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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5)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10|조회수34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5)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4:4-7)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 빌 4:4 바울사도는 여러 곳에서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특히 지금 바울사도의 상황은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죄수와 같은 몸으로 가택에 감금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ἐν Κυρίῳ) 그것도 한번이 아닌 “항상”(πάντοτε) 기뻐하라고 합니다. 특히 바울사도가 감금된 상태에 있음에도 하나님과 빌립보 성도들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처럼, 참으로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이 못 된다고 할지라고 너희들 역시 기뻐하라고 합니다. 성도들의 기쁨은 초월적인 것입니다. 기쁨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조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기뻐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상황을 초월한 기쁨을 주문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쁨입니다.

[2] 빌 4:5 바울사도는 기뻐하라고 한 뒤에 이어서, “너희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τὸ ἐπιεικὲς ὑμῶν γνωσθήτω πᾶσιν ἀνθρώποις)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용”(ἐπιεικὲς, 寬容)이란 ‘친절’ ‘참아줌’ ‘보아 넘김’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특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부한 이 관용은 종교적인 관용을 포함해서 윤리적인 관용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편이 낫습니다(고전 6: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관용은 참으로 행복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기쁨의 원인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께서 가까우시니라”(ὁ Κύριος ἐγγύς)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보면 주님의 재림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공간적으로 이해하면 주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그분의 임재 안으로 품으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와 같은 두 견해에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지만, 둘 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바울 시대의 엄혹한 상황과 달리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 글이 시간적이기보다는 공간적인 의미로 더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은 주님의 마음을 닮은 자들이기에 비록 박해를 당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온유와 관대함을 알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칫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독선과 아집을 일삼지 않도록 우리를 경계하는 것으로 듣고자 합니다.

[3] 빌 4:6-7 바울은 기뻐하고 “염려하지 말라”(Μηδὲν μεριμνᾶτε)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은 바로 6절 이하에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와 간구(προσευχῇ καὶ τῇ δεήσει)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동시에 의무이며, 인생의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인 것입니다(살전 5:17). 여기서 말하는 “기도”(προσευχῇ)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음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라면, “간구”(δεήσει)는 일정한 종목을 들어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 탄원, 애원 또는 간청 하는(supplication)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와 간구에는 반드시 감사가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감사함으로(μετὰ εὐχαριστίας) 아뢰라”라고 합니다. 왜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할까요? (1)감사는 기도의 동기가 선함을 입증해 주며 동시에 더 큰 축복을 받게 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무엇보다 소중하며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감사한다는 것은 이미 얻은 것에 대한 답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는 의심이 먼저 앞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들으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임을 염려하지 말고 확신하는 가운데 아뢰는 것이기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진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듣겠다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욕과 욕심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면 반드시 하나님과 교통에 대한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게 될 것입니다”(καὶ ἡ εἰρήνη τοῦ Θεοῦ ἡ ὑπερέχουσα πάντα νοῦν φρουρήσει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καὶ τὰ νοήματα ὑμῶν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기도가 나의 정욕과 욕심을 위한 것이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생각을 고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를 동하여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평강(히브리어로는 샬롬)은 기도의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로, 하나님과의 화해, 그의 은총에의 참여, 그와의 연합 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 확연히 구별되는데,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며 불완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며 완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ὑπερέχουσα πάντα νοῦν) 분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이해를 초월해서 오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φρουρήσει)고 합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군사용어로 “보초를 서서 방어 혹은 수비한다”(will guard)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킴을 내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ἡ εἰρήνη τοῦ Θεοῦ)이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평강이 주어가 되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 즉 감정과 사고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결과로 오는 귀중한 선물입니다. 비록 우리는 아직 미천하지만, 그럼에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하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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