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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신앙은 삶의 문제입니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10|조회수37 목록 댓글 0

신앙은 삶의 문제입니다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빌 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표현력이 곧 실력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표현되지 않으면 실력도 없는 것입니다.
음악가의 머리에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이 있다고 해도 오선지에 표현할 실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운동선수는 자기가 아는 기술과 힘을 운동으로 표현합니다.
소설가는 자기에게 있는 삶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합니다.
화가는 자기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화지에 표현합니다.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는 실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신앙이 있으면 그 신앙은 마땅히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은 신앙은 무효입니다.
성경 말씀에 동의하는 것이 그 사람 수준이 아닙니다.
어느 만큼 따라하는지가 그 사람 수준입니다.

아무리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명예로운 것,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생각한다고 해도, 1년 365일 하루 종일 생각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당연히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는 내게 배운 대로 행하라”라고 하면 될 텐데,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고 합니다.
바울의 모든 삶이 곧 그들이 본받을 만한 신앙 모범이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무작정 따라 하기”를 검색하면 주식투자 무작정 따라 하기, 일본어 무작정 따라 하기, 포토샵 무작정 따라 하기, 1인 카페 무작정 따라 하기, 동남아 여행 무작정 따라 하기, 중국어 한자 무작정 따라 하기, 쇼핑몰 창업 무작정 따라 하기 같은 책 이름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그런 식으로 <바울 무작정 따라 하기> 하면 됩니다.

"바울쯤 되니까 그런 말을 하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설마 바울이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과시하기 위해서 이 말을 했을까요?
빌립보교회 교인들의 일차적인 책임은 바울을 보고 배우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들 역시 누군가한테 같은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보고 다녀야지, 사람 보고 다니면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나요?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무슨 수로 보고 믿습니까?
물론 그런 얘기가 아닌 것은 압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니 사람에 좌우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습니다.
군인들이 훈련을 받을 때도 시범을 보이는 조교가 있고, 태권도 도장에도 사범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왜 없을까요?
어떤 사람이 교회에 왔을 때, 오자마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먼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을 만납니다.
먼저 믿은 사람은 자기보다 늦게 믿은 사람한테 자신 있게 자기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믿는 것이다.” 하고, 시범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데 제 주변에는 보고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별수 없는 노릇입니다.
주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는 것이 자기 책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가 보고 배울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책임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라고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귀담아듣고 그대로 행했다면, 얼마든지 같은 얘기를 할 수 있게 마련입니다.

키르케고르가 한 얘기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실존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지 생각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본문에 빗대면, 무엇이든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명예로운 것,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제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하면 예수는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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