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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7)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12|조회수33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7)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0-13)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 빌 4:10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를 통하여 아름다운 섬김을 받았는데, 그의 복음 사역 초기에 데살로니가에 머물렀을 때에 바울의 필요를 위하여 그에게 처음 선물을 보냈는데,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음을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면서, 빌립보 교회에 감사와 무한한 신뢰 및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 때문에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Ἐχάρην δὲ ἐν Κυρίῳ μεγάλως ὅτι ἤδη ποτὲ ἀνεθάλετε τὸ ὑπὲρ ἐμοῦ φρονεῖν)고 말합니다.

[2] 빌 4:11-12 그런데 바울은 11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οὐχ ὅτι καθ’ ὑστέρησιν λέγω; ἐγὼ γὰρ ἔμα ἐν οἷς εἰμι, αὐτάρκης εἶναι)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감사편지로 인하여 혹시 빌립보교회에게 자신이 현재 궁핍함을 또 해결해 달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 “자족”(αὐτάρκης, self-complacent)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족이라는 말은 “충족되다”(self-sufficient)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고후 9:8에서는 “넉넉함”으로 번역되기도 한 단어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자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빌립보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은 도움의 필요로부터 독립된 상태라고(눅 3:14; 살전 4:12; 딤전 6:6, 8; 히 13:5 참조) 안심을 시키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정말 자족할 수 있는 현실적인 풍부함에 있을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자신은 “내가 어떤 형편에든지”(ἐν οἷς εἰμι) 자족하는 법을 알아서(배워서, ἔμαθον), 어떤 상황에 처하건 잘 대처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2절에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οἶδα καὶ ταπεινοῦσθαι, οἶδα καὶ περισσεύειν. ἐν παντὶ καὶ ἐν πᾶσιν, μεμύημαι καὶ χορτάζεσθαι καὶ πεινᾶν, καὶ περισσεύειν καὶ ὑστερεῖσθαι)라고 합니다. 즉, 그는 때로는 음식이나 의복 등 일상에 있어 초라한 생활을 하는 비천에 처하기도 하고(ταπεινοῦσθα, to be brought low), 때로는 먹을 것이 많아 배부름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또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겪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풍부와 궁핍에도”(περισσεύειν καὶ ὑστερεῖσθαι) 잘 대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움으로”(μεμύημαι, I have learned the secret) 자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점은 참으로 바울사도의 인간됨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3] 빌 4:13 그렇다면 바울사도에게 있어 이렇게 자족할 수 있는 힘의 모든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 13절을 보십시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πάντα ἰσχύω ἐν τῷ ἐνδυναμοῦντί με)라고 합니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삶의 “능력을 주신다면”(능력을 넣어주시면, 강하게 하면, ἐνδυναμοῦντί),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건 문제 해결자가 주님이시기에 모든 것이(πάντα)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이 성경구절만큼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만큼 잘못 적용되는 예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종종 하나님 앞에서 신중히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어떤 일을 덜렁 결정해놓은 후 누군가가 그런 행동에 대하여 신중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면, 그 상대방은 이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믿음 없음을 질타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이 성경구절은 이처럼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하여 정당성 또는 변명을 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도록 기록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사도와 같이 한계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여의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할 줄 아는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해석되고 바르게 적용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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