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비전칼럼

한진환 / 설교가 살아나야 한다

작성자경아네|작성시간24.03.15|조회수69 목록 댓글 0

설교가 살아나야 한다

 

한진환 목사 / 킹덤 프리칭 아카데미 원장

 

20세기 중반에 들어 설교에 대한 회의가 대두되었다.

현대 교회의 설교는 영력도 없고, 감화력도 상실되었고, 삶과도 무관하며, 지루하기만 할 정도로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오늘날의 설교는 임종의 단계에 이를 정도로 쇠하고 붕괴되었다.”라고 개탄했다.

많은 목회자가 이제 목회는 설교만으로는 안 된다는 자조 섞인 탄식과 함께 설교를 보완할 대체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설교의 위기를 초래한 일차적인 이유는 설교를 조직화하지 못하는 설교자들의 역량 부족에 있다.

본문을 따라가며 해석하고 적용하는 주해식 설교를 강해 설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식의 설교는 설명은 많으나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설교가 본문의 한 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얼개를 구성하는 조직화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청중은 들은 것은 많으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게 된다.

설교가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검이 아니라 솜방망이처럼 된다.

 

설교의 위기는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설교자들의 믿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본문을 그 날에 주시는 분명한 메시지로 전환하지 못하는 역량의 부족 때문에 온다. 

또한, 설교의 위기는 설교자들이 청중을 상실해버린 것에서 온다.

영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축인 청중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선포될 때 그런 설교는 감화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설교는 철저하게 청중의 수준과 특성을 고려해서 전해진 것이다.

‘지금 여기서’ 현실적 문제들과 고투하는 구체적 인간들을 찾아오신 성육신이 그분의 설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팀 켈러는 문화에 공명하며 저항할 때 설교가 청중의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고 했다.

선교학에서 말하는 ‘상황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설교, 특히 보수주의자들의 설교는 공명은 없고 저항만 있다.

설교가 땅에 내려오지 못하고 공중에만 맴돌고 있다.

설교가 청중에게 들리지 않는 것은 설교자가 청중으로부터 듣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설교자의 영성 부족에 있다.

 

팀 켈러는 설교의 위기를 세 가지 텍스트로 분석했다.

성경 본문으로부터 분명한 메시지를 뽑아내지 못하는 텍스트(text)의 문제,

청중이 처한 상황에 공명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콘텍스트(context)의 문제,

그리고 설교자의 영성에 관계된 서브텍스트(subtext)의 문제가 설교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브텍스트란 설교자가 자신을 과시하고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설교를 목회 성공의 도구로 보는 잘못된 영성을 말한다.

설교가 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보게 하는 것으로 전락한다면 성도들의 진정한 변화와 성령의 열매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조사에 의하면 코로나 이후 교인들의 주일 성수에 대한 인식도 낮아졌고, 신앙도 별 변화가 없거나(65%) 더 낮아졌다고 한다(22%).

갈수록 교인들의 영성이 희미해지는 것도 설교사역에는 매우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설교사의 권위자인 E. 다간은 교회의 영적 상태와 설교와의 관계를 이렇게 진단한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의 영적인 삶과 활동이 약해지면 설교가 생명력이 없고 형식적이고 열매가 없게 된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사에 있어 위대한 부흥의 시대를 여는 데는 강단의 역할이 막중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흥운동이 진행될 때는 설교사역이 고양되고 극도의 존중을 받았다.” 

 

교회의 영성과 영향력 있는 설교사역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설교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해지는 것에 대해 교회는 심각한 자기 진단을 해야 한다.

교회의 전반적인 영성의 하락과 그로 인한 설교사역의 쇠퇴, 그리고 그 무기력한 설교로 인해 다시 영성이 후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미래 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물론 희망은 있다.

설교자들이 말씀 사역의 지중함을 인식하고 더 많이 엎드리고 더 많이 연구하면 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오신 성령님을 사모하고 또 사모해야 한다.

자신은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생명의 ‘소리’로 살아야 한다(요 1:23).

그러면 설교가 살아날 수 있다.

설교가 살아나야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