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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16)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30|조회수36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16)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2:17-18)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1] 빌 2:17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물론 두렵고 떨림으로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도록 권면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17절에서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먼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 대하여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ἐπὶ τῇ θυσίᾳ καὶ λειτουργίᾳ τῆς πίστεως ὑμῶν)라는 말을 말합니다. 여기 “믿음의 제물”(θυσίᾳ τῆς πίστεως)이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믿음을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과 같은 헌신(sacrifice)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는 피의 제사가 필요하였고, 따라서 소나 양은 물론 그 형편에 따라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던 바와 같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흠 없는 자녀로서의 삶, 그리고 빛과 생명의 복음을 드러내는 삶 그 자체가 바로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제물에 이어 “믿음의 섬김”(λειτουργίᾳ τῆς πίστεως)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섬김은 이전 성경은 “봉사”(service)라고 번역한 바와 같이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믿음의 제물과 섬김”이라는 말 자체는 결국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헌신된 삶을 이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을 말 하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희생적이고 신실한 섬김 “위에”(ἐπὶ)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εἰ καὶ σπένδομαι)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제”(σπένδομαι, to pour out as a drink offering, 尊祭 혹은 灌祭)라는 말은 고대의 동물 제사를 마무리 하는 절차를 가리킵니다(. 제사를 드리는 자가 태워지는 동물 앞에 또는 그 위에 포도주를 부으면 그 포도주는 수증기로 증발하게 되는데, 그 증기는 제사를 드리는 그 신에게 제물이 올라가는 것을 상징하였습니다(출 29:38-41; 왕하 16:13; 렘 7:18; 호 9:4 참조). 바울은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빌립보 교회의 섬김 위에 자신을 전제로 드린다고 한 것은 결국 그가 전적으로 빌립보 교회를 향한 헌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좀 더 넓게 보면 그의 선교 사역 그 자체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미 우리가 1:20-21에서 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며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했던 그의 말을 생각해 보면 지금 바울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빌 2:18 바울은 여기 자신을 “전제로 드릴지라도”라는 말을 할 때 그는 스스로 순교의 날이 다가옴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7절 후반 절에서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χαίρω καὶ συνχαίρω πᾶσιν ὑμῖν)라고 합니다. 사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적을 때가 AD 62년경이었으며, AD 64년에는 네로황제가 정신 이상으로 로마시내에 불을 지르고 난 후에 방화범이 기독교인이라면서 기독교인을 죽이는 핍박이 시작되었고 그는 다시 감금되어 AD 67 혹은 68년경에 목이 잘려 순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 자신만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지금의 처지를 생각하고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앞에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당부하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진 바울의 빌립보 교회를 향한 당부는, 이제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비록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직면하며 자신을 전제로 드린다 할지라도 “기뻐하고 또한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18절은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τὸ δὲ αὐτὸ καὶ ὑμεῖς χαίρετε καὶ συνχαίρετέ μοι)는 당부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제목으로 “감사와 기쁨의 복음”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과연 빌립보서가 기쁨의 복음임을, 또한 참된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도 확인케 됩니다. 우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처럼 상황을 뛰어넘는 감사,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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