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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만 원짜리 한 장 1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3.22|조회수40 목록 댓글 0

만 원짜리 한 장 1

까만 분칠한 저녁을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진 거리엔
어둠을 한 움큰 베어 문 노란 달과
반작이는 별들만
인적이 드문 길 위를 비추며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는데요.

"어서 오세요"

바람과 놀고 있는 패스트푸드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 할머니는
사방을 돌아보며 두리번 거리는 모습에

"할머니, 뭐로 주문하시겠어요?"

할머니는 입고 있는 옷 주머니 이곳저곳에
손을 찔러 넣어 보시더니

"아이고 이럴 어째...,
손자놈이 적어준 종이를 잃어버렸나 보네."

할머니는
나이가 벗어놓은 슬픈 얼굴로
햇살 든 창가에 앉아
가지도 오지도 못한 채 멍한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혹시 이 종이 아니에요?"

"맞아 그 종이가...,"

할머니의 얼굴이
어느새 햇살든 꽃잎같이 변해 있는 동안

여직원은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큼지막한 종이봉투 하나를 건네면서

"할머니 오래 기다리셨죠?"

"젊은 아가씨가 고맙구먼. 고마워...,"

할머니는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하고는
속곳 안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하나를 내어놓고 있었는데요.

"작년 내 생일 날
손자가 알바해서 준 용돈이라오"

"그런 돈을 쓰셔서 어떡해요 할머니?"

"오늘이 마침 우리 손주 놈 생일이라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네네...,
손자분이 좋아하시겠어요"

새하얀 웃음꽃을 매단 할머니는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노란 달님이 수놓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 든
만원짜리 한 장과 함께...,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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