과 두 남동생을 두었는데 큰 여동생은 숙명여고 2학년이었다. 그녀가 후에 동생의 아내가 된, 고정자 장로였다.

동생은 육사를 졸업한 뒤 전방의 포병대대에 근무하다가 육사 교수요원으로 뽑혀 장학금으로 1962녀부터 2년간 미국의 콜로라도대학(U. of Colorado)에서 수학으로 석사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동안 부인과는 열렬한 사랑의 서신을 141통이나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숙명여대에서 이대 사범대에 진학하여 졸업반이 된 고정자 장로는 귀국 후 육사 교관이 된 동생과 19641121일 결혼하였다. 양가에서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결혼 2년 뒤 196612월 동생은 서울, 청진동 소재 방첩대의 방첩 과장으로 있던 노태우(육사 11) 소령으로부터 출두명령을 받았다. 방첩대에 들어가자 노 소령은 그가 육사에 입학원서를 낼 때 제출했던 신원조회서를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원조회에 가족관계란을 지적했다. “거기 뭔가 빠뜨린 것 없어? 형 오영재의 이름이 없잖아?” 동생은 기절할 뻔했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 죄를 고백했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있어. 네 형이 이북에 시인으로 살아 있다는 거야.” 동생은 너무 놀라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 소령은 소리 내어 울라고 했다고 한다. 노 소령은 신원조회 건을 더는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귀대한 뒤 다시 윤필용(육사 8) 방첩대장이 지프를 보내어 불려갔다. 너무 무섭고 높은 사람이기에 떨릴 줄만 알았더니 오히려 편안했다고 동생은 말했다. 커피를 앞에 두고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했다. 대장은 형이 간첩으로 내려오면 동생을 만나 군 기밀 등을 알아가려고 할 터이니 군에 남아 있으려면 방첩대에 와서 근무하든지 아니면 군복을 벗으라라고 말했다. 그는 제대도 거부하고 군에 남아 방첩대에 근무하는 것도 거절했다. 만일 접선이 되는 경우는 반드시 신고하되 본인의 근무 상태를 연 4회 거주지 경찰서의 치안국에 보고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결국, 그는 소령까지 진급하고 진급이 멈춘 후 계급정년 8년으로 1973년 전역하였다.

정년 제대 후는 동생은 하나님께서 공부하라고 기회를 준 거로 알고 1973년부터 1975년까지 한국과학원(KAIST) 1기생으로 입학하여 국가 장학금으로 산업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KAIST에 다니고 있는 동안 장인은 신학을 하고 장석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다가 현 신장위교회를 1974년에 개척했다. 동생은 고 목사를 돕다가 1982년에 10월 그 교회 초대 장로가 되고 이듬해 8월에는 고 목사를 위임 목사로 추대했는데 2년 뒤에 고 목사는 소천하셨다. 고정자 장로는 아버지의 신생 교회를 돕느라, 남편 학교공부 뒷바라지에 행복하면서도 힘든 나날을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결혼 생활 58년에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한 번이라도 떠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큰딸은 서울대 석사를 마쳤는데도 장로교신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남자와 결혼을 시켜 중국 선교사로 내보내고, 장남은 사회 복지사로 있으면서 기아대책 본부의 직원으로 세계 각국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아내와 살고 있었다. 나는 속인이어서인지 딸과 아들이 당당한 직장을 가지고 부모를 도우며 일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까울 뿐이었다. 그러나 제수 고정자 장로는 자녀들이 후원금을 받아가며 남을 돕는 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남편은 1978년 서울 시립대학에 취직했으나 이듬해부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과 학위과정을 9년이나 하고 있었으니 아내가 어찌 기쁘기만 했겠는가? 그때 학위 가운을 입고 서울대 교정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참 행복해 보였는데 58년의 결혼 생활을 이 행복으로 다 보상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1223일 혹한의 추위라고 말하는 날씨에 제수인 고정자 장로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갔다. 코로나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문상객이 많지 않은 이때 장례식장마저 스산하면 세상을 떠난 고인이 얼마나 허전할까 걱정하며 갔었다. 그런데 장례식장 6호실은 복도에 많은 화환이 즐비했고 문상객도 많았다. 맏아들이 다니던 밀알 교회에서 많은 교인이 위로 예배에 참석해서 식당도 붐비었으며 아버지가 개척한 신장위교회 교인들이 북적대서 내가 걱정하던 쓸쓸함이 전혀 없었다.

향수 가게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향기가 몸에 배는 것처럼 제수인 고정자 장로의 장례식장은 주를 따르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풍기는 사랑의 향기가 가득 넘치고 있었다. 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배어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으로 좇아 나온 추한 냄새를 풍기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는 외롭게 떠난 것이 아니며 주와 함께 먹고 마시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무거움 짐을 내려놓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소서.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천국에서 편히 쉬소서. 가정 걱정, 교회 걱정, 코로나 걱정, 나라 걱정, 세계나 지구 걱정 다 잊으시고 해도 지지 않는 천국에서 주와 함께 편히 쉬소서.”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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