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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9)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5.14|조회수47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2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4:21-23)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 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1] 빌 4:21 바울사도는 이제 마지막 인사로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각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문안하라”(Ἀσπάσασθε πάντα ἅγιον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문안에 대한 당부는 거저 의례적인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각각의 사정을 살펴보면서 “문안하라”(Ἀσπάσασθε)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사도는 지금 빌립보교회에 문안함에 있어 자신만이 아니라 “자기와 함께 하고 있는 형제들이”(οἱ σὺν ἐμοὶ ἀδελφοί) 같이 빌립보교회에 문안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에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물론이거니와(2:19, 25) 어쩌면 두기고와 아리스다고, 오네시모는 물론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함께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골 4:7, 9-11).

[2] 빌 4:22 그리고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빌립보교회에 문안하지만 그 중에는 “특별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 명”(μάλιστα δὲ οἱ ἐκ τῆς Καίσαρος οἰκίας)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이사의 집 사람들”이란 황제의 가문 사람이거나 아니면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대충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살펴보면 황실의 신하, 왕자, 재판관, 요리사, 음식을 맛보는 자, 음악가, 관리인, 건축자. 마구간 관리자, 군인, 회계사 등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 중에는 그가 로마로 오기 전에 이미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바울이 감금되었을 때에 그와 함께 쇠사슬에 매였던 군인들도 분명히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여기 “특별히”(μάλιστα) “가이사의 집 사람들”을 언급했을까요? 가이사란 당시 로마의 황제를 말합니다. 따라서 바울사도는, 첫째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 로마의 최고 심장부인 황제가 거하는 곳까지 이르렀음을 그들에게 알릴뿐만 아니라, 둘째로는 “로마가 모든 길의 끝”이라 했던 것처럼 이 복음이 온 세계에 편만해 질 것임을 알리고자 한 것이며, 셋째로는 복음이 여기까지 왔으니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비록 현재는 힘들지라도 희망을 가지고 더욱더 복음전파를 위한 아름다운 동역의 삶을 영위하길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빌 4:23 바울은 이제 빌립보서를 마무리 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μετ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ὑμῶν. 혹 Ἀμήν)라고 합니다. 23절의 이와 같은 문구는 그의 서신서에 흔히 등장하는 것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의 심령 속에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함께하실 것을 기원하는 것이겠지요. 특히 사도가 이 서신서를 시작할 때도(1:2) 언급하였듯이 여기서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라고 한 것은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아니 “이미”와 “아직” 모두를 포함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확신하는 바울의 표현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지금 여기, 그리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오늘로 빌립보서의 묵상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1:4, 1:18, 2:17, 3:1, 4:4, 4:10). 왜 바울은 이렇게 말했을까요?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니라”(1:21).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2:5).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0-14).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3:17).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3:20).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네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1-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4:23). 이 말씀 안에서 바울의 기쁨의 복음, 그 일체의 비결이 있나봅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삶의 현실이 어떠하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빌립보서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자족과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족과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그 비법은 그동안의 묵상을 통하여 살핀 바와 같이 우리가 하늘나라 시민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을 때 가능하겠지요. 우리 모두 바울처럼 주 안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기쁨이며, 평강일 것입니다. 빌립보서가 상황을 뛰어넘은 “기쁨의 복음”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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