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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0)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04|조회수30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0)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4-6)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1] 빌 3:4-5 앞서 언급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하면,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면서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일을 경계하고, 변하지 않고 동일한 진리의 교훈을 따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사도는 “개들”, “행악 하는 자들” 및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육체를 자랑한다면 자신도 부득불 자랑하겠지만, 이들보다 더 신뢰할만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회심하기 전, 흔히 세상적으로 말하면 그의 스펙은 어떠했을까요?

바울사도 자신은 정통 유대인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περιτομῇ ὀκταήμερος) 베냐민지파에(φυλῆς Βενιαμίν) 히브인 중의 히브리인이며(Ἑβραῖος ἐξ Ἑβραίων) 율법으로는 최고의 열심과 지식을 지니고 있는 바리새인(Φαρισαῖος)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규정된 날짜에 할례를 받았으며(창 17:12, 21:4; 레 12:3), 혈통적으로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순수한 직계후손이며, 그는 베냐민지파로서 다른 지파가 유대 나라에서 반역을 할 때에도 이 지파는 충성하였다는 점, 자신의 조상 중에는 한 사람도 이방인이 없는 순수한 히브리인이기 때문에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점, 그리고 그는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엄격한 바리새인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자랑하려면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빌 3:6 행 22:3-5 그리고 또한 그의 삶을 보더라도 3: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는”(κατὰ ζῆλος, διώκων τὴν ἐκκλησίαν) 자였으며, 사실상 철저히 율법에 따라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지 않아 “흠이 없는 자”(ἄμεμπτος)라는 것을 자랑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따라 그의 열심을 좀 더 살피면, 행 22:3에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γεγεννημένος, 태어났고) 이 성에서 자라(ἀνατεθραμμένος)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πεπαιδευμένος)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울 자신은 출생은 다소 출생이지만 그가 자란 곳은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최고의 존경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가말리엘 율법사의 문하생으로 그 안에서 모세의 율법에 대한 엄한 교육을 받았으며, 오늘 여기 모인 당신들이 유대의 율법과 하나님에 열심인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열심히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젊고 혈기 왕성한 그 시절에 행 22:4에서는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라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 도”(ταύτην τὴν Ὁδὸν)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따라 살려고 하는 자들을 핍박을 하였는데, 그 정도는 남녀를 불문하고 그들을 결박하여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인 사람은 누굴까요? 우리는 바울의 이 말 속에서 그가 죽인 사람이 바로 스데반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행 8:1에서는 “사울이 그(스데반)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라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 22:5에 따르면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μαρτυρεῖ)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라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기 위하여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신을 특사로 공인하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들고 그는 의기양양하게 혈기왕성하게 다메섹으로 가서 믿음의 형제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와 형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유대교를 사랑했고, 유대교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미워했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세상적으로 보면 바울의 스펙은 놀라울 정도이며, 감히 그의 스펙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 존경을 받는 유대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그의 조상들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유대교에 대하여 열심이 특심한 자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자신을 충분히 자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개들”,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일”을 통해 자랑을 하고 있는 유대주의 무리들을 향하여 “나보다 더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자신의 스펙을 늘어놓은 것은,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는 것을…. 혹, 우리의 헛된 열심과 자랑은 없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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