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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만 원짜리 한 장(6)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08|조회수41 목록 댓글 0

만 원짜리 한 장(6)


하늘에 걸린
해시계를 따라 걸어가던 아이는
아빠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요

"아빠!
용던 만 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껴 쓸게요"

무지개를 타고 가듯
행복해진 얼굴로 편의점
불빛을 보며 달려가던
아이의 눈에

"와, 눈이다."

두팔 벌려
내리는 눈을 감싸쥐고는
편의점 안에서 눈을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을 기쁨에 젖어 있던 그때,

저 멀리서
깔리는 어둠을 밟고
이쪽 저쪽 땅만 쳐다보며
다가오는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습니다.

"얘야,
혹 걸어오면서 만 원짜리가
떨어진 걸 못봤니?"

"저쪽에서부터 걸어왔는데
보질 못했어요"

돌아섰다 탓할 수 없는 바람을 안은 듯
낯빛이 어두워져 있던 할아버지는
묵음으로 전해지는 언어들만
하얀 눈송이 위에 던져놓으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에,

"할아버지,
저도 같이 찾아 봐 드릴게요"

"아니다...,
엄마 기다리실라
추운데 얼렁 들어가려무나"

하늘 밀어 올린 자리에
나와 있는 달님을 등불 삼아
구겨진 종이쪽 같은 손으로
이리저리 눈들을 헤쳐가며
만 원짜리 한 장을 애타게 찾고 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노망이 났나 봐...,
할멈 약 사다 줄 돈인데
그걸 잃어버렸으니...,"

소중한 일상이 무너지듯
아파 누운 할머니 걱정에
노을처럼 빨개진 그 마음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하얀 눈들이 할아버지의 만원을 감춰버리기 전에 서둘러 찾아다니더니,

"할아버지, 찾았어요!"

"옳거니...,
꼬마 아가씨가 우리 할멈을 살렸구먼"

"할아버지,
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약국 문 닫기 전에
할멈 약부터 사러가야 하는데
같이 가자꾸나"

"넘 늦어서
엄마가 기다리실 것 같아요"

"이 할아비가 정말 고마워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할아버지~
약국 문 닫기 전에
할머니 약부터 빨리 사셔야죠"

"그려...,
눈이 내려 미끄러우니 조심히 잘 들어가렴"

"네.
할아버지도 할머니 약 사셔서
조심히 들어가세요"

행복 함줌을 주운 듯
달님을 닮은 미소로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보며,
손을 흔들어 보이던 아이가
편의점을 못 본 척 그냥 지나쳐가고 있는 걸 본
꼬마 별 하나가

"너, 편의점 가는 거 깜박했구나" 라며 어깨를 툭툭 치며 전하는 소리에,

아이는
반갑게 미소지으며
달님이 밝혀 놓은 길을 따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에 젖어
걸어가고만 있었습니다.

행복과 바꾼 만 원짜리 한 장을 떠올려보면서...,

-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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