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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13)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27|조회수30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13)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 빌 2:12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사랑으로 하라고 권면하였는데, 결론적으로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는 이 마음이란 구체적으로 겸손과 순종 및 사랑하는 것임을 확인받았습니다.

사도는 이제 빌립보 성도들에게 성화(聖化, Sanctification)의 삶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성화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바울은 이 문제를 제시함에 있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ἀγαπητοί μου)라고 시작을 하는데, 이 말속에는 무엇보다 바울의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랑과 친밀함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큰 소리가 아닌 조용히 그리고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그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μὴ ὡς ἐν τῇ παρουσίᾳ μου μόνον, ἀλλὰ νῦν πολλῷ μᾶλλον ἐν τῇ ἀπουσίᾳ μου μᾶλλον ἐν τῇ ἀπουσίᾳ μου)라고 시작을 합니다. 여기서 “나 있을 때”(ἐν τῇ παρουσίᾳ μου)란 바울이 빌립보에서 교회를 시작 할 때를 회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때 참으로 좋았지. 그런데 이제 나는 로마에 와 있는 처지이며, 또한 감금 상태에 있기에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가 부탁을 하노니 잘 들어달라는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부탁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다른 말로 표현을 하면 “성화의 삶을 살라”고 주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항상 복종하고”(καθὼς πάντοτε ὑπηκούσατε)라는 말은 이전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친 복음을 따라 항상 순종하며 살라는 명령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에의 순종은 그 때만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하며, 이러한 면에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μετὰ φόβου καὶ τρόμου τὴν ἑαυτῶν σωτηρίαν κατεργάζεσθε)라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냇물을 건널 때 거저 누군가에 의하여 돌다리가 놓아져 있다고 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무심코 딛고 건널 것이 아니라 두드려 보고 흔들리지 않는 지 확인을 한 후 딛고 건너라라는 의미입니다.

[2]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는 이미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시인을 하고 그를 믿고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로마서 8장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8:28-30).

그렇습니다. 미리 아시고 구원받을 자를 정하시고, 때가 되어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에(예정과 선택→부르심→의롭다하심=칭의稱義 Justification→성도의 견인堅忍)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사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한 것은 우리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에 조명(照明)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의로운 경외와 존경이 수반되어야 합니다(잠 1:7, 9:10; 사 66:1,2 참조). 이를 신학적으로 “성화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나이다”(시 119:105)고 고백하며, 그 고백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롬 13:1-2).

[3]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찰스 M. 쉘돈(Charles M. Sheldon, 1857~1946)목사가 쓴 『In his steps』란 원명의 신앙소설입니다. 1896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수천만권이 팔린 책으로, 한국에서도 종교분야에서 계속하여 베스트셀러 서열에 오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의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하는 내용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저자인 쉘돈 목사는 청년 목사 시절에 실직한 인쇄공으로 가장하여 자신이 목회하는 도시를 헤맨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크리스천들의 냉대와 무관심에 큰 충격을 받고 또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낭독하여 주려는 의도에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이 발행된 이래로 당대에 베스트셀러로 되었고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읽혀지며 수많은 독자들의 삶에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저가 이 책을 말씀 드리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는 방식”으로 훌륭한 안내책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다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순간순간 무엇을 결정할 때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행하는 것이, 바울사도가 빌립보교인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너희 구원을 이루라”(ἑαυτῶν σωτηρίαν κατεργάζεσθε)라는 말이 우리의 선한 행위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신자가 성화과정에서 순종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셨으니, 우리는 더욱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삶을 살아내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연중론(連重論)도 아니며, 그렇다고 유보적 칭의론(留保的稱義論)에 근거한 설명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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