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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칼럼

강학종 /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4.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강학종 / 하늘교회 목사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들이 고 3이 된다면서 이 말씀을 붙잡고 1년 동안 기도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단 그 분이 아니라도 본문을 그런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본문이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뭐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이라면 얘기가 이상하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빌립보교회에서 위문품과 함께 면회 사절이 왔습니다.
그런데 대뜸 얘기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아? 그러세요? 그럼 일단 옥에서 나와 보시죠?”라고 하지 않을까요?

앞에서 바울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고 했습니다.
배부름에 처할 줄도 알고 배고픔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를 테면, 벽돌로 집을 짓는다면 나무는 필요가 없습니다.
나무가 많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도 않고 나무가 없다고 해서 방해를 받지도 않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왜 사십니까?”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대답을 못해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가장 많지 않을까요?
어쩌면 “죽지 못해 삽니다.”라는 대답도 더러 나올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정답을 알고는 있는데 그 정답이 우리한테서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세상을 살아가기는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심지어는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서 엉뚱한 기대를 갖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우선 성경은 문맥이 있는 책이라는 사실을 놓친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탓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이나 믿은 다음이나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능력 주시는 자는 자기 밖에 계시게 한 채 자기 필요에 따라 가끔 모셔오려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더 이상 자기가 아닙니다.
인생을 살되 예수님을 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로 얘기하면 감옥 안에 있는지, 감옥 밖에 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옥 밖에 있으면 감옥 밖에 있는 대로, 감옥 안에 있으면 감옥 안에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합니다.
말 그대로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압니다.

이런 말을 하면 으레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잘살고 신앙생활도 잘하면 더 좋은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풍부에 처할 줄만 알면 되지, 궁핍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하느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합니까?
자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하나님은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하나님은 필요 없다는 뜻일까요?

또 있습니다.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를 누가 결정합니까?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려면 먼저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농부의 목적은 땅에서 많은 소출을 내는 것입니다.
해마다 아무 수확도 없는 농부가 있다면 좋은 농부가 아닙니다.
자기가 그 농부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좋아하는지와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본래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이다 보니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집니다.
심지어는 잘살고 못사는 것도 돈으로 따집니다.
돈이 많으면 잘산다고 하고, 돈이 없으면 못산다고 합니다.
그런 풍조에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맞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남보다 떡을 많이 먹는지, 적게 먹는지는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장차 주님을 만날 사람이 맞습니까?
맞다고 대답만 하면 안 됩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그 준비를 위해서 주어진 공간이고, 우리 인생은 그 준비를 위해서 주어진 시간입니다.
그 준비는 풍부나 궁핍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할 일만 묵묵히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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