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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이정건 목사] 돌아온 탕자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2.01|조회수47 목록 댓글 0

📌돌아온 탕자📌

이정건 목사 / KPM 선교사

지난 11월 19일(토)에 인천 예일교회당에서 사랑하는 친구요 신대원 39회 동기인 천 환 목사님의 은퇴 및 원로목사 추대식이 있었다.
나는 그 날 그가 지난 37년 7개월을 개척부터 은퇴까지 산고의 수고로 말씀을 준비하던 목양 사무실에 걸려있는 렘브란트의 “돌아 온 탕자”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그러자 그 그림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목회를 하고 영광스럽게 마무리를 하신 천목사님이 무척 존경스러웠다.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은 1606년,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풍차 방앗간집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에 천재적 재능을 가졌던 그는 20대에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올랐고, 명문가의 미녀 사스키아와 혼인하며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사치스럽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는 자신의 작품이 스캔들에 휘말리며 화가로서의명성이 몰락하고 파산했다. 친 데 덮친 격으로 1636년에 첫째 아이가 죽고, 1638년에 둘째 아이가 죽고, 1640년에 셋째 아이가 죽고, 1642년에 아내마저 죽었다.
결국 그는 외롭고 비참하게 살다가 1669년에 굶어 죽었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았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유작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는 누가복음 15장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그는 오직 의지해야 했던 분은 오직 하나님 뿐임을 이 그림에 오롯이 새겨넣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눅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그림에서 빛의 진원지는 아버지의 얼굴이며 모든 대상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그는 어두운 공간에 초 하나를 켜 놓은 듯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극적인 재회를 표현한다.
아버지의 표정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다. 가슴 깊은 안도와 평화의 감정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은 심하게 짓물러져 거의 실명 상태다. 이것은 매일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눈물짓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마치 암탉이 알을 품듯 아들을 품에 안았다. 아들에게 얹힌 아버지의 두 손을 보면 오른손은 가녀린 여성의 손이고, 왼손은 투박한 남성의 손이다. 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을 동시에 보여주며 돌아온 아들을 완전한 용서와 사랑으로 치유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징한다.

눅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만신창이가 되어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기댄 작은아들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이는 어머니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이며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상징한다.
발이 벗겨진 상처투성이 왼발은 방탕한 삶을 살다 나락으로 떨어진 작은아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신발을 신고 있는 오른발은 처참한 삶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아버지에게 돌아오려 했던 의지를 상징한다.
작은아들의 허리춤에는 작은 칼이 채워져 있다. 이 칼은 호신용이 아니라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으로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비록 아버지를 저버리고 떠나간 죄인이며, 실패한 삶을 살고 종으로라도 써달라며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칼 한 자루는 어떠한 순간에도 그는 아버지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임을 뜻한다.
이러한 작은아들의 모습은 사실 렘브란트 자신이다. 즉, 아버지에게 돌아와 그 품에 안긴 작은아들은 자신만만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바닥을 쳤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와 같은 붉은 가운을 입고 권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큰아들, 줄곧 아버지를 보필했던 큰아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이 가득하다.
아버지가 몸을 굽혀 작은아들을 감싸 안았지만, 큰아들은 마치 재판관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차가운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큰아들의 두 손을 보면 어두운 오른손이 밝은 왼손을 짓누르고 있는데 복잡하고 이중적인 감정을 뜻한다. 아버지의 두 손에는 사랑이 가득한데 큰아들의 두 손에는 편협함만 가득하다.
큰아들의 다리를 보면 오른발이 보이지 않는데 아버지의 아들로서 정체성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소중함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았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어 받았지만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눅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를 떠났다가 인생의 쓴맛을 보고 나서야 돌아온 작은아들, 늘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그 소중함을 모르고 이기심을 숨기기 위해 동생을 정죄하는 큰아들 어쩌면 내 안에도 이런 모습들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큰아들과 작은아들 모두를 한결같이 기다리는 그 아버지 같으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심을 잊지 않고 살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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