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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4)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09|조회수36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3)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1] 빌 4:1 바울사도는 3장에 이어 4장 1절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며 사모하는 형제들인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여기 “사모하는”(ἐπιπόθητοι)이란 표현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강한 아픔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사모하며, 그리워하고 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들을 두고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χαρὰ καὶ στέφανός μου)이라 하였는데, 빌립보 교회로 인한 바울의 기쁨은 우리가 여러 차례 언급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기 “면류관”(στέφανός)이란 경주에서 우승한 선수나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 연회장에서 친구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람된 삶을 산 결과로 주어지는 월계관을 말합니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빌립보 교회야말로 그 수고의 월계관이 아닐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 안에 서라”(στήκετε ἐν Κυρίῳ)고 합니다. 여기서 “서라”(στήκετε)는 말은 다소 명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초소를 지키는 군인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이렇게 주 안에서 “서라”고 할 때에, 이는 마치 초소의 군인들과 같이 한 눈 팔지 말고 성도로서의 당연히 본분을 따라 세상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백성으로서 “위에 것을 찾는” 성도의 삶을 “견고하게 서서”(stand firm) 살아가라는 명령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 3:1-4).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천국시민인 너희들은 “위에 것을 찾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역시 부탁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빌 4:2 바울사도는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Εὐοδίαν παρακαλῶ καὶ Συντύχην παρακαλῶ, τὸ αὐτὸ φρονεῖν ἐν Κυρίῳ)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빌립보교회 교인 중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여인이 한마음을 품지 않고 서로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아마 이들은 처음부터 자주장사 루디아와 빌립보교회를 열심히 섬겼던 여종들이었을 것 같습니다(행 16:13). 그렇다면 왜 다투었을까요? 교회 안에서는 열심을 내어 봉사하는 것은 좋으나, 너무 열심을 내다보면 지나친 경쟁심리가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서로간의 시기와 질투로 이어질 수 있는데, 아마 이러한 현상이 이들에게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빌 4:3 그리고 바울사도는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네게”(σέ, γνήσιε σύζυγε)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통하여 복음에 함께 힘쓰던 두 여인의 다툼을 잘 중재하여 처음과 같은 사랑과 헌신을 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합니다. 혹자(맥아더)는 그의 이름을 여기 “같이한”(σύζυγε)이라는 말이 사람의 이름인 Syzygos(수주고스)라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정확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글레멘드와 그 외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μετὰ καὶ Κλήμεντος καὶ τῶν λοιπῶν συνεργῶν μου)고 합니다. 이러한 헌신과 봉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노력과 시간과 물질 등이 없어지게 되는,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약한 자들을 잘 도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는 것만큼 값지고 귀중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바울은 이처럼 글레멘드와 그 외의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면서,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ὧν τὰ ὀνόματα ἐν βίβλῳ ζωῆς)라고 합니다. 여기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이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택하신 자들의 모든 이름을 이 책에 기록해두신 것으로, 그 책에 영원한 생명의 유업을 받을 자들을 밝혀 놓으신 것입니다(계 3:5; 단 12:1; 말 3:16, 17; 눅 10:20; 계 17:8, 20:12 참조). 따라서 여기에 이 기록된 자들을 도운다는 것은, 곧 한 피 받은 형제자매를 도우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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