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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종 / 자기 신앙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2.16|조회수29 목록 댓글 0

자기 신앙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빌 1: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사나이 한 목숨>이라는 군가가 있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자주 불렀던 군가를 꼽으면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입니다.
“…전우여 이 몸 바쳐 통일이 된다면 사나이 한 목숨 무엇이 두려우랴”라는 가사로 끝납니다.

분단된 조국을 살고 있는우리한테 통일은 지고지순한 가치를 갖습니다.
자기 목숨을 바쳐서 통일이 되기만 한다면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군인이라면 그 정도 정신 자세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다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워낙 중하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라면 자기 한 몸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서 자기가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옥에 갇힌 일을 통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든지 복음 증거하는 것을 기뻐하는 과정 속에서 자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울은 상당한 신앙 위인입니다.
예수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가 바울에 의해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 역사가가 아니라 세속 역사가의 평입니다.
우리는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바울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껌뻑 죽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손해보고 인내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등을 밟고 일어서야만 높아질 수 있을 만큼 옹색한 분도 아니고, 그런 것을 즐길 만큼 가학적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얘기는 우리의 본래 목적에 맞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런 삶을 살면 살수록 우리 영혼이 점점 더 부요하게 됩니다.
하나님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말만 하면 희생이나 손해, 인내, 헌신을 떠올리는가 하면, 우리가 그만큼 세속적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들이 공부 얘기만 나오면 컴퓨터 게임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서 어머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로 알아듣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신자가 살아야 할 본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빚어 만드시는 손길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걱정 마라. 나는 기필코 이 길을 가고야 만다.”라고 하지 않고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기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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