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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논평 및 논단

장로교 목회자들 중 신학적, 선교의 흐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6.17|조회수32 목록 댓글 0

장로교 목회자들 중 신학적, 선교의 흐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장로교 목회자들 가운데 신학적으로 또 선교의 흐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컨퍼런스 기간. 아일랜드 장로교 목사 Mark 가 거명하는 네 사람, 존 칼빈, 존 낙스, 아브라함 카이퍼, 레슬리 뉴비긴을 보며 들은 생각. 개혁신앙의 근본 사상 중 하나인 "하나님의 절대주권" 이 이들에게서는 세상 속의 삶과 깊이 연결되었다. 당연히 정치와 문화도 신앙의 한 부분이었다.

존 칼빈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Magisterial reformation "사법개혁"이라고도 불린다. 종교개혁을 구체적인 정치와 연결하려고 시도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참여했다. 존 낙스의 경우에는 스코틀랜드 뿐 아니라 영국의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중요한 기초를 만든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절대주권 사상을 영역주권으로 해석하며 세계관 운동의 시발점이 되며 스스로도 정치가로서 일했다. 레슬리 뉴비긴은 인도라는 다른 컨텍스트에서 기독신앙을 재해석했고, 이는 이후 다문화 사회가 된 영국 가운데 확장시켜나감으로 선교적 교회 운동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 신앙적 영웅들의 특징은 그들의 사상이 상아탑이 아닌 실천과 참여 가운데 이뤄진 성찰의 정리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혁신앙이라고 할 만 하다.

이번 대선을 지나며, 개인적으로는 한국 교회 지도자나 신학자들의 방향이 근본주의와 수구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며 실망이 컸다. 그들의 복음은 현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석하기에 너무나 얇다. 몇백년적 사회 전체의 변화와 진보에 바른 방향을 부여했던, 이 장로교의 영웅들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두가지에서 펑크가 날 가능성이 높다.

하나, 상황 속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들어가서 그 안의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지 않고 종교적 게토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Praxis 의 문제다. 둘,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을 갖고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하는 일로 너무 바쁘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는다. Reflection 의 문제다.

선교사들을 디브리핑할 때, 시니어들의 경우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의 복음은 변하고 성장했나요?"

이슬람의 문화를 이해하고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대화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자신이 한국인으로서 갖고 있던 복음의 한계에 직면하게 되다. 그 도전 안에서 성찰해간다면, 복음은 자라나게 된다. 무슬림의 입장에서 이해한 복음이 생겨나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은 왜 다른가? 다른 청중과 상황 속에서의 선교였기 때문이다. 이 다름은 불일치가 아니라 풍성함이다. 바울의 이십대 회심. 그가 사십대에 사역을 시작한 중간 시점에서 일어났던 일은 아마도 이런 성찰의 시작이었을게다. 복음의 풍성함을 다른 상황에서 발견하고 나누는 일. 앞에서 언급한 신앙의 영웅들이 했던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 가운데도 이런 단계까지 나아간 사람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낯선 문화 속에서 과거 한국을 떠날 때의 신앙으로 더욱 보수성 속에 함몰되곤 한다.

이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66권은 바로 이 복음의 풍성함이 확장되어가는 스토리다. 새로운 컨텍스트 속 우리들로 인해서 쓰여질 사도행전 29장의 실종인 셈이다. 다시 돌아와서, 현재의 한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사역자들의 복음은 그리고 설교는 개혁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걸까?

우리의 신앙에서 펑크가 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세상 속이 아닌 종교적 게토 안에 있는 것인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두려워하여 근본주의의 성 안에 갇혀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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