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8)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13|조회수30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8)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4:14-20)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1] 빌 4:14-16 빌립보교회는 바울사도가 2차 전도여행 중 복음의 시초에 세운 교회로(행 16:13), 그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빌립보교회 그들만이 바울사도를 재정적으로 “주고받는 일로”(λόγον δόσεως καὶ λήμψεως) 도왔으며, 그리고 다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극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행 17:5; 살전 2:2) 빌립보교회는 두 번이나 후원금을 전달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그들에게 재정적인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자비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살전 2:9, 살후 3:7-8), 빌립보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았다는 것은 빌립보교회와 사도가 자식과 아비의 관계와 같이 친밀하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받았던 것은 무려 10여년 경과된 아주 오래전 일이었고, 4:11-1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이후에는 받은 것이 없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통한 후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울을 도우도록 에바브로디도를 로마로 파송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디도 편에 바울의 쓸 것도 보냈던 것입니다(빌 2:25). 이것을 생각하면 앞의 바울의 진술은 어쩌면 빌립보 교회가 오래전 도움을 준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빌립보 교회에 상처를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오해하지 않도록 해명을 하고 있는 것이 17절 이하의 내용입니다. 즉,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 주심으로 자족할 줄은 알았지만, 분명 그것은 괴로움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괴로움에 빌립보교회가 스스로 참여하였다며, 사도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하였도다”(καλῶς ἐποιήσατε)라고 합니다.

[2] 빌 4:17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의 헌신이 자신이 선물을 받고자 하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하여 빌립보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원하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는 말씀처럼 이를 통한 영적인 열매(καρπὸν)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일은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마 6:20)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을 도우고 있는 빌립보교회는 결국은 하늘의 상급을 받는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3] 빌 4:18-20 18절에서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보낸 선물로 인하여 풍족함을 얻었다면서, 이것은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ὀσμὴν εὐωδίας, θυσίαν δεκτήν) 이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εὐάρεστον τῷ Θεῷ)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교회가 사실 풍족한 가운데 바울사도를 도운 것이 아니라 어려움 중에서도 기쁨으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삶은 물론 교회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Ὁ δὲ Θεός μου πληρώσει πᾶσαν χρείαν ὑμῶν, κατὰ τὸ πλοῦτος αὐτοῦ ἐν δόξῃ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라고 사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섬김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이 돌려질 것이라”(τῷ δὲ Θεῷ καὶ Πατρὶ ἡμῶν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라고 찬양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그렇습니다”라고 “아멘”(ἀμήν)을 붙이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