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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2)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07|조회수29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2)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0-16)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 빌 3:10-11 바울은 자신의 과거의 화려한 이력들은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고 비우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함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음을 앞서 살핀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10절 이하에서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을 개관하면서,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결과가 성취되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겸손히 그것을 위하여 지금도 분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빌립보교회를 향한 그의 숨김이 없는 솔직한 고백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10절에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한다”(τοῦ γνῶναι αὐτὸν καὶ τὴν δύναμιν τῆς ἀναστάσεως αὐτοῦ, καὶ [τὴν] κοινωνίαν [τῶν] παθημάτων αὐτοῦ)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그 권능을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주님처럼 직접 십자가를 지고 체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당하는 여러 고난을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묵묵히 지고 갈 것임을 다짐합니다. 특히 여기서 “알고자 하여”(γνῶναι)라는 의미는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을 하여 그 상대방을 더욱 깊이 체험을 통하여 알아가는 것처럼 주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은 “부활의 권능”(δύναμιν τῆς ἀναστάσεως)과 “그 고난에 참여함”(κοινωνίαν [τῶν] παθημάτων αὐτοῦ) 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권능”(δύναμιν)이란 다이너마이트(dunamis)와 같은 힘을 말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역시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또한 이러한 부활에 이르고자 한다고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죽음의 자리에서 자신을 일으키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권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에 대하여 바울이 자기 생애 동안에 주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소망에 따른 휴거를 말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ἐξανάστασιν τὴν ἐκ νεκρῶν)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하여 믿는 자들만이 부활하는 첫째 부활을 의미한다고 봄이 옳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고난에 참여함”(κοινωνίαν [τῶν] παθημάτων αὐτοῦ)이란 “주님은 하나님으로, 신이신 분이기 때문에 고난은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은 참 사람으로 사람이 당하는 그 어떤 고난보다도 더 힘든 것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위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통해 깊은 연합을 이루게 됨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συμμορφιζόμενος τῷ θανάτῳ αὐτοῦ) 주님과의 연합을 통하여 죽음과 부활에 관한 변하지 않는 소망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빌 3:12-14 바울사도의 경우 지금 로마에서 감금 중에 있으며, 어쩜 이곳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앞장에서는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후 자신도 빌립보교회가 가고자 한다고 말은 분명히 하였지만, 자신의 현 상황을 보면 그리 석방 자체가 녹록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성화를 말하며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붙어있으라고 말을 하지만, 그 역시 좀 더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Οὐχ ὅτι ἤδη ἔλαβον, ἢ ἤδη τετελείωμαι) 합니다. 즉, 자신은 지금 모든 것을 얻은 것도 아니며 온전히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었다고 말하기보다는 지금도 역시 그리스도 예수께 전적으로 잡혀서 살기를 원하며, 더욱 더 그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미래에 어떤 역경이 휩쓸고 달려든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겠다는 자신의 다짐과 고백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διώκω δὲ, εἰ καὶ καταλάβω ἐφ’ ᾧ καὶ κατελήμφθην ὑπὸ Χριστοῦ Ἰησοῦ)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듯이 바울사도의 삶을 돌아보면, 다메섹에서의 회심 이후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 한분만을 위하여 살아왔다는 점은 그 자신은 물론 그 주위의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분명한 삶의 푯대를 가지고 살아왔으며, 자신의 달음박질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쉼 없이 달려왔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직 온전히 “잡은 줄로 여기지 않으며”(ἐμαυτὸν οὐ* λογίζομαι κατειληφέναι), 더욱 “상을 위하여”(εἰς τὸ βραβεῖον)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엡 4:13) “푯대를 향하여”(κατὰ σκοπὸν) 달려갈 것이며, 또한 자신과 같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역시 그렇게 달려갈 것을 자신의 삶을 들어서 간접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빌 3:15-16 그런데 바울사도는 이러한 경주를 함에 있어 영적으로 장성한 자로 자처하면서 온전히 이룬 자라는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지금도 역시 노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가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εἴ τι ἑτέρως φρονεῖτε, καὶ τοῦτο ὁ Θεὸς ὑμῖν ἀποκαλύψει)라고 한 것은 빌립보교회 내에 바울사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계시로 그들을 가르치실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현재 잘못 하는 것을 옳게 여겨 교만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가르침을 더욱 알아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잘 숙지하고 있다고 보면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πλὴν εἰς ὃ ἐφθάσαμεν, τῷ αὐτῷ στοιχεῖν, 어떤 사본에는 “같은 룰과 같은 마음” ⧼κανόνι, τὸ αὐτὸ φρονεῖν⧽이 첨가되어 있음/ KJV let us walk by the same rule, let us mind the same thing.) 함으로써, 지금 어디까지 달려왔든지 멈추지 말고 그 경주를 완주할 때까지 계속하라는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마라톤시합 중의 선수와 같이 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독수리 날개 치며 하늘로 오름과 같이 위로 또 위로 한 발짝 나아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엡 3:14) 간단(間斷)없는 경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 하리로다”(사 40:31). 우리 모두 마라톤을 하듯이 푯대를 향하여 바울처럼 잘 달려가는 경주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중간에서 멈춤 없이 끝까지 완주하시길…. 바울이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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