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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02|조회수33 목록 댓글 0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빌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디아, 순두게는 성경에서 여기밖에 안 나오는 이름입니다.
어쨌든 빌립보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신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둘이 불화한 모양입니다.

비단 빌립보교회에만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교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회만 하면 싸우는 교회도 있고, 여전도회에서 전임 회장과 신임 회장이 사사건건 힘겨루기를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아무 얘기가 없습니다.

접촉 사고가 나면 보험회사에서 과실 비율을 산정합니다.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에 따라 7:3일 수도 있고, 5:5일 수도 있습니다.
그 비율만큼 각자 책임을 집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없습니다.
누가 어느 만큼 잘못했는지를 판정하는 것은 바울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유 여하에 관계없이 같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미 잘못입니다.

중고등부를 지도하던 시절 일입니다.
자기들끼리 다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교회에 열심이 없는 학생이 교회에 안 나옵니다.
교회 나온 학생한테 제가 말합니다.

“주중에 걔 만나서 화해하고 다음 주에 교회 나오게 해라.”
“왜 저한테 그래요? 걔가 잘못했단 말예요.”
“그래, 걔가 잘못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걔가 교회에 안 나왔잖아. 그럼 차라리 네가 잘못하고 걔가 교회 나오는 게 좋은 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면 “예, 알겠습니다.”라는 학생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해요?”라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라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해요?”가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옳은지는 알지만 그렇게 하기 싫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라는 말은 더 고약합니다.
직설적으로 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꼭 신앙적으로 옳게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려서 그럴까요?
어려서 그런 것이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이만 먹으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하나님과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설마 유오디아, 순두게가 나이가 어려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것일까요?

바울의 얘기를 잘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사이가 틀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도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화해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같은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유오디아가 순두게의 마음을 품어도 같은 마음이 되고, 순두게가 유오디아의 마음을 품어도 같은 마음이 됩니다.
아니면 둘 다 50%씩 양보해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은 절대 그런 식으로 같은 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빌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바울이 하는 얘기는 “누구의 마음이든 좋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든지, 동전을 던져서 결정하든지 어쨌든 같은 마음을 품어라.”가 아닙니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뜻입니다.
유오디아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순두게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덜 잘못했는지를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갈 것 없이 각자 그리스도께 다가가면 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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