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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만 원짜리 한 장(5)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3.22|조회수34 목록 댓글 0

만 원짜리 한 장(5)

"내일부터 집사람이 나오기로 했어"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하고
어렵게 구한 편의점 알바 자리 마저,
운영이 힘들어지는 바람에
쫓겨난 나는
햇살이 물결치는 하루를 뒤로 하고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거리를 걷다가

버스정류장 옆 포장마차 안에서 피어나는 어묵 연기를 보면서
주머니 안에
마지막 남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빵빵)))))

쓰러진 태양을 뒤로 하고
하얀 두 눈을 치켜뜨고 달려온 버스에 올라
삶의 갈피마다 베어든 슬픔을
버스 안 열기로 채우고 있을 때

서 있기에도 힘든 노구를 이끌고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앞 빈 좌석으로 다가와 철퍼덕 주저 앉는 소리와 함께

(((((따르릉)))))

"임자,
아직 안자고 있었어?"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이니까 곧 도착혀"

"......"

"임자 좋아하는 붕어빵 사 오라고?
그려, 금방 사 갈테니 기다리고 있어"

아픈 아내에게 사다 줄
붕어빵이란 세 글자에 행복이 묻어나던 얼굴이
한숨이 보태어진 얼굴로
힘없이 창밖만 쳐다보는 이유를 난 알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텅 비어있는 지갑을
무심코 보고 말았던 두 눈을 지워버리고 싶었는지,
난 차창 밖으로
겨울 색이 물들어가는 거친 밤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음 정류장은 동향 초등학교입니다)))

기계음이 사라진 자리를
더듬고 일어나려는 내 앞으로
움푹 패인 주름진 얼굴을 내밀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던 할아버지는,

시린 가난을 베고 누운 할머니가
기다리는 게 걱정이 되어서인지
바쁜 몸짓으로 일어선 자리엔
점퍼에서 떨어진 할아버지의 지갑이 놓여 있었다.

달빛을 목에 두르고
설익은 어둠을 따라
걸어가던 할아버지에게 뛰어간 나는

"이 지갑 할아버지 거 맞죠?"

"아이쿠..., 이렇게 고마울 때까 있나"

"혹시 없어진 게 있는 지 잘 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바람이 불러주는 노래를 따라
까만 어둠 속으로 난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넣어 놓은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붕어빵을 사들고 가실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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